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한 대로 된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럼 생각대로 되지 않으실겁니다.

by 제니의 지금라이프

우리 부부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은 단 하나의 명제.

“생각한 대로 경험한다.”

오늘은 이 주제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인생은 생각대로 되지 않아" VS "인생은 생각대로 돼"

대부분은 앞의 문장, '인생은 생각대로 되지 않아'라는 말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왠지 그게 진실처럼 들리고, 본인의 경험과도 맞아떨어진다고 느낀다.

반면 '인생은 생각대로 돼'라는 말은 어딘가 어색하게 들린다.

말로 해본 적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거의 없을 것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주제가 시작된다.


'인생은 생각대로 되지 않아'라고 믿는 사람은 실제로 그런 현실을 경험하게 된다.

'인생은 생각대로 돼'라고 믿는 사람 또한 실제로 그런 현실을 경험하게 된다.


왜?

'생각한대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 말이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자신이 '믿고 있는 대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부자가 되고 싶어" VS "부자가 될 거야"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부자가 될 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 이면에는 '나는 부자가 될 수 없어'라는 믿음이 깔려있다.

의식에서 아무리 바랄지라도, 무의식적으로 부자가 되지 못할거라고 믿고 있다면, 그 무의식의 믿음대로 될 것이다.


당신이 내일 강남에서 누구와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고 치자.

내일 강남에 가는 건 당신에게 정해진 미래이고 이에 대한 의심이 전혀 없다.

그럼 '나 내일 강남에 갈거야' 라고 하지, '내일 강남에 가고 싶다' 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현실은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믿는대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믿음은 무의식에서 발현된다.

무의식에 내재된 믿음에 따라 우리는 결정하고 행동한다.




신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렇다면 이런 '믿음', '생각', '신념'은 어디서 오는걸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생각하고, 스스로 신념을 선택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신념은 어린시절 부모나 가까운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형성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주변 환경에 여과없이 영향을 받는다.



나의 경험 (돈에 대한 무의식)

우리 부모님은 돈에 대해 직접적인 가르침을 주신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분명 돈에 대한 특정한 신념을 가지고 자랐다.


부모님이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단 한번도 뭐라하신 적은 없었지만,

그분들의 생활 방식 자체가 나의 신념이 되었다.


우리 아버지는 시골에서 자라, 성인이 채 되기도 전에 홀로 서울에 올라오셨다.

엄마를 만나 딸들을 낳으시고, 클 때까지 엇나가지 않게 잘 키우셨다.

가장으로서 경제적 책임을 떠안으며 아버지는 돈의 압박을 엄청 많이 받았을 것이다.


우리 집은 단 한번도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은 적이 없었다.

그 흔한 짜장면, 치킨, 외식도 당연히 거의 없었다.

엄마는 항상 집에서 직접 음식을 해주셨다.


초등학생 때 4,000원짜리 틴트를 샀다가 언니에게 거세게 혼났다.

언니는 내 손을 잡고 문방구를 찾아가 '애가 뭣 모르고 샀으니 환불해달라'고 항의했다.

나는 고개가 꺾이도록 언니와 문방구 아저씨를 올려다보며 어쩔줄 몰라했다.

내가 왜 잘못했는지에 대한 이해는 없이, 그저 '돈을 쓴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받아들였다.


20대 초반 대학생 때, 30,000원짜리 유니클로 후드집업을 샀다가 아빠에게 핀잔을 들었다.

아버지는 내 방문을 열고 '이런 걸 왜 샀냐'는 식으로 나를 쳐다보고 나가셨다.

1분도 안되는 순간이었지만, 그 때 그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런 경험들이 반복되며 내 무의식에는 '돈을 쓰는 것은 죄책감과 연결된 행위'가 되었다.

