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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강 Feb 12. 2024

 '짜파게티'는  세계 어디서나 통한다!

짜파게티가 영국 친구들을 울린 사연!



바람이 거칠게 불던 2002년 9월의 가을 어느 날, 저는 영국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교 파운데이션 과정 (St Andrews Foundation Course)을 시작하기 위해 홀로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Edinburgh)에서 몇 시간 기차를 타고, 세인트 앤드류스(St Andrews)에 도착하였습니다. 영국에는 대학 입학을 위해 필요한 것이 'A-level'이란 시험인데, 이 시험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대학 '파운데이션' 과정입니다. 주로 영어 성적과 고등학교 내신 성적, 파운데이션 과정 성적을 종합하여 평가해 대학입학을 결정합니다.

도착한 세인트 앤드류스는 골프의 발상지로 유명하며, 해안가에 위치한 아름다운 마을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도심 생활에 익숙해진 저에게는 황량한 벌판 같은 느낌이 들었고, 더불어 저의 마음속 한가운데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함께 했습니다.


세인트 앤드류스 (올드 골프 코스 전경)




당시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교 기숙사는 다음과 같이 동 배정이 되었는데, 한국 학생들은 A동에, 중국 학생들은 B동에, 그리고 일본 학생들은 조금 떨어진 다른 동에 배정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같은 국적을 가진 학생들과 함께 기숙사에 머물러서 좋은 점도 많았지만,  첫 기숙사 생활의 불편함과 영어 실력 늘리기의 어려움으로 인해 저는 기숙사를 일찍 나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부동산에 가서 집을 알아보는 대신, 영국 학생들과 같이 사는 집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즉, 제가 영국 학생들이 살고 있는 집에 방 하나를 얻어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학교 게시판에 붙어있는 플랏 메이트(Flat mate) 광고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맘에 드는 광고 하나를 찾았습니다.


  '플랏 메이트(Flat mate) 구함. 여학생 원함.

   남자 3명, 여자 1명이 살고 있음'



저는 이 광고를 보자마자, 이른바 '면접'을 보러 달려갔습니다.


키 크고 잘 생긴 노랑머리의 영국 남학생, 뭔가 불만이 있는 듯한 갈색 머리의 영국 남학생, 전형적인 영국 신사의 느낌이 물씬 나는 영국 국적의 남학생, 그리고 유대인계 영국 여학생이 절 둘러싸고 면접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이 물어봤습니다.


" 너 어디서 왔어? "

" 코리아 "


" 북한? 남한? "

" South. 남한. "


" 다른 건 없고, 우리가 맘에 들면, 들어와 살아도 돼. 우린 네가 꽤 맘에 들어. "


라고 그들이 말했습니다.


며칠 후, 저는 그 집에 들어가 방 하나를 얻어 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그 집에 들어가서는 영국 학생들과 쉽게 친해질 수 없었습니다.

제가 본 영국 학생들은, 자기 음식만 해 먹는 매우 개인적인 성향으로 보였어요.

식사 시간에만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고,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순 없었어요.


하지만, 플랏 메이트들과 매우 친해질 사건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짜파게티 사건' 이예요.


저는 그날도 평소날과 마찬가지로 저녁 준비를 하러 키친에 갔어요. 다른 플랏 메이트들도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고요. 그날의 제 메뉴는 바로 한국에서 물 건너온, '짜파게티'였습니다.



처음에는 영국 메이트들이 한국 음식 중 '개고기'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며, 한국 음식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더군요. 그래서 전 내심 섭섭한 마음에 평소 제 음식을 먹어보란 말 한마디 하지 않았고, 조리한 음식을 저 혼자 먹고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날은 어쨌든 짜파게티를 조리했는데, 음식을 좀 넉넉하게 해서 놀러 온 우리 집 남자 플랏메이트의 미국인 여자친구인 '다이애나'에게 조금 먹어보라며 음식을 권했습니다.



 


다이애나는 미국 뉴욕에서 여동생과 함께 세인트앤드류스로 유학을 온 금발의 미국인 여학생입니다.

미국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고, 어렸을 적부터 한국인 아이들과 많이 어울려 봤다고도 말하면서, 저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의 문을 열고 다이애나와 친하게 지내기로 했습니다. 짜파게티를 함께 먹으면서 말입니다... 다이애나는 짜파게티가 아주 맛있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맛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한 그릇을 다 비웠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뒤, 또 다른 저녁 시간이 되어 키친에 들어갔습니다.

플랏 메이트들과 그들의 동네 친구들이 모두 다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 너 다이애나한테만 그 누들 (Noodle: 국수= 즉 '짜파게티') 해줬다며? 왜 우리한테는 안 해줬어?

  그게 그렇게 맛있다던데? 우리도 좀 먹자, 그 블랙 누들!!!"


플랏 메이트들과 그들의 친구 몇 명은 짜파게티가 그렇게 맛있다더라고 하면서, 짜파게티가 있냐고, 먹고 싶다고 하는 겁니다.


언제는, 한국 음식 하면 '개고기'를 잘 안다면서, 야만적인 것 같다느니... 할 땐 언제고,

갑자기 블랙 누들, 블랙 누들... 노래를 부르면서, 짜파게티를 너도 나도 찾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짜파게티를 요리해 줬고, 그들은 요리를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부터 영국 친구들은 다시는 한국의 요리를 야만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한국을 맛있는 짜파게티를 생산하는 '미식가의 나라'로 생각했습니다. 이후, 한동안 한국에서 제니강 앞으로 짜파게티가 몇 박스 씩 소포로 오곤 했답니다.


웃기는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지만, 저와 제 플랏메이트들은 모두 이 짜파게티를 계기로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짜파게티를 먹을 때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며 입가에 미소를 짓곤 합니다...



영국 유학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짜파게티'를 챙겨 가시는 것,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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