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니 Jun 06. 2016

나홀로 크리스마스

뉴질랜드 혼자 여행, 여행자버스 마지막 날

스트레이 버스 마지막 날이었다.


내가 선택했던 스트레이버스 Jill Pass는 웰링턴을 마지막으로 북섬투어는 끝나고,

남섬을 돌아볼 친구들은 계속해서 웰링턴에서 남섬으로 페리로 이동해 투어를 이어가는 일정이었다. 

스트레이 버스를 통해 여행을 하면서 고맙기도 했고 외롭기도 했다. 


인터넷이 잘 되지 않고 놀거리 먹을 거리도 찾기 힘들었던 와카호로, 네셔널파크에서 벗어나 웰링턴에 도착했다. 


이제 자유란 생각에 기쁘기도 하면서 아쉽기도 했다. 

그렇게 혼자 웰링턴에 남아 웰링턴 투어를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바다를 계속 볼 수 있어 만족했다. 

하버프론트 앞에서 음악을 들으며 한참이나 멍하니 바다를 바라봤다. 

내가 가본 곳중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캐나다 시골 워터프론트가 생각났다.

굉장히 비슷한 분위기와 바다냄새.

그때 자주 듣던 'Tears and Rain'을 무한 반복해서 들었다. 


그때 함께 했던 친구들, 스쳤던 사람들 내게 좋은 향기를 줬던 좋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이번 여행에선 무엇보다 '철저히 외로운 나'를 발견했다.


이렇게 좋은 곳에 혼자 있다는게 너무 아쉬웠다.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좋은걸 보고 좋은걸 먹고 그래도 왜 자꾸 가슴 한켠이 허전한걸까?

바다를 좋아하는 나는 크루즈를 타기로 결심했다. 

크루즈를 타니 역시나 3355 친구들끼리 온 사람들이나 커플들이 대부분이었다. 

웰링턴에선 인터넷도 잘 터지고 가족들이 보고싶어서 카카오톡으로 가족들에게 실시간으로 사진을 보내줬다.

2주간의 여행 외로움이 터진 것 같기도 하다. 

혼자 여행을 하면서 한번도 외로워 하지 않던 내가 이젠 외로움을 아주 잘 느끼는 사람이 됐다는걸 부정하고 싶지만 맞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사진도 찍고 와인을 사마시면서 즐기다가 중간에 사진을 보내고 하다보니 한 할머니께서 핸드폰으로 뭐하냐고 물어봤다. 

가족들한테 사진 보내주고 있다고 말을 하며 할머니와 옆에 있던 한 커플과 대화를 하게 됐다.

할머니는 엄마를 보러 웰링턴에 놀러온 김에 크루즈를 타며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뉴질랜드 커플은 크리스마스겸 웰링턴으로 놀러왔다고 한다. 

내가 웰링턴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고 아무리 하루에 4계절이 왔다갔다 해도 바다도 볼 수 있고 

평화로운 느낌이 맘에 든다고 했더니 할머니와 커플이 웰링턴보다 좋은데가 훨씬 많다며 웃었다. 

요트 주인아저씨와도 잠시 대화를 나누고 바다를 보며 바닷바람을 만끽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우리나라였다면 크리스마스에 레스토랑이나 상점들이 늦게까지 했을 것이고 많은 크리스마스 행사로 시끌벅쩍 했을 것이다.

웰링턴은 달랐다.

확실히 가족들과 함께하는 문화인 만큼 대부분의 상점들이 저녁일찍 닫기 시작했고 심지어 오픈도 안한 상점이나 레스토랑들이 대부분이었다. 할 것도 없고 너무 무료했다.

혼자 저녁을 사먹으려고 나갔더니 대부분 영업을 하지 않아 유일한 태국음식점에 들렀다.

크리스마스라 일찍 닫을 예정이라 테이크아웃밖에 안된다고 했다.

중국인 아르바이트생이 테이크아웃 한 볶음밥 1인분을 건네며 말했다. 

'메리크리스마스!' 

그렇게 볶음밥을 든 채로 터벅터벅 어두운 길을 걸어 호스텔로 돌아왔다.

호스텔 로비도 조용했다.

혼자 그렇게 볶음밥을 먹으며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스트레이 버스 친구들이 잠시 그리웠다.


이번에 깨달았다. 

나는 아니 어쩌면 사람은 외로운 존재이며 혼자와 함께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을.

사람에 지치고 일상에 지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철저히 혼자 휴식하고 싶어서 떠난 여행이었다.

그런데도 중간중간 나는 외로움을 느끼고 사람이 그리웠다.

힘들게 모은 돈으로 먼 곳까지 와서 외로움을 느낀 시간이 거의 여행의 절반은 될지도 모른다.

이런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게다가 일상에 모든걸 내려놓고 와야지 했지만 두고 오지 못한 것들이 한가득이었던 현실에 마주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어떤일을 하지?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어떻게 하면 더 보람있는 삶이 될 수 있을까? 더 열심히 살아야할텐데 내가 진짜 잘하는건 뭘까?

현실과 이상의 사이에서 어떤걸 선택해야할까?


그래도 내가 여행에서 많은 여행객들과 마주치고 대화를 할 때면 이런 생각은 사라졌던 것 같다.

내가 여행을 잘 하기 위해선 나 혼자만의 시간,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 이 두가지의 균형과 조화가 아주 중요하다는걸 깨달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혼자 있는 시간도 있었고 여행하면서 만난 여행객들과 이야기하고 밥도 먹고 같이 액티비티도 하는 시간도 있었다.

아무리 혼자 외로웠던 시간이 있었다 해도 이 역시 살면서 꼭 느껴봐야할 무언가라고 생각하며 만족스러웠다.


내가 좋아하는게 뭔지 싫어하고 두려워하는게 뭔지도 깨닫게 됐다.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여유를 만끽 할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면 평소에 없던 책임감이 강해지고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또한 일상에서 지키지 못했던 나쁜 습관들, 나쁜 유혹이나 충동에서 철저히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남의 도움 없이 혼자서 무거운 배낭을 매고 이동하며 돌아다녀야 하는 만큼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만큼 일상에서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나태함은 사라졌다.


내 손발을 묶고 있던 해묵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속에

오로지 나를 위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웰링턴에서 3일을 지내고 오클랜드로 다시 이동했다. 


오클랜드로 이동하는 버스 역시 스트레이 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유럽친구들과 함께 한 트래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