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세상을 알게 되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삶을 간접 체험하고, 새로운 삶을 알게 되는 기분이 들었다. 같은 것을 바라봐도 이렇게 관점이 다르구나, 같은 상황에서도 저렇게 입장 차이가 있구나. 를 느끼면서 매일 새로운 생각이 추가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그 모든 것들이 다 무의미하다고 느껴졌다. 나는 자주 낯을 가렸고, 그 사람의 세계를 알아가고 싶긴커녕 이야기에 집중하거나 마음을 다한 공감을 하기도 힘들었다. 내 생각을 말하고 싶지도 않았고, 나를 드러내야만 하는 상황이 너무 싫었다.
‘오늘도 내일도 별로 관심 없는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혼자이고 싶은 순간에도 사람들과 부대낄 것이다. 집에 가고 싶어 죽겠어도 자리를 지켜야 하는 시간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고,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해야만 하는 순간들을 수도 없이 겪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지속되다 보니 인류애가 바닥이 났구나. 느꼈다.
태생이 낯을 안 가리고 사람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신기하다 못해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 나는 매일매일 나의 인류애에 대한 시험을 받으며 저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아등바등 사는데, 저 사람은 저게 쉬울까? 하면서. (알고 보니 게 중에는 그냥 미워해버리고 웃고 마는 사람도 있었지만.)
혼자 여행을 하면서 배경지식이 없는 타인과 얘기하는 것이 다시 좋아졌다. 질문이 많아졌고, 자주 궁금해졌다. 다른 사람의 세계가 재밌었고,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말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됐다. 그만큼 나를 드러내는 것도 조금은 쉬워졌고.
어쩌면 사람에 대한 무관심은 자기혐오에서 시작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맨날 힘든 내가 싫었으니까. 누군가의 말을 진지하게 들을 여유 조차 없는 내 삶을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더 넓고 유연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떤 이도 무시하지 않고, 어떤 이도 부러워하지 않았으면. 사람에게 우월감을 느끼지도 않고 열등감을 느끼지도 않았으면. 나 자신을 열렬히 사랑하게 되기를. 그만큼 타인도 사랑하기를.
내 얘기를 많이 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으며 조금 더 곁을 많이 내주고, 그 사람의 곁을 차지하는 사람이 되길. 그 누구도 증오하지 않고, 그 누구도 무시하지 않으며, 외모나 학벌이나 재산이나 직업으로 사람을 재단하지 않기를.
아니, 뭐가 되지 않아도 좋다. 더 좋은 사람이 꼭 될 필요도 없다.
그냥 나다움이 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좀 더 집중하기를. 그렇게 알게 된 내가 조금 못나고 형편없더라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그런 형편없는 나를 누군가에게 드러내면서도 맑게 웃을 수 있기를.
2019년, 29살의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여행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