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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는 여행 중 Oct 23. 2021

바다에서 만난 우리들

가진 건 편도 티켓뿐, 240일간 이어지는 무계획 여자 혼자 남미 일주


바다에서 만난 우리들. 수영이 아니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후다닥 옷을 벗고 물속 깊이 다이빙을 하는 친구들이 신기했다. 도통 바다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는 나를 보며 의아해하는 친구들에게 쭈뼛대며 말을 꺼냈다. ‘사실 나 수영을 못해’

그러자 세 개의 입에서 동시에 같은 소리가 나왔다. ‘뭐! 말도 안 돼!’



옆에서 손잡아 줄 테니 믿고 들어와 보라는 이리스. 이 쪽빛 카리브해를 눈앞에 두고 발조차 적시지 못한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긴 하다. 친구들의 응원에 힘입어 왼발, 그리고 오른발. 천천히 몸을 적셨다. 삼십 도를 웃도는 뜨거운 날씨에 알맞게 데워진 바닷물은 기분 좋은 시원함을 주었다. 좋아진 기분에 좀 더 용기 내어 수위가 낮은 물가에 반쯤 쪼그려 앉아 상체까지 물에 담가보았다.

이게 별거라고 주변을 둘러싸고 박수를 치고 있는 저 세 녀석들. 말로는 창피하니까 그만하라고 했지만 사실 정말 고마웠다. 서로 만난 지 한 시간도 안 됐는데 서로가 서로를 챙기며 빠른 속도로 친해졌고 편안해진 마음에 물에 대한 공포심도 조금은 가라앉았다.


각자 하나씩 챙겨온 수영 도구들을 서로 돌아가며 사용했다. 루이스의 오리발, 마누엘의 스노쿨 마스크, 이리스의 물안경, 그리고 수영할 생각이 없어 아무것도 챙겨오지 않았던 나는 고프로로 친구들의 인생 샷 찍어주기를 담당했다. 마치 미리 짠 듯이 어떻게 겹치는 것 없이 각자 다른 종류로 들고 나온 건지. 서로를 마주 보며 깔깔대고 웃었다. 누가 바닷물에 행복 포션 한 바가지를 풀어놓은 걸까, 우리는 사소한 모든 것들에 세상이 떠나가라 웃었다.



갑자기 루이스가 저 멀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저 섬까지 가보자!’
멀지 않은 거리에 섬 하나가 보였다. 수위는 꽤나 낮았고 굳이 수영을 하지 않고 걸어서도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 가보자.
섬을 향해 걷는 길. 물은 계속해서 가슴 언저리까지 올라오는 정도였다. 안심하며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단 한걸음 차이로 수위는 내 키 이상으로 높아졌고 순식간에 물 밑으로 끌려 내려갔다. 바다를 마치 땅처럼 다루려던 내 과오였다. 팔을 위로 높이 뻗고 펄쩍 펄쩍 뛰며 헬프! 를 외치는 내 목소리는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던 친구들에게 쉽사리 닿지 않았다. 높이 뛸수록 더 깊이 물에 잠겨가는 나를 보며 아, 나는 이대로 죽겠구나 싶었다.

 

몇 초의 시간이 더 흘렀을까 온몸에 힘이 다 빠져갈 때쯤, 누군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한 명은 상체를 다른 한 명은 다리를 잡은 채 나를 물 밖까지 끌고 나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엔 무슨 일이 난 건지 궁금한 마음에 모여든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리고 그 옆엔 너무 미안하다며 눈물짓고 있는 곰만한 덩치의 루이스가 보였다. 사실 겨우 살아났다는 안도감보단 잔뜩 모여든 사람들의 눈길에 대한 창피함이 더 컸다. 지구 반대편에서 신문 1면을 장식할 뻔했, 휴.


오늘에서야 배웠다. 물에 빠졌을 때는 온몸의 힘을 빼야 다시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을. 겁에 잔뜩 질린 채 온몸에 힘을 주고 있었으니 물밑으로 가라앉던 게 당연한 거였다. 한국에 돌아가거든 수영을 꼭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코앞에 두고도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을 다시는 마주하지 않아야지.




다음날 아침 다시 바다로 모인 우리들. 어제의 상황 때문이었을까, 대체 어디서 난 건지 의문의 구명조끼를 들고 나타난 루이스.
한국의 여느 바닷가에서 그렇듯 여기도 튜브나 구명조끼, 수경, 파라솔 등 각종 물놀이 용품을 대여할 수 있는 노점상들이 있다. 루이스는 오는 길에 내 생각이 나 하나를 빌려왔다고 한다. 하루 종일 쓰라며 건네는데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했다.

사실 어제 생사를 오갔던 경험으로 오늘은 해변에만 머물려던 생각이었는데 이젠 구명조끼가 생겼으니 망설일 것이 없었다. 맘 편히 온몸을 적셨다. 한없이 투명한 바다 앞에 물 공포증은 자연스레 힘을 잃었다. 카리브해의 마법에 빠져 인생 첫 다이빙을 시도했고 누가 봐도 형편없는 폼으로 떨어졌지만 뿌듯함이 하늘을 찔렀다.



해 질 녘이 되어 물에서 나와 즉석에서 섞어주는 해변의 노점 칵테일 바로 향했다. 다 같이 짠- 을 외치며 가게에서 흘러나오던 레게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이렇게 하는 거라며 몸소 현란한 살사 스텝을 선보이던 이리스. 그렇게 광장 한복판에서 살사 댄스 강의가 시작됐다. 

‘제니! 왼쪽 발이 두 번! 그리고 오른쪽으로 다시 두 번!’

신나게 흐느적거리고 있는 우리의 주변에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알콜이 주는 힘이었을까, 처음 보는 사람들과 몇 곡의 노래가 흐를 동안 함께 발맞춰 움직였다. 마치 뮤지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사리 꺼지지 않는 흥에 결국 다 같이 디스코테카로 향했고 밤늦도록 그놈의 살사 강습은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몸치인 나는 자꾸 박자를 놓치고 스탭이 엉키기만 했지만 그럼에도 그저 행복했던 그곳. 카리브해의 마법에 단단히 빠졌다.







내일은 어디서 눈을 뜰까요

가진 건 편도 티켓뿐, 240일간 이어지는 무계획 여자 혼자 남미 일주

By. 제니 (@hyeziin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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