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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메제니 Sep 10. 2021

엄마는 올-라운더

엄마능력치 레벨업 새로운 나를 만나다

                                                                                                                                                                               

엄마는 올라운더. 


올라운더(all-rounder)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이러하다. 만능선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 즉,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것을 큰 폭의 단점 없이 해내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엄마는 자의반, 타의반 올라운더가 된다. 할 수 있고, 아니고의 영역이 아니다. 역할의 특성상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공헌해야 한다. 엄마는 올 라운더로 성장하면서 점차 하루하루의 일상이 훨씬 수월해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주부 9단이라는 표현이 곧 우리집 올라운더의 정점을 찍었다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내 중심이던 세상은 새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완전히 달라진다. 그에 따라 필요한 역량 또한 상상 이상이다. 혼자 지낼 때는 요리를 못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니였고, 청소를 몇 일 못한다 해도 대수가 아니였다. 그러나 엄마의 세상에서 요리란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고 전쟁이다. 게다가 몇 일만 청소에 손을 놓으면 집안이 엉망이 되는건 한 순간이다. 


나는 한 가정은 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깨끗한 환경, 좋은 복지 서비스, 건강하고 맛있는 식사가 제공되는 곳. 그리고 완벽하진 않아도 그런 가정이 가깝도록 모두 알게 모르게 힘쓰며 살아간다. 우리 모두 살기 좋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지속적으로 공들이고, 공헌하고, 자잘한 수고로움 감내해야한다.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 그 역할은 엄마가 맡게된다. 매일 새로운 하루가 주어지지만, 가정이 자리 잡을 때까지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반복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들이 존재한다. 현모양처를 꿈꾸는 사람들은 그 과정이 행복할 수 있겠다만 적어도 나에게 이런 과정들이 순탄하지 않았다. 그 결과 집안일을 향한 부정적인 감정, 나라는 사람이 가진 부족함에 초점이 맞춰졌다. 물론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이 행복하기도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하소연과 넋두리들이 쌓여만 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어떤 계기로 생각이 전환이 일어났다. 나라는 개인의 삶의 큰 싸이클을 두고 봤을 때, 이 시간은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고, 인생에서 이 시점은 내 삶의 종착지가 아니라 여정이라는 생각. 도리어 이 여정이 나를 더 큰 사람으로, 올-라운더로 성장 시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실제로 엄마가 되면서 한 개인으로서 발전하고, 성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모르거나 할 수 없는 것들도 많다. 그런 케이스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원래는 운전을 하지 못했지만, 아이가 생겨서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고 운전을 할 수 있게 된 케이스. 요리에 요 자도 몰랐지만 아이 이유식 부터 가족의 식사까지 이제는 뚝딱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케이스 등등. 사소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것들도 사랑하는 아이와 가족의 편의를 위해서 기꺼이 할 수 있게 된 것들 말이다.


이 외에도 생각보다 엄마에게 필요한 역량은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아이들 밥을 준비한다(스케줄관리,요리). 아이 옷을 골라 입힌다(코디). 우리 꼬마 고객님이 성깔이라도 부리면 그날 아침 등원전쟁은 시작된다.(육아) 원에 데려다준다(운전). 아이들을 보내고 돌아오면 일을 한다(업무). 아이들이 오기 전에 정리와 청소를 한다(청소,정리). 아이의 친구 엄마들 그리고 선생님들 등 새로운 관계를 맺어간다.(대인관계).  정해진 생활비로 아래 소비와 저축을 한다.(경제,소비) 힘든일이 있을때 아이에게 정신적 버팀목이 된다. (건강한 멘탈) 이 외 세부적인 사항은 사람마다 가정마다 비중도 상황도 다르겠지만,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별 것 아닌것 처럼 보이지만, 어떤 하나가 치명적인 구멍으로 존재한다면 그게 우리 가정에 싱크홀이 될 수 있다. 경제관념이 너무 없거나, 집안일에 지나치케 소홀하거나, 아이를 방치하는 등 말이다. 그렇다고 위에 나열된 모든 걸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들 저마다 각자 더 잘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모든 것을 뛰어나게 잘 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어느 정도 노력하면 적당한 능력을 갖출 수 있고 노련한 올라운더가 될 수 있다. 


