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감정 표현 잘 못해'
'나는 원래 이런거 싫어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이런 말들은 겉으로 보기엔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처럼 들린다.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 말은 나 스스로를 어떤 정해진 틀 안에 가두는 무의식적 선언일 수 있다.
'나는 이렇게만 살아야 한다'는 식의 고정된 믿음.
처음부터 그랬던 것도 아닌데,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단정 짓는다.
우리는 반복된 경험을 통해 특정한 생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생각을 오랫동안 믿고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부터 그게 '나 자신'이라고 믿게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생각은 신념이 되고, 신념은 사실이 되기 시작한다.
더는 질문하지 않게 되고, 그렇게 검토되지 않은 내 생각은 현실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어릴 적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을 때 돌아온 반응이 차가웠다면 어떨까.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그 정도 일로 울긴 왜 울어?"
혹은 무시당했거나 외면당한 기억이 반복됐다면, 그 경험은 무의식 깊숙이 이런 메시지를 남긴다.
'감정은 드러내면 위험해'
'솔직해지면 상처받아'
그런 판단이 내려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용기 내어 꺼낸 말 한마디가 조롱으로 돌아왔던 순간, 뇌는 그런 상황을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 되는 일'로 분류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몸에 새겨진다.
그렇게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뇌는 그 경험을 피하려 든다.
점점 감정을 삼키고, 아무일 없는 척 하는데 익숙해진다.
말보다 표정을 먼저 읽고, 눈치를 먼저 살피고, 자신은 언제나 한 발 뒤로 물러서 있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원래 감정 표현 잘 못해'
그 말 안에는 아무도 모르게 억눌러온 수많은 순간들이 숨어있다.
문제는 이런 정체성이 삶의 가능성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감정을 표현해야 할 순간이 와도, 무의식은 자동적으로 그걸 막아선다.
표현하지 않아야 안전한다는 착각이 반복되고, 결국 감정을 나눠서 좋은 경험이 생기는 기회조차 사라진다.
그렇게 스스로가 만들어낸 믿음을, 스스로가 계속 증명하며 살아가게 된다.
'나는 왜 못하지?' 라고 묻는 대신,
'나는 원래 못해' 라는 말이 익숙해진다면
변화의 문은 조금씩 닫히게 된다.
더 나은 관계, 더 다양한 경험, 더 자유로운 삶을 가능하게 했을 수많은 길들이
'나답지 않다'는 이유로 사라진다.
그 말 속엔 사실 '나는 다치기 싫어'라는 무언의 외침이 숨겨져 있다.
나는 정말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까?
지금 내가 믿고 있는 이 생각은 진짜 사실일까?
아니면 그저 오래된 기억이 만들어낸 신념일 뿐일까?
한 번쯤은,
그 말의 진짜 정체를 조용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