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에서 가장 나와 긴 시간의 눈 맞춤을 했던 한 남자!
벨라스케스의 〈후안 데 파레하〉
뭔가 과장된 꾸밈과 허세 가득한 엄청나게 빽빽한초상들 사이에서
꾸안꾸의 천진하고 편안한 미소 가득한
그의 표정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편안함이 밀려왔다.
그 편안함이 왜 나에게 왔었는지는
도슨트선생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 그림은 교황 초상을 그리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더 거대한 인물을 그리기 전의 연습.
그러나 화면 앞에 서면, 그것이 ‘습작’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나는 이 그림에서 가장 진솔한 순간을 본 듯했다.
후안 데 파레하는 노예였지만, 그 얼굴에는 위축이 없다.
그는 나를 피하지도, 과하게 주장하지도 않는다. 단단하게, 그러나 긴장하지 않은 채 서 있다.
살짝 내려다보는 그 표정을 보며
웃음이 지어졌다,
맞다. 안정감과 익숙함이었다.
그는 그려지고 있지만, 이용당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
화가의 시선이 그를 압도하지 않고,
존중하고 있다는 감각.
나는 그 표정에서 신뢰를 읽었다.
벨라스케스를 향한 신뢰.
그리고 벨라스케스가 그를 바라보는 진심.
벨라스케스와 후안이 가장 좋은 각도와
완성도를 위한 많은 이야기를 알콩 달?? 꽁
나누고 있을 장면이 영화처럼 스친다.
만약 모델이 화가를 믿지 않았다면, 저런 얼굴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방어가 생기고, 긴장이 흐르고,
어딘가 닫힌 눈빛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눈은 열려 있다.
그 안에는 ‘어때?? 이 정도면 괜찮아??’라는 배려와 신뢰가 있다.
나는 그 눈을 보며, 누군가에게 온전히 맡길 수 있는 상태가 얼마나 드문지 생각했다.
빛도 그렇다.
어둡게 가라앉은 배경 위에서 얼굴과 흰 칼라는 조용히 드러난다.
과도한 극적 효과가 아니라,
섬세하게 조절된 하이라이트.
뺨과 코끝, 눈동자에 얹힌 미세한 밝기.
그 빛은 그를 드러내되, 압도하지 않는다. 마치 ‘여기 있어도 된다’고 허락하는 빛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조절된 빛에서
또 한 번 편안함을 느꼈다.
강하게 드러나지 않아도 존재는 충분하다는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화려하지 않아도,
선언하지 않아도,
단단한 태도만으로 충분하다는 것.
나는???
나는 누군가의 시선 안에서
얼마나 편안하게 설 수 있는가.
나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신뢰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타인을 그렇게 존중하며 바라보고 있는가.
후안은 특별한 동작을 취하지 않는다.
그는 그냥 서 있다.
그런데 그 ‘그냥’이 쉽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관계 속에서,
역할 속에서,
기대 속에서 우리는 쉽게 긴장한다.
그런데 이 초상 속 인물은 긴장을 내려놓은 듯하다.
자신의 위치를 알면서도, 그 안에 갇히지 않은 표정.
그래서 나는 그의 앞에서 안정을 느꼈나 보다.
누군가의 진심 어린 시선이
한 사람을
이렇게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존중은 표정으로 드러난다는 사실.
옆에 앉아있는 아이와 눈을 마주친다.
어쩌면 같은 공간 안에 있는
이 시간이 각자의 다른 생각과 기억으로
남겠지..
하지만 이 시간을 공유하고
기억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잊지 않기를..
언젠가 우리를 블리자드처럼
휘몰아치는 순간이 와도
벨라스케스와 후안처럼
좋은 친구가 되기를..
강하게 빛나지 않아도 괜찮고, 과장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감각.
빛은 조절될 수 있고,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
우리는 앞으로의 긴 여정의 시간 동안
서로의
‘존재로 서 있는 우리’를
계속 보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