이 글에서 전달하려는 바는 엄마라는 역할과 상황 안에서 할 수 없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 레벨 업 시킬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해 보자는 것이다. 스스로 한계의 벽을 치지 않는 이상 스스로 규정지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부분에서 능력치를 레벨 업 시킬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중요한 포인트는 내가 의존하고 있는 것들로 부터 점점 나 스스로 자립하는 힘을 기르는 것과 나에게 의존하고 있는 환경과 사람들을 하나 둘 씩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하나 둘 씩 필요한 것을 배우고, 그런 과정을 한,두 싸이클 돌려보면 분명 이전보다 훨씬 성장한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이 가로 막는 사람은 그 조차 불가능하다. '나는 여건이나 환경이 안돼'라는 강력한 전재를 가진 사람말이다. 다재다능 뭐든지 척척하는 올 -라운더맘들을 보며 '돈이 많으니까’, '집안이 좋아서', '남편이 이해해주니까', ‘타고 나기를 부지런해서’, ‘성격자체가 긍정적이어서’, ‘나랑은 달라서’, ‘일 할 조건이 받쳐 주니까’라는 생각. 위의 생각들이 모두 틀렸고,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환경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사람의 생각에 많은 영향을 주는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바꾸는건 누군가 말을 해준다고 바뀌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첫 신혼생활은 웃풍이 불어 겨울에 보일러온도를 아무리 올려도 어딘가 모르게 서늘한 냉기가 돌던 전셋집에서 시작했다. 그 시절 나는 너무도 어리고 철 없던 엄마였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컷지만, 난생 처음 겪어보는 낯선 생활에 힘듦과 고통으로 내 안에 못나고 무서운 감정들과 대적하느라 하루 하루 버거웠다. 그 때 당시 내 일기장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나는 악마인가 보다. 이렇게 이쁜 아이가 왜 하필 내 아들로 태어났을까.. 말도 못 하는 아이에게 화를 내고, 소리도 지르다니... 나는 왜 이렇게 일찍 아기를 낳아서 나가지도 못하고 발이 묶여있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끔찍하다.. 나는 악마인 게 분명해.'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그런 생각을 했고, 사람들은 종종 순간의 감정으로 많은 것들을 결정하고는 한다. 순간의 감정에 따르는건 그만큼 어린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것 같다. 


심지어 가끔은 그냥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했었다. 스트레스 받는다며 필요 이상의 술을 마시고, 알 수 없는 허기에 폭식도 하면서 무엇이 중요한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항상 힘든 날들만 있던것도 아닌데 할 수 없게 된 것들에 대해서만 확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행복할 때는 '내가 이렇게 고생하고 힘든데 당연히 이 정도 행복은 있어야지' 라며 감사하게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 시기에도 우리 아이에게 좋은 것은 다 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에 동네에서 잘 나간다는 문화센터 수업은 새벽같이 줄을서서 등록하고, 좋다는 전집을 들이고,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를 좋은 교육 시키겠다며 다방면으로 노력했었다. 


그 최선의 무게가 아이를 짖누르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 말이다. 유난히 소극적이고 또래보다 조금 느렸던 첫아이. 아이가 놀림받거나 속상한 일이라도 생기면, 내가 비난당하는 것 마냥 아이와 나를 동일시해서 생각하고 아이에게 내 모습을 투영시켰다. 어쩌면 그런 것이 내 자식이기에 당연하지만, 반대로 당연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예전의 내가 안쓰럽기도 부끄럽기도 하다.  그때의 나는 악마가 아니었는데, 충분히 그럴수도 일들에 대한 자책과 푸념들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간절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순간적인 해소나 위로 말고, 본질적인 해결책이. 우선 나는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더이상 혼자의 몸이 아니고, 한 남자의 아내이고 한 아이의 엄마다.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엄마라서 해야 하는 것들을 '꼭 내가 해야해? 힘들어' 라는 생각보다는 '하나씩 익히자' 라고 되뇌였다. 다행이 힘들때 책을 읽으면 정답같은 문장들을 만났다. 그렇게 차츰 환경과 주변상황이 아닌 내 관점과 생각을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아픈 곳도 많았던지라, 필요한 순간에는 그 누구보다 나 스스로 돌보는데 신경썻다. 시간이 흘러 그런 성장통들을 통해 나의 중심이 생기고 소신이 생겼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이 썩 맘에든다. 아이를 보고 집안일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나를 위한 시간과 지난날의 나는 다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내 이야기로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한다. 내 마음이 준비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행복해지고, 건강해지면 내 가족과 아이들도 함께 행복해진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은 외부사항이다. 내가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의 내부적인 한계이다. 당신의 환경을 남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예전의 나보다 훨씬 건강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기에 이 글도 읽고 있다고 믿는다. 내 인생은 내가 처해진 환경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생각과 결단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방향의 루틴을 일상에 하나 둘 씩 채워 나가면 어느 순간 생각했던 이상으로 몸도 생각도 건강해진 나를 만나게 된다. 영원할 것 같던 시간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살면서 힘든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힘든 일을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는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라는 주체는 아무 것도 아닌 동시에 전부이다. 모든 사람들은 24시간 주어진 시간 아래 한 개인이라는 주체로서 다를 것이 없다. 내가 보기에 대단한 명성과 부, 타고난 것들이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과 나 사이 다른 환경과 요소가 있다면 그 중 내가 할 수 있는 것 부터 하나씩 찾아서 도전해보기를 권한다. 누군가 처럼은 아니더라도 그 전의 나보다 훨씬 다능해진 올라운더가 된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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