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이라는 학살
"초복날 개 좀 안 먹으면 안될까요?"
이런 말을 하면 바로 다음과 같은 말이 뒤따라 붙는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럼 닭은요? 그럼 돼지는요? 그럼 소는요? 더 멀리 가다보면 그러면 생선은요? 조개는요? ..조금 더 멀리 가다보면, 그러면 식물은요?
일일히 대답할 수는 없지만 일단 '그 논리라면 식물도 생명이니까 먹으면 안된다'의 오류만큼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식물과 동물의 근본적 차이는 움직이냐 움직이지 않느냐이다. 위험을 감지하고 피할 수 있는 동물과 달리 한 자리를 평생 지켜야하는 식물은 동물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생존전략을 펼친다. 고통이 위험을 피하기 위한 신경계의 경고라면, 식물은 애초에 능동적으로 몸을 움직여 위험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잎이 잘리고 꽃이 꺾인다고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뿌리가 잘려도 물에 꽂아두면 뿌리가 나고, 뿌리만 남아 있어도 순이 돋게할 수 있다. 또, 식물은 자신이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주변의 동물을 활용한다. 식물에게 인간은 그저 큰 꿀벌이다. 그러니 부디, 그러면 식물은 왜 먹나요? 라는 질문만큼은 묻지 말길..
다시 동물로 넘어와서, 닭, 돼지, 소. 맞다. 모든 동물들은 고통을 느끼고 고기가 되고 싶은 동물은 없다. 백 번 양보해서 야생에서 어차피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먹이사슬이 돌아간다고 해도, 우리는 더 이상 동물을 야생에서 얻지 않는다. 그들을 공장의 부속품처럼 여기며 죽지 않을 정도만의 비용과 에너지를 써서 고기가 되기전까지만 살려뒀다가 도축한다. 이왕이면 육식 자체를 안 하면 좋겠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손이 안으로 굽기 마련인 인간이니까, 개만큼은 그만 먹으면 안될까? 사람은 원래 자신과 더 가까운 사람에게 더 많은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나아가 또 다른 타인, 그리고 아주 멀게만 느껴진 남까지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 그것이 인간을 다른 동물과 다르게 만든다.
개만 왜 먹으면 안돼요? 가 아니라, 개부터라도 안 먹기 시작하면 안될까? 의 마음이다. 개는 우리의 친구이고 가족이라는 것, 우리 모두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사실이니까. 여기에서부터 이 공감과 사랑을 확장시켜 나갈 수는 없을까?
이제 막 정이 붙기 시작한 한 달차 임보아들내미 주드로(주들호)가 운 좋게(?)도 갑자기 이동봉사자가 나와 주말에 급히 출국하게 되었다. 보통 한 달을 기준으로 그 전까지는 하숙생의 느낌이 들고 한 달이 지나면 가족같아진다. 주드의 물건을 놓는 공간이 생기고 우리가 매일 함께하는 습관이 생겨난다. 정이 붙기 시작한 시점에 출국일정이 잡혀 참으로 기뻐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또 이렇게 한 마리가 먼 길을 떠나는구나. 왜 자꾸 해외로 입양을 보내냐고? 글쎄요, 한국에서 이렇게 큰 개들은 또 금방 버려지고, 그 끝은 개고기가 될 확률이 높으니까?
출국 일정이 잡히면 내 안에서 깊은 빡침이 몰려온다. 왜 이 아이를 비행기까지 태워야하며, 아니 왜 애초에 구조되야 하는 개농장의 개들이 이렇게 많은 걸까? 게다가 슬퍼할 겨를도 없이 단체에서는 다음 임보 후보자들을 보내준다. 다들 구구절절 구슬픈 사연이 있다. 얘는 어디 농장에서 어떻게 구조됐고요, 얘는 눈 앞에서 자기 친구가 불타죽는 꼴을 봤고요...
대체 요즘 세상에 누가 개를 먹는다는 말인가? 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
초복날 내가 봉사하는 단체에서는 처음으로 14마리의 대형 도사견을 모두 해외로 입양을 보냈다. 너무 많은 분들의 후원과 사랑덕에 성공할 수 있었던 구조였다. 수없이 많은 개들이 죽임을 당하는 초복에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 아이들. 이렇게 큰 덩치의 아이들이 그것도 일가족이 전부 다 무사히 해외로 출국하고 입양을 가게되는 일은 처음이라 정말 기적과도 같았다.
그렇게 무사히 출국을 시키고 귀가하는 길에 잠시 동네 보신탕 집 앞에 들렸다는 한 단체분이 열이 받아 전화가 왔다. 요즘 세상에 누가 개를 먹나 싶어 그 앞에서 차를 대고 구경했는데, 주차장이 꽉 차 길가에까지 차를 세우고 '몸보신'을 하러 들어간다고.
