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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정은 Apr 09. 2020

세상에서 제일 추운 곳

시베리아도 북극도 아닌 그곳은 바로 우리 집


그 겨울 한국은 유독 추웠었다. 어느 정도로 추웠냐 하면, 몇 번이나 영하 15도를 넘나들고, 친정집 세탁기 파이프가 얼고... 그랬다. 그나마 영하 5도 정도로 기온이 상승한 날이면 미세먼지는 또 얼마나 심하던지, 추위와 미세먼지 중에 택해야 한다고 우리끼리 농담을 하고는 했었다. 출산한 지 얼마 안 되었던 나는 바깥으로 거의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따뜻한 온돌바닥에 앉아서 얇은 산후 내복 따위 한 겹을 입고 지냈다.


도쿄에 미리 가있었던 남편과 화상 채팅을 할 때면, 나는 한국의 겨울이 얼마나 추운지 얘기를 하고, 남편은 맨날 도쿄 집이 너무 춥다는 얘기만 하였다.

"여기는 제대로 된 난방이 없다."

"에이, 어떻게 난방이 없어..."

"에어컨에서 겨울엔 따뜻한 바람 나오는 정도인데, 너무 건조해서 틀어놓을 수가 없어."

"그럼 난방이 필요 없을 만큼 기후 자체가 따뜻한가 보지"


내가 출산을 위해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도쿄에 혼자 갔던 남편은 롯폰기의 서비스 레지던스에서 지냈다. 남자 혼자 지내면서 뭔가 잘못 알았겠지, 설마 제대로 된 난방이 없겠냐는 그 당시의 나의 의심 어린 생각이 기억난다. 그러다가 나와 애들이 오기 한 달쯤 전에 남편은 우리가 살 집을 구하여 '지유가오카'라는 동네의 만숀*으로 이사를 하였다. 우리가 첫째를 보내고 싶었던 학교(유치원)와 남편 회사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어서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았다.




그리 추웠던 서울의 겨울을 뒤로하고, 나는 백일도 안된 둘째와 만 3살인 첫째를 데리고 맑고 따뜻한 첫인상의 지유가오카에 도착하였다. 뭔가 제주도 느낌이 나는 훈훈한 공기.

'아, 여긴 벌써 봄인가...'

새로운 시작에 조금은 설레기도 하였다.


하도 춥다고 하여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사실, 추운 집이라면 이전에 경험해 본적이 많았다. 나는 10년 이상을 미국 동부에서 살았고, 또 도쿄로 이사하기 전에도 을씨년스럽게 춥기로 유명한 런던에서 2년을 살지 않았던가. 이번에는 한국에서 난방 텐트를 공수해오고, 털이 달린 실내화, 플리스(fleece) 실내복, 가열식 가습기, 그리고 남편이 마련해둔 전기장판 등을 갖고 추운 집과의 전투 준비를 마쳤다. 벌써 2월 중순인데 곧 따뜻해지겠지. 밖이 추워봤자 5도 이하로도 거의 안 내려가는데 뭘.


도착한 날 확인해보니 이 집에도 정말 난방이라고는 에어컨 히터 밖에는 없었다. 그나마 방마다 히터가 달려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작은 방은 첫째에게 주기로 하고, 거실에 미닫이로 연결된 방은 둘째의 널서리, 그리고 세 번째 방은 안방으로 쓰기로 하였다.


하지만 도착한 날 저녁, 첫째의 방에 들어가 본 나는 얼음장 같은 공기에 그 방에서 아이를 재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일단 둘째는 둘째 방에 꽁꽁 싸매서 재우고, 첫째는 안방에서 우리 사이에 재우기로 했다. 전기장판을 켜고, 에어컨 히터를 돌리고, 오리털 이불을 덮고.



새벽에 추워서 눈이 떠졌다.


이건 내가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추위였다. 전기장판을 최대로 틀어서 등은 뜨거운데 전기장판에 닿아있지 않은 부분은 추운 신기한 기분. 새벽의 추위는 대낮 해가 남향 창문을 통해 몇 시간 이상을 내리쬘 때까지 가시지 않았다. 해가 좋던 어느 날은 밖이 더 따뜻한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살면서 이렇게 1도 1도에 예민한 적이 있었던가... 몸의 모든 촉각이 열기를 느끼고 찾느라 곤두세워져 있었다.


정말 너무 참기 힘들어 건조하더라도 에어컨 히터를 밤새 세게 켠 날은, 다음날 아침 샤워기로 뿌려놓은 마냥 뚝뚝 떨어지는 결로에 미치는 줄 알았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결로였는데 그것도 하드코어 결로. 정신 교육을 받아야 하는 철부지 한국 사람이 있다면, 추운 일본집에 한 달만 살며 살림하다 가면 철 들것이다, 분명히.



3월 초 꽁꽁 싸맨 100일 조금 안된 둘째


이 곳에 살며 친구 집들도 가보고, 이사도 하고, 부동산을 통해 신축 만숀, 신축 단독주택들도 본 후 내린 결론은 도쿄에는 우리 기준으로 겨울에 따뜻한 집이란 없다는 것이다. 일단 바닥난방이 설치되어 있는 곳들도 거실의 일부만 설치되어 있다. 주택의 경우에도, 거실로 쓰는 한 층의 일정 부분만 온돌 설치가 가능하다고 한다. 정확히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마 그 이상으로 설치하는 것을 이들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단 전기비 가스비가 아주 비싼 것도 이유일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마인드를 굳이 대변하자면 "뭐 그 정도 추위 갖고?" 하며 참는 것 같다.


참 참는 걸 잘하는 민족이다. 불편을 너무 오래 참다 보면 내가 참고 있다는 사실에 익숙해져, 아주 약간의 온기도 엄청난 안락함으로 느껴지며, 참는 상태가 디폴트(default) 값이 된다. 이들이 택한 삶의 방식은 고의적으로 약간의 결핍을 설정해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것이다.

 




*만숀(맨션)은 일본의 전형적인 주거 형태인데, 한국의 작은 아파트 또는 빌라 같이 생겼다. 도쿄에는 한국식 대형 아파트 단지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단독주택, 타운하우스, 타워 만숀(타워형 주상복합)또는 만숀에 산다.


없이는 생활 못하는 오일 전기 라디에이터 “드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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