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석삼조는 되야죠.
부동산에서 분명 3 베드룸이라 하였다.
도쿄에는 주택이 아닌 이상 3 베드룸 이상인 아파트가 흔하지 않은데, 그 이유는 많은 가족들이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 될 때 까지도 난방비를 아끼려 다 같이 한 방에서 자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편은 우리가 도쿄에 오기 전, 그나마 외국인 세입자를 허용하는 매물 중 3 베드룸을 기준으로 몇몇 집을 둘러보고 그중 제일 괜찮은 조건의 집으로 골랐다. 하지만 우리가 들어간 그 집은, 우리의 기준으로 3 베드룸이라 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거실 한편에 둘째의 널서리로 쓰게 된 방은 거실/다이닝룸과 미닫이문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 문은 거실의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가로질러가는 거의 벽과 같은 사이즈의 문이었다. 그래서 문을 활짝 열어 놓으면, 방을 거실로도 사용할 수 있는 복합적인 용도의 공간이 되어버린다.
방으로 사용하기엔 4겹이나 되는 미닫이문 때문에 방음이 잘 안되었고, 거실로 쓰기엔 중간에 미닫이문 레일이 있는 불편한 구조였다. 그래도 그나마 거실로 사용하는 편이 더 나은 것 같아서, 결국은 둘째가 조금 더 컸을 때 둘째의 침대까지 첫째의 방으로 옮겨, 거실로 사용하였다. '여기는 방인가 마루인가?' 싶은 그 애매모호함이 좋지 않았다.
한편, 도쿄에 살며 나는 이런 식으로 한 가지 물건이나 장소를 여러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일상 속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 그보다 한 가지 용도밖에 제공하지 못한다면 마치 공간 낭비인 듯 한 이들의 하이브리드에 대한 선호도를 엿볼 수 있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1. 도쿄에는 가정집이든 식당이든 흔히 볼 수 있는 변기가 있다. 이 특이한 변기의 위쪽은 세면대 같은 싱크와 수도꼭지가 있는데, 변기 물을 내리면 그 수도꼭지에서 물이 흘러나와 사용자가 손을 씻고, 그 손 씻은 물을 재활용하여 변기의 물을 내리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그 컨셉 자체가 너무 쇼킹하였다. 자연친화적이다는 것은 알겠으나, 괜스레 기분이 썩 좋지많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발상을 하여 일반화한 것 자체가 대단하였고, 가만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긴 하다.
2. 거의 모든 가정집의 가스레인지는 버튼 사이에 작은 직화 그릴이 설치되어있다. 이 기능은 일본의 자투리 공간 활용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인데, 그릴판에 생선, 모찌, 토스트 빵 등 다양한 직화요리를 할 수 있다. 처음 온 한 달간은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이 그릴의 존재 조차 몰랐었다.
3. 또 다른 예는 우리 집 열쇠인데, 만숀 건물 입구와 우리 집 문, 둘 다 이 열쇠 하나로 열린다. 하지만 다른 집의 문은 열 수 없다. 다시 말해, 만숀 입구의 열쇠 구멍만 놀랍게도 모든 세대가 열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다. 다른 나라들에는 쉽게 볼 수 있는 마스터 키가 있듯이, 일본에는 정 반대로 그런 역할의 키홀이 있다.
그 밖에도 겨울엔 히터 여름엔 쿨러로 사용되는 에어컨, 전자레인지 겸용 가스오븐 등 일본에서는 복합적 물건들이 굉장히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무엇이든 간에 하이브리드를 선호하지 않는다. 한 가지 기능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그 조차도 사치이자 공간 낭비인 듯하다.
나에게 할애된 공간을 낭비 없이 최대치로 사용해내는 것. 이 목표가 이들에게 이런 복합적인 용도의 상품들을 생각해내게 하는 원동력인 것이다.
변기 사진 출처: https://jp.toto.com/products/toilet/gg/feature/06.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