초복날, 대체 얼마나 많은 생명이 몸보신을 위해 죽게되는걸까? 뜬장에서 태어나 흙바닥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하고 제대로 된 물과 밥도 먹어보지 못한 채 끌려나와 다른 친구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불로 지져지고 몽둥이로 맞고. 내 몸의 '보신'을 위해 사람은 대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걸까.
닭도 소도 돼지도 오리도 토끼도,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이 귀하고 아름답다. 죽고 싶은 생명은 아무도 없고 생선과 낙지도 끔찍한 고통을 느낀다. 그렇지만 모두에게 갑자기 비건이 되고자 강요하는건 일단 나부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러면 우리, 차근차근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가면 안 될까? 가치와 신념은 결점 없이 순결한 실행보다, 그 방향성을 따라 계속 걸어가는 것이 훨씬 의미롭다. 한 명의 비건보다, 백 명이 개고기만큼은 먹지 않는 것이 의미있고, 천 명, 만 명이 가끔씩 육식을 끊는 것이 의미롭다.
기적이라는건 어느 날 갑자기 뚝 하고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선한 마음이 가녀린 눈송이처럼 차곡차곡 쌓여 눈덩이가 되고 눈사태가 되는 것을 나는 너무 많이 목격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은 선하다. 아니, 거의 모든 사람은 선하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다른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을 실행으로 옮기냐 옮기지 않느냐의 차이일뿐.
한 달간 나와 시간을 보낸 주드는 주말 출국에 맞춰 어제 미리 검역소를 방문했다. 나는 너무 바빠 같이 가지 못했고, 얼른 집에서 일을 마무리하고 주드가 돌아오면 한강으로 산책을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받게 된 전화 한통,
"있잖아, 주드랑 마지막 인사 못했지?"
사정을 듣고보니, 일요일날 너무 이른 시간 출국이라 이동에 무리가 있는데, 마침 검역소에 그 날 주드의 출국을 도와주는 봉사자분이 계셔서 오늘 그 분 집으로 이동했다가 출국하는게 어떠냐는 것이였다. 나에게 너무 미안하니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리고 만약 가더라도 잠시 인사 할 수 있게 집앞에 잠깐 들리겠다는걸 극구 거절했다.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가는 건데. 지금 인사하나 내일 인사하나 슬픈건 매한가지고, 주드는 어차피 아무것도 모를텐데. 내가 보고싶다고 어떻게 모두를 고생시켜."
그렇게 쿨하게 영상통화로 주들호 안녕!!~~~ 하고 끊었건만. 이제는 개와의 이별은 꽤나 자신 있다고 생각했건만. 또 다른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시련을 주는 임시보호의 일상. 그렇게 한참을 엉엉 울어버렸다.
내 가치관과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는걸 나쁘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도 남들에게 그런 강요를 받으면 불편하고 싫었으니까. 그런데 자꾸만 욕심이 난다. 주드가 먼 길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개를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고, 개를 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상한 말일지 모르지만, 개를 먹을 바엔 차라리 오리나 소를 먹었으면 좋겠다... 그래, 이렇게나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순결한 사상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닭과 돼지에게는 조금 관심을 덜 가져도 되니까, 개한테만큼은 조금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오리랑 토끼랑 낙지랑 광어는 내가 신경써볼테니까, 개만큼은 버려지지 않도록, 고기로 태어나지 않도록, 학대받지 않도록...
선한 마음은 바깥에서도 쌓이지만 결국 내부에서도 쌓여나간다. 내가 가지게 된 마음들은 내 안에서도 눈처럼 내리고 쌓이고 눈덩이가 되고, 내 안에 산사태를 일으킨다. 끊임없이 산사태를 일으키며 살아가고 싶다. 내 안으로도 내 밖으로도. 그 때까지 아무리 슬프고 힘들어도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지켜야할게 아무것도 없다면 그건 삶이 아니니까.
주드야! 지금까지 입양간 친구들이 너무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걸 잘 알아서 이제 너를 떠나 보내는게 무섭지 않아. 그치만 집 구석구석에 너가 물어뜯은 쇼파며 슬리퍼며 옷들을 볼때면 한동안 너가 너무 보고싶을거야. 엄마는 너가 검역소 다녀온 동안 너가 물어뜯어서 구멍낸 레페토 신발을 수선 맡기러 갔었단다. 수선집 사장님이 새로 사라고 뜯어 말리는걸 6만원이나 주고 어떻게든 신발같이 보이게만 만들어달라고 했어! 그 신발을 엄마가 꼭 평생 간직할게. 주드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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