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기
잔잔하지만
소리 없이 나에게 오는
진동
말이 없다.
소리 없는 진동은
때론 강한 충격의 주파수보다
더 깊게 느껴진다.
가장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2006년도..
쪽빛의 나무아래
허공인지
들판인지 모를
저 아득한 곳을
초연히 계속 달릴 것 같은
한 쌍의 도반 같은
말과 사람의 찰나에
끌려 한참을 바라보다가
구매했었다.
지금도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고 싶을 때
뭔가 답을 찾고 싶을 때
선문답 하듯
대화하는 오랜 친구 같은
존재다.
그림 속 나무 아래는
어쩌면
누군가가 앉아 있거나
아무도 없을 때조차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공간일 것만 같다.
박노수선생님의
「樹下」는 풍경을 그리되,
풍경 너머를 말하고 있다.
고요하다.
잎사귀, 가지조차 표현하지 않은
너무나 간결하지만
마치 정지된 듯한 장면은
오히려 무한의 시간을 부르는 것
같지 않은가..
때론 시간이 아닌
나의 사고만 흐르고,
시간은 고여 있는 듯하다.
.
“지극한 것은 소리 없이 움직인다.”
내 마음의 끊임없는 현실에 대한 생각.
늘 멈추고 다시 일으키고
움직이도록 다독이고
움직이고, 다시 멈춘다.
돌아보면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하지만 ㅎㅎ
그래도
또 한 발 띄워본다.
우리는 늘 나아가라고 배운다.
그게 열심히 사는 거라고..
속도를 내고, 결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 성장하는 거라고..
그러나 진짜 나를 만나는 순간은
가장 멈춰 있을 때 찾아온다.
樹下는 그 지점에서
나를 보는 거울이다
고요한 그림 한 장 앞에서,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말없이 생각한다.
지금 나의
樹下는 어디일까
그건 장소가 아닌
하나의 상태다.
침묵 속에서
나 스스로를 껴안을 수 있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가장 단단한 지혜일지 모른다.
며칠 전 오랜만에
오랜 친구부부의 연구실에서
꿈과 현재의 우리에 대한 이야기 중에
어떤 이의
"나는 이미 꿈을 다 이뤘다"라는
단단한 한마디가
무척 신박?? 했다.
보통 그런 말을 하면
내가 온 단계의 다음 단계를
또 계획하고 더 멋진 스토리를 만들려 할 텐데 말이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의 "다 이뤘다"는 말이
뭔가 더 시즌2가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였을까..
오히려 더 업그레이드된 인생의 2막이
기대된다고 할까..
너무나 편안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말에서 안정감과
더 큰 완성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가장 강력한 힘은
‘무언가를 가져야겠다’는 갈망이 아니라
‘ 이미 충분하다’는 안정된 정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내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알게 하는
고요한 진동이
나에게 진짜
안정감을 준다는 레슨을 얻는 시간이었다.
쪽빛나무숲 아래를
날아가듯 달리는
저 한쌍의 도반처럼
나도 지극히 나다움의 안정감을
스스로 찾아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