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뭐... 도쿄?"
런던에서 남편의 대학원 과정이 끝나갈 무렵, 나는 둘째를 임신해 있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곳에 평생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런던에 정이 들었다. 서울에서 상처 받고 지쳐있던 마음이 힐링되었고, 하루하루 너무나 행복했었다. 남편은 졸업 후 취업 장소를 런던 이외에도 홍콩, 도쿄, 룩셈부르크 등 여러 곳들을 옵션에 두고 있었지만, 나는 런던 이외의 삶은 생각하기도 싫었던 건지, 다른 장소들은 어디까지나 추가 옵션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런던과 도쿄, 이 두 곳에서 각기 다른 입사 제의를 받은 남편은 장소보다 회사와 맡을 업무를 보고 도쿄를 택했다.
도...쿄...
남편과 나는 도쿄의 '도'자도 몰랐다. 해외에서 만난 친한 일본 친구들이 있기는 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나 도쿄라는 도시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었다. 그렇다고 딱히 싫어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말 그대로 무관심이었다.
그 당시의 우리에겐 너무 '생뚱맞은' 초이스. 상의라기보다는 통보에 가까웠던 결정. 런던이라는 이상형과 연애를 하는 상황에 도쿄라는 낯선이 와 정략결혼을 해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에서야 돌이켜 보면 이 곳에 살며 얻고 느낀 장점들과, 현재 영국이란 나라가 처해있는 상황, 또한 시간이 가져다준 깨달음 등을 생각해서 당시 그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도 적응하느라 어려워하는 나와 아이들을 보고 미안한 마음에 더 노력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처음엔 이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온 그가 조금은 원망스러웠고, 그래서 그랬는지 초창기에는 이 곳의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런던에 대한 미련으로 계속 언제 돌아갈까 혼자 의미 없는 계획을 세우고는 하였다.
그렇게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아직 알쏭달쏭한 이곳을 알아가는 중이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하지만 집으로 느껴질 만큼 편해졌고, 같이 고생하느라 남편과도 두터운 파트너십이 생기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성장한 것 같다. 여하튼 나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먼 훗날 내 아이들의 기억 속 첫 고향, 첫 집은 도쿄일 것이다.
이 시리즈는 지난 3년간 이 신기한 도시에서 고군분투한 젊은 엄마의 기록이자, 나의 현재 진행 중인 일기이다. 이곳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늘 새롭고, 놀랍고, 신기하다. 더 이상 신기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즈음 일기가 뜸해지겠지... 먼 훗날 지금 도쿄에서의 생활들을 웃으며 기억할 수 있기를.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인 2020년 봄,
도쿄도 메구로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