돈에 대해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그 모든 경험은 '돈은 아껴야 하고, 돈이 나가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이제와서 이렇게 알아차리고 인지할 수 있는 것이지, 무의식의 진짜 무서운 점은 인지조차 못한 채 스며든다는 것이다)



이후 돈벌이를 하는 성인이 되어서도 어린시절 새겨진 돈에 대한 무의식은 사사건건 나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어른이 된다고 자동으로 교정이 될 것 같은가? 아주 오해입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회사에 지각할 뻔한 적이 있었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폭염이었는데,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데만 10분, 그 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한 숨도 쉬지 않고 뛰어갔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 상황에서 택시를 탈 수도 있었다.

(택시는 그럴 때 타라고 있는건데!)

하지만 내 머릿속엔 애초에 택시라는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무의식에서 돈이 나가는 옵션은 아예 차단시킨 듯하다.


그리고 나는 이 신념을 남편에게도 강요했다.

택시를 자주타는 남편을 보면서 잔소리를 엄청했다.


'지하철을 두고 택시를 왜 타?'

'출근 시간은 붐비지도 않는데 택시를 왜 타?'

'지하철 요금의 몇 배가 되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남편은 출근길 시간을 이용해서 업무를 봐야하거나, 컨디션 조절이 필요할 때만 택시를 타는 자기만의 원칙이 있었지만, 나에게 그런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돈이 나가냐 안 나가냐만 눈에 불을키고 찾았다.


어린시절에 형성된 신념은 이렇게 나도 모르게 일상 속에서 강력하게 작용하고 주변에까지 퍼뜨린다. 그리고 내 인생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아이가 있다면 아이도 그렇게 된다)


그 신념을 가져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고

심지어는 그 신념이 나의 삶을 더 힘들게 하고 있었음에도

무엇이 문제인지 나는 도통 알 수 없었다.


내 신념과 타인의 신념이 부딪힐 때 스스로의 신념을 점검해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인간은 자기가 옳기를 바라는 존재다. 나와 반대되는 것은 배척하고 내 것을 고집하는 존재다.

스스로 통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다.



우리가 믿는 것이 곧 우리의 현실이 된다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계속해서 돈을 아껴야만 하는 현실이 펼쳐진다.

우리가 생각한대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돈에 대한 나의 무의식을 바꾸기 전까지 '돈을 쓰는 것'은 나에게 고통이었다.

내가 부모님에게서 이 무의식을 물려받았듯이,

나도 모르게 내 무의식을 남편에게 전파하면서 나의 괴로움도 같이 전염시키고 있었다.


'지불은 고통이야!'

이 상태에서 나에게 만약 아이가 생겼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 신념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 신념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돈에 대한 신념을 바꿨다.

부자의 마인드를 무의식에 세팅하기 위해서다.


'돈은 나를 자유롭고 기쁘게 한다.'

'돈을 쓰는 건 즐거운 일이다'


돈을 아끼는 건 부자의 관심사가 아니다.

돈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쓸 지, 더 즐겁게 쓸 지를 생각한다.


몇 주간의 훈련을 거친 뒤, 내 삶의 경험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것들을 누리는 일이 죄책감이 아닌 기쁨이 되었다.


카페나 음식점에서 친절한 직원에세 소소한 팁을 주는 일이 습관이 되었는데,

이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신념은 원래 증명할 수 없다

신념이란 본질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인권'이 있다고 믿는가?

그렇다면 증명해보라.


인간의 권리가 어디에 있는가?

하늘에? 땅에? 헌법에?


인권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믿기로 합의한 개념일 뿐이다.

그게 함께하는 세상에서 서로를 더 나은길로 인도한다고 믿기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모든 신념이 다 마찬가지다.

증명할 수도 없지만, 증명할 필요도 없다.

그렇기에,

"나에게 도움이 되고,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신념을 선택하면 된다."


'인생은 괴로워' 라고 믿으면 계속해서 괴로운 일들이 펼쳐질 것이다.

'인생은 즐거워' 라고 믿으면 즐거운 일들이 펼쳐질 것이다.


나는 "돈을 쓰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고 믿기로 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대로 살아간다

그리고 무엇을 믿을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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