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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는 여행 중 Aug 20. 2021

두 밤만 더 묵고 갈게요

가진 건 편도 티켓뿐, 240일간 이어지는 무계획 여자 혼자 남미 일주


여행의 시작부터 액땜을 한 덕분일까, 보고타에서의 일주일은 지나치게 행복했고 완벽했다. 호스텔을 옮겨온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단 다섯 명이 머무는 작은 복층 호스텔에서 우린 매일 밤 함께 먹고 마시고 춤추고 웃었다. 이틀여만 머무르려던 생각은 첫날부터 사라졌다.


 나의 아침은 호스트 존에게 예약 연장을 요청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존, 호스텔 하루만 연장해 줘!
 존, 이틀만 더 머물게!


나의 발목을 잡은 것은 유명 유적지나 거대 미술관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첫 번째는 길거리에서 수공예 팔찌를 팔던 아저씨. 값을 묻자 Para amiga Dos! (친구에겐 2,000페소!)라고 대답하셨다. 그 이후로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날 알아보고 웃으며 Amiga! (친구!!)라고 인사해 주셨고, 떠나기 전 마지막 날 찾아가자 팔찌 하나를 공짜로 선물해 주며 안전한 여행 되라고 말해주셨다. 그 팔찌는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팔목에 단단히 채워 두었다.


두 번째는 카페에서 만난 대학생 친구들. 아이스크림 하나 사는 데 선택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주문 방법이 헷갈려서 결국 바로 뒤에 서있던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모든 맛을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해 줬고 이후 주문을 해주더니 자연스럽게 계산까지 해버렸다. 깜짝 놀라 돈을 주겠다고 얼마였냐고 묻자 됐다며 멀리서부터 우리 동네로 여행 와줘서 고맙고 네가 행복한 기억 하나 더 만들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영화에나 나올 법한 대사를 읊었다. 이후 함께 테이블에 앉아 긴 시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이대가 비슷해 통하는 게 많았고 결국 내일 하교 후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급 약속까지 잡게 됐다. 다음 날 음료수를 삼으로써 신세를 갚게 되어 다행이었다.


세 번째는 존의 사촌, 다니엘라. 우리는 그를 다나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다나는 우리가 너무 좋다며 매일같이 호스텔로 찾아와 시간을 보냈다. 라틴 음악이라곤 하나도 모르던 내게 끊임없이 노래를 추천해 주다가 어느 날엔 공연표를 구했다며 클럽에 데리고 가서 결국 라틴 음악에 빠지게 만든 친구다. 동네 맥줏집에서 각자의 지난 연애사를 얘기하며 웃기도 하고, 스노우 카메라 앱을 알려주자 내 핸드폰에 셀카를 수십 장 찍어 놓고, 간단히 만든 요리에도 쌍엄지를 올리며 기분 좋아지게 만들어주던 귀여운 다나.


네 번째는 나를 이 호스텔로 체크인하게 만든 장본인, 진실 언니. 스페인어를 배우며 이미 한 달째 머물고 있었으며 앞으로도 몇 달 더 이곳에서 지낼 계획이라고 했다. 언니는 혹시라도 소매치기를 만날까 싶어 외출 시 매일 두르고 다니는 스카프 뒤로 카메라를 숨겨놓고 화면도 보지 않은 채 대충 셔터만 누르는 독특한 방법으로 사진을 찍고 다녔는데, 그럼에도 매일같이 내 인생 샷을 만들어 주는 게 정말 신기했다.

왜 수많은 나라 중 하필 콜롬비아를 선택했냐고 물으니 ‘춤이 좋아서요!’라고 해맑게 답한다. 콜롬비아는 살사의 본고장이니 타당한 이유였다. 이미 한 달이나 머문지라 온갖 동네 맛집을 줄줄이 꿰고 있던 덕분에 헤맬 일 없이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보고타를 내 집처럼 느끼게 해준,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새로운 사람들과 하루하루 관계가 깊어져가는 일은 재밌었지만 언제까지고 여기에만 머물러있을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모든 게 완벽할 때 떠나자, 그래서 이 도시를 완벽했다고 기억하자.'


그렇게 다음 날엔 조금 다른 말을 건네게 되었다.


존… 나 오늘 밤 떠나려고!


조식 시간마다 내 연박 요청을 들으며 다 같이 웃곤 하던 친구들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여행 중 만남은 헤어짐을 알고 시작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슬픔이 덜하지는 않다.
‘Don’t go’를 오십 번도 더 외쳤을 다니엘라. 울먹이는 목소리에 결국 나까지 울음이 터졌지만 그래도 가야만 한다. 도시를 떠나는 버스는 밤 10시에 출발하기에 다 같이 마지막 점심과 아이스크림, 그리고 저녁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 

평소처럼 끊임없이 웃고 떠들던 우리는 항상 ‘집’이라고 부르던 호스텔로 돌아와 내가 가방을 싸기 시작할 때부턴 아쉬움에 적막만이 흘렀다. '또 보자'는 말은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차라리, 다들 건강한 여행하라고, 늘 행복하라고, 마지막 말을 건넸다.


나를 태운 택시가 저 멀리서 좌회전을 하며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단 한 사람도 들어가지 않고 계속 손을 흔들어주었다. 과분한 일주일이 지났다. 보고타를 생각하면 도시의 형태가 아닌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이 떠오른다. 언제라도 마음이 따듯해지는 기억이다.






내일은 어디서 눈을 뜰까요

가진 건 편도 티켓뿐, 240일간 이어지는 무계획 여자 혼자 남미 일주

By. 제니 (@hyeziin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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