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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Jang May 04. 2022

영알못 대학생-1, 해외 인턴을 마음먹다.

멀게만 느껴졌던 해외 인턴, 해외 생활. 도전하다.

 


대학교 시절 영양사 면허 시험 준비, 위생사 자격증 등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갑자기 엉뚱한 해외 인턴을 떠났고(위험하다면서 나를 그렇게나 말리시던 교수님의 얼굴이 아직도 떠오른다), 그 이후 다양한 업계의 회사들과 엄청나게 많은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다. 

처음에 도전할때는 나도 주저했고 어려웠다. 특히 영국계 Finance 회사에서 한국 마케팅 총괄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을때, 나는 관련 과도 아니고 딱히 경력도 없었지만 도전했고 성공적으로 에이전시로서의 첫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이후 마케팅 에이전시를 운영하다가 사업 파트너를 만나 현재는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업계의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느낀 것은, 사실상 내 배경 및 한국식 스펙은 크게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내가 가진 열정과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발로 뛰어온 길 그리고 나만의 스토리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한국식 교육과 한국식 대학교육으로는 나만의 스토리를 집대성해내기가 많이 힘든 점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자신만의 스토리를 쌓아가는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다.) 나는 그점을 20대 초반에 느끼지 못했고, 이렇게 내 나름대로의 길을 가다 보니 알게 된 것이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이러한 길에 대해 의구심이 있다거나 의문을 품는 청년들이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행복할 것 같다.  



평범한 대학생, 꿈을 꾸다.


해외 생활, 해외 인턴,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즐거운 생활을 하는 것. 이는 내가 고등학생때부터 막연하게 꿈꿔 왔던 멀게만 느껴지는 그런 꿈이었다. 하지만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유학이나 교환학생을 보내달라는 이야기를 꺼낼 수 조차 없었다. 

그렇게 중고등학교 시절이 흘러만 갔고, 대학에 입학했다. 과는 식품영양학과. 하지만 딱히 영양사나 식품 관련 직종에는 관심이 크게 없었다.

사실 이때부터 나의 해외를 나가고자 하는 본능이 싹텄던 것 같다. 딱히 자랑할만한 학점도 아니었고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평범했지만, 속에서는 무언가를 향한 답답함이 계속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일을 찾고자 대학생활 동안 무려 3번의 인턴을 했지만, 결국 만족하지 못했고 이는 영양사 실습을 하게 되면서 더 명확해 졌다.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보라카이 

언어가 하나도 통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놀았던 필리핀 친구들

그러다가 3학년 여름방학, 친한 친구와 함께 필리핀 보라카이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사실 원래 필리핀 어학연수를 간다는 명목 하에 갔지만, 사실 막상 어학 연수를 가지는 않았고 여행으로 노선을 변경하였다. 철없는 행동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으므로 괜찮다. 

겨우 영어 몇마디 내뱉는 실력으로 친구와 필리핀을 여기저기 쏘다녔다.

미소짓기만 하면 모든것이 만사 오케이였다. 필리핀은 그런나라였다. 


보라카이 첫날 밤, 친구와 숙소에 짐을 내려 놓고 바로 밤거리로 나섰다. 엄청난 인파와 화려한 클럽, 바의 모습에 정신이 혼미했다. 하지만 곧 그 혼미함은 곧 두근거림으로 바뀌게 되었다.

간단하게 밥을 먹고 우리는 epic(에픽)이라는 라운지 바에 가게 되었다. 영어 한마디 잘 못하는 상태로 갔으니 맥주 한잔 시키기도 버거웠다.

줄곧 필리핀 남성들이 희롱을 해와서 크게 당황했지만,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화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만약 지금 그들을 보게 된다면 영어로 욕을 퍼부어 주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어색하게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이국적이고 너무 이쁜 필리핀 여자 2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Hello! where are you from?"

영어도 잘 못하고 어색하게 웃음짓는 우리에게 같이 합석하자고 하였다. 그 당시에는 낯선이에 대한 위험함 개념도 없었기 때문에 같이 맥주를 마시면서 놀았다. 그러다가 우리는 곧 그녀들이 추천하는 맥주바에 가게 되었다. 미국인 오너가 운영하는 맥주바였는데 그곳에는 필리핀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친구 왈, "야 저 기타치는 남자애가 자꾸 나한테 윙크하는데?" 당시에는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곧 우리는 자연스럽게 합석해서 맥주를 마시고 놀았다.

총 9명, 국적도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으로 통하면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재밌게 놀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친구 그이상의 무엇도 없이 정말 순수하게 재밌게 놀았다.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재밌게 마시고, 보라카이 바다를 배경으로 한 후카(물담배) 바 를 가게 되었다. 난생 처음으로 해본 물담배여서 사실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으나 그냥 재밌게 웃고 떠들고 같이 바디랭귀지로 소통하며 재밌게 새벽 5시까지 놀았다. 


그 다음날, 우리는 또 에픽 클럽을 놀러갔고 그곳에서 kevin 이라는 프랑스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상하이에 있는 회사의 인사팀에서 일하는 친구로, 페이스북도 교환하고 해외 생활 및 해외 취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번역기를 써가면서 나에게 알려주었다. 사실 이때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평생 국내에 살면서 배웠던것이 전부가 아니구나, 세상은 넓고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


이후 몇년간 케빈, 필리핀 여사친들과 페이스북으로 간간히 연락을 하면서 안부를 묻곤 한다.

이후 영어가 늘고, 해외에 살면서 만났던 친구들보다 오히려 이때 만났던 친구들과 더 오랜기간 안부를 묻고 친분을 유지한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이 당시 솔로였던 필리핀 여사친들은 모두 결혼하고 아이가 벌써 5살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해외 인턴을 지원하다.


필리핀 여행의 충격으로 나가야 겠다고 다짐했다. 그게 무슨 일이던, 어떤 식으로던 무조건 나가서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었다.

바로 휴학신청을 했다. 그리고 인터넷을 뒤져 해외 인턴 정보를 알아보았다.

해외취업 하기에는 영어가 부족하고 스펙이 없고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갈 돈은 없었으므로 나에게는 돈을 조금이라도 지원해주는 해외인턴이 유일한 길이었다. (해외 인턴은 몸으로 뛰면서 영어 공부를 하는 최고의 길이다.)

당시 해외인턴을 간 모든 사람들의 후기를 네이버에서 읽고 읽었던 것 같다.

그렇게 베트남의 해외 리조트 인턴 공고를 보게 되었다. 요구 사항은 토익 스피킹 6.

당시 나는 토익 스피킹이 뭔지도 몰랐던 상태였다. 셰이임 선생님의 강의를 끊어 2주만에 요구하는 점수를 달성하고 바로 지원했다. 이후 면접 요청이 왔다. 면접자는 스위스인 총괄 매니저와 베트남인 직원. 당시 면접 장소도 마땅하지 않아서, 당시 친구가 살던 오피스텔에서 면접을 봤다. 지금 생각해보면 터무니 없었던것 같지만.

사실 면접 도중 그들이 하는말의 80%는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최대한 웃으면서 자신감있게 대답했고. 다행히도 결과는 합격. 솔직히 그들도 뽑으면서 긴가민가 했으리라 믿는다.

이후 충격적일 정도로 좋지 않은 영어실력을 가지고, 출국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다음편 - 베트남에서의 첫 해외 인턴 생활

부록 - 최소한의 비용으로 영어를 배우자, 해외 인턴 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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