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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jin Kim Sep 26. 2021

시선으로부터,

시선으로부터이어지는 삶의 다양한 방식

이 책은 심시선이라는 사람을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 제사를 지내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서울에서 하와이로, 또 독일의 작은 도시인 뒤셀도프르까지 여기저기로 이어진다.


등장인물이 많다. 시작은 '심시선' 한 명이지만 그녀와 이어져 있는 등장인물은 스무 명쯤 되는 듯하다. 그래서 한쪽에 가계도를 펴두고 '이게 누구였지', '이건 또 누구였지'를 계속 확인하며 읽게 됐다. 인물 한 명 한 명이 개성 있고 입체적이어서 그 또한 읽는 재미가 있었다.


ebook으로 읽지 않았다면 아마 저 가계도 페이지를 뜯어서 옆에 두고 보지 않았을까..


심시선 여사가 젊은 시절을 보낸 곳인 하와이에서 제사를 지내기로 했기 때문에 가족 모두가 하와이로 떠난다. 가족은 '하와이를 여행하며 가장 기뻤던 순간'을 찾아 제사상에 올리기로 했고, 제사상에 올릴 무언가를 찾아 각자의 방식으로 여행을 한다. 제사의 주인공인 '심시선'과 본인의 연결 고리에 대해 생각하면서 가장 소중하기에 주고 싶은 무언가를 골라 선물로 가져간다. 이 스토리를 따라가며 인물 한 명 한 명과 여행하는 기분마저 들었는데 이들이 어떤 멋진 방법으로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장모님을 기릴지, 선물로 어떤 걸 가져갈지가 기대됐다. 그래, 저렇게 해도 되는 거지. 그들이 하는 걸 다 배워서 똑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읽으며 이전의 하와이 여행이 종종 떠올랐는데, 특히 한 가족이 생각났다. 한국인-일본인 국제 커플이었는데, 한국이나 일본에서 결혼식을 하는 대신 가족들과 함께 하와이를 여행 중이라고 했다. 여행 중 하와이 방식으로 간단한 결혼식을 올린다고도 했다. 우리가 흔히 하는 결혼식 문화에 대해 회의감을 갖고 있었는데, 저런 방식이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게 됐다.


하와이에는 서퍼가 정말 많았다. 사람들은 먼바다까지 나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게 어디든 바다만 보이면 뛰어들었다. 그게 기억에 남아서인지 우윤의 에피소드가 마음에 와닿았고, 다음에 여행을 하게 된다면 꼭 서핑에 도전해봐야지 다짐했다. 우윤은 물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고 파도를 담아갔다. 물에 대한 공포를 알기 때문에 그 모습이 더 용기 있게 느껴졌다.

아주 작게 보이지만 사진 속에 사람이 스무 명도 넘게 있다.


책은 세상에 없던 '이런 방식'도 있다는 걸 이야기한다. 여태까지 최소 몇십 번의 명절 차례상과 제사상 차리기를 돕고 지켜보면서 좋은 점보다는 아쉬운 점을, 기쁨보다는 속상함을 더 많이 느꼈다. 이번 추석에는 급기야 "엄마 아빠가 저보다 먼저 돌아가신다면, 이런 제사 말고 다른 방식으로 엄마 아빠를 기릴 거예요. 제가 제사상 안 차린다고 서운해하지 마세요."하고 선언을 했다. 두 분 다 기꺼이 그래 달라고 하셨다. 어떤 방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제사보다는 나을 것이다.




책은 31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고, 에피소드마다 심시선의 인터뷰나 과 함께 시작한다. 그녀는 죽고 없지만 그녀가 남긴 말과 글로 그녀의 모습을 보여주는 셈이다. 여기에 인용된 글과 이야기가 하나하나 좋고 마음에 남았는데 가상의 글과 인터뷰지만 실제로 전부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23)

... 그러니 여러분, 앞으로의 이십 년을 버텨내세요.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모퉁이가 찾아오면 과감히 회전하세요. 매일 그리되 관절을 아끼세요. 아, 지금 그 말에 웃는 사람이 있고 심각해지는 사람이 있군요. 벌써 관절이 시큰거리는 사람도 많지요? 관절은 타고 나는 부분이 커서 막 써도 평생 쓰는 경우가 있고 아껴 써도 남아나지 않는 경우가 있어 불공평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모든 면에서 닳아 없어지지 마십시오.

-XX미술학부 졸업 축사 녹화본(1995)에서


모든 면에서 닳아 없어지지 마십시오.


(24)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는 상태로 살아왔으니,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또 죽을 것이다.
(...)
나는 따라 죽지 않고 애방을 기록하는 편을 택했다. 내 심장이 그리하도록 견뎌주었다.
누가 이 기록을 읽을 것인가? 문명은 결국 모조리 흙에 묻힐 테니,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장미보다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이 땅에 이십만 년을 살았는데, 장미는 사천만 년을 살아왔다는 걸 아는지? 물론 지금과는 아주 다르게 생긴 장미였겠지만 말이다. 언젠가 직접 화석을 보고 싶다. 장미의 화석을. 그리고 최초의 장미는 바로 이 근방에서, 동아시아에서 피어났다고 한다.
일단은 무더기 장미 아래 무덤들을 지키고 섰다. 술래의 역할을 하고 나면 함께 누울 것이다. 꽃잎 아래에, 흙 아래에, 눈 아래에. 나 다음의 술래에 대해서는 짠한 마음이 있다.

-어쩌다 보니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2002)에서


(28)

빛나는 재능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누군가는 유전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을, 또는 그 모든 걸 넘어서는 노력을 재능이라 부르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재능인 것 같았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 질리지 않는 것. 수십 년 한 분야에 몸을 담그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 같은 주제에 수백수천 번씩 비슷한 듯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

-어쩌다 보니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2002)에서


이렇게 중간중간 나오는 내용들이 책의 메인 스토리보다 더 기다려지기도 했고 줄어드는 페이지수가 아깝기도 했다. 물론 이 책 자체에서 마음을 후비는 문장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에세이도 아니고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이 밑줄 친 적이 있었을까?


(7)

할머니는 정말로 우윤이 다시 귀국하기 전에 돌아가셨다. 우윤은 참석하지 못한 생일 파티에서 모두에게 덕담을 하고 몇 시간 후에……
우윤은 장례에도 가지 못했지만 괜찮았다. 할머니는 장례 같은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가 들어가는 단어는 사실 묶어서 싫어했다. 모던 걸. 우리의 모던 걸. 내 모든 것의 뿌리. 아직 태어나지 않은 괴물의 콧등에 기대 많이 울었다.
십 년이 지났고, LA에서 하와이로 가는 비행기에 동행 없이 탔다. 옆 좌석이 빈자리였는데, 어쩐지 할머니가 곁에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또 잔잔히 눈물이 났으므로 일부러 창밖을 바라보는 척했다. 할머니가 준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새 표지라는데 넘 귀여운 거 아닌지.. 하와이 에디션으로 서울 국제 도서전을 기념해 나왔다고 한다.


이 에디션은 하와이를 같이 여행했던 엄마에게 선물하려고 한다. 읽고 나면 엄마도 훌라가 배우고 싶어 지겠지? 다음에 하와이에 가게 되면 엄마와 함께 훌라를 배워봐야겠다. 그럼 엄마와 함께 공유하는 추억이 하나 더 늘어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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