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 [剩餘]
"필요 이상의 나머지, 사용하고 남은 것"
때로는 무용하고, 때로는 목적을 잃은 시간이나 자원
나는 그 정의에 질문을 던진다.
정말로 잉여는 ‘남은 것’ 일뿐일까?
필요하지 않아 남겨진 것이 아니라,
너무 소중해서 미처 쓰지 못한 것은 아닐까?
잉여는 존재의 여백이다.
잉여란
시간과 존재가 스스로를 회복하기 위해 마련한 숨의 공간이다.
그것은 효율에서 벗어난 무의미가 아니라,
속도에서 벗어난 진짜 나의 리듬이다.
우리는 언제나 ‘무엇을 해야 할지’만 고민하며
그 ‘사이의 틈’을 무가치하게 여긴다.
그러나 그 틈이 있었기에,
생각이 자라고, 감정이 가라앉고, 삶은 방향을 되찾는다.
잉여는 낭비가 아니다.
잉여는 여정이 숨을 고르는 가장 조용한 순간이다.
충만한 여정의 틈, 잉여라는 이름의 숨
더 멀리 가기 위한 가장 고요한 방식의
순간이다.
길을 오래 걸으면, 걸음보다 숨이 먼저 지친다.
때때로 그렇게 지쳐 멈추곤 싶지만
나 스스로에게 말했었다.
“지금은 쉴 때가 아니야. 더 열심히 해야지.”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쉰다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걸음을 준비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는 것을.
멈추어 서 있는 이 시간은
길 위에 나를 흘려보내기 위한
나를 위한 사소한 준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나는 지금, 나를 채우고 있다.
더욱 충만하게..
세상은 ‘잉여’라는 말을 마치 낙오처럼 쓴다.
쓸모없음, 비워냄, 남겨짐.
잉여인간은 사전적 의미로
사회·경제적 체계 안에서 유용하거나 생산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
혹은 그렇게 여겨지는 사람.
필요 이상으로 남아 있는,
또는 기능적 역할 없이 주변화된 존재.
과연 그럴까
“잉여인간”이라는 말은
단순히 ‘무가치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인간을 가치 평가하는가를 드러내는 거울 같은 단어이다.
열심히 살아온
딸아이가 노력만큼의 결과가 아닌
현재의 모습에
조금 의기소침한 평가를 부정해 주었다.
"결과가 다가 아니야.
인생은 총량의 법칙이 있어.
지금은 조금 모자를 뿐이야.
아직 절반도 안 가본 네 인생에서
지금은 채워지기 전 더 단단해질
기회의 시간이란다.
엄마도 지금 가고 있어.
예측할 수 없는 많은 부딪힘과
상처들이 널 기다릴 거야
안 겪으면 좋겠지만
겪을 때는 용감해지고 의연해지자.
엄만 우리가 더 큰걸 깨닫기 위해
지금 조금 거친 길을 가고있다고 생각해
너도 엄마도 지금 바로 이 순간은
효율과 경쟁 바깥에서 ‘존재 그 자체로 충분한 인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
.,
잉여시간은
앞으로의 나날을 더 깊게 살기 위한 충전의 자리다.
이 고요 속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놓쳤던 감정들을 하나씩 다시 꺼내어
펼쳐보는 의미의 시간
계획표에 없는 시간,
성과로 측정되지 않는 시간,
그 안에서 나는 비로소 나라는 사람의
리듬을 되찾는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면서도,
무작정 달리기보다는
먼저 나를 닦고 다듬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이 잉여의 시간 속에서 배웠다.
충만한 여정은 늘 속도를 내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깊은 여정은
속도를 거둔 고요한 틈에서 태어난다.
나는 이제 이 시간을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는다.
이 느린 틈이 있기에
나는 다시, 더 멀리, 더 깊이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너무 감상적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게 나니까
그렇게 또 다른 생각의 의도가
검증될 수도 있으니까
그럼 또 하나의 길을 찾는 거니까.
땡큐베리머치지.
뭐..
인생은 단막극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