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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정은 Apr 10. 2020

낭비의 기준

절약이 아닌 모든 것은 사치


도쿄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이 나라에 자연재해가 많다더니, 지진과 관련된 무슨 예방 drill(훈련)인가..." 하며 하염없이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전기가 다시 들어오지 않자, 나는 복도에 나가 혹시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나 확인하였다. 제대로 작동 중이면 우리 집만 정전이라는 얘기일 테니.


엘리베이터는 제대로 작동 중이었다. 우리 집만 정전이 된 것이다. 관리인 아저씨에게 내려가 손짓 발짓, 핸드폰 번역기를 돌려가며 설명을 했다. 아저씨가 올라와서 전기 퓨즈를 열고 뭐라 뭐라 얘기를 했지만 우리는 전혀 못 알아들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 날 사건에 대해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한 채.


며칠 후, 내가 아이들과 집에 있을 때 다시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이번에도 관리인 아저씨가 올라와서 퓨즈를 다시 설정해 준 후, 뭐라고 얘기를 했지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나의 모습이 답답했는지 남편한테 전화를 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전화해봤자 일 텐데...(일본어를 못하니까)'하며 나는 전화를 해줬고, 남편 회사의 일본인 동료가 대신 통화를 해주었다.


내용인즉슨, "전기를 너무 많이 사용 중입니다. 4인 가족 기준 이상으로 사용하면 퓨즈가 내려갑니다. 전기 회사에 전화하여 용량을 늘리십시오."


나의 첫 반응은, "북한이야, 뭐야?"였다.

'21세기, 그것도 일본이라는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초과 이용 때문에 정전이라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일인가? 내가 사용하는 만큼 돈을 내고 사용하겠다는데, 집집마다 사용량이 다르겠거늘 4인 가족 이용 적정 전기량 기준을 누가 정해놓았단 말인가?' 이런 다소 사치스러운 생각을 하였다.


결국 남편 회사 직원을 통하여 전기 회사에 전화하여 용량을 늘렸다. 용량을 늘려주러 온 전기회사 직원이 누누이 나에게 손짓과 음성 효과로 표현하였다. "디스, 디스, 디스, 디스 온, 펑!!" (이거, 저거 등등 기계들을 한꺼번에 많이 켜면 퓨즈가 또 꺼집니다.)


물론 남편이 아예 두 단계 위로 전기량을 올려놓아 그 이후로 퓨즈가 내려간 적은 없지만 말이다.






모든 일본 집에는 온수를 틀었다 껐다 할 수 있는 버튼이 부엌과 욕실에 있다. 처음에는 그 버튼의 기능을 모르고 24시간 매일 켜 둔 상태로 두 달 이상을 살았다. 그러다 그 버튼의 기능을 알게 된 이후, 꼭 온수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에만 켜게 되니 살면서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보상은 다음 달 가스요금으로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같은 계절이더라도 온수를 24시간 대기 기능으로 놓고 지낸 달과 필요할 때만 켜서 사용한 달은 가스 요금이 3,000엔(한국돈 3만 원 이상) 이상 차이가 났다.

당신은 현재 가스를 사용 중입니다.


우리는 만숀에 살아서 도쿄에 사는 것 치고 그나마 공과금을 적게 내는 편이지만, 주변에 주택에 사는 친구들을 보면 전기, 수도, 가스비와 같은 공과금이 어마어마하다. 1월같이 추운 달은 전기비만 6-7만 엔(한국돈 70원가량. 가스비는 별도) 이상 나오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며, 집의 사이즈가 크면 그 이상 나오는 집들도 많다. 그렇다고 따뜻하다고 느껴질 만큼의 난방을 하는 것도 아니다. 집에서 플리스 잠옷과 두터운 조끼, 스웨터 등을 껴입고 최소한의 난방만 하는 대가가 저렇다는 것이다.



도쿄에 살면서 나의 낭비와 절약의 기준이 달라졌다. 자연스럽게 이들의 기준에 우리의 습관이 맞춰졌다. 그러지 않을 경우 퓨즈가 내려간다던가 요금 폭탄을 맞는다던가 하는 대가를 치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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