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놔...
이제는 익숙한 것들 중 하나이지만, 도쿄에 처음 왔을 때 제일 불편했던 것은 피할 수 없는 두둑한 지갑이었다. 돈이 많아서 두둑한 게 아니라, 현금 없이는 생활할 수가 없어서 항상 두둑한 지갑. 거기에 각종 포인트카드까지.
현금을 쓰는 생활은 런던에서 나름 몸에 배였었다. 2파운드(지금 한국돈 3천 원 정도)도 동전으로 나왔으니 항상 동전 지갑을 들고 다니고는 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았던 시기는 이미 디지털 시대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그 무렵 블랙캡을 비롯한 모든 기존 사업들은 현금 없이 앱으로 하는 결재를 장려하는 등, 점차 현금 없이도 불편하지 않게 생활할 수가 있었다.
그러다 출산을 위해 2017년에 한국을 갔다. 발달이 진행하고 있던 디지털 시대의 서울은 이미 미래도시 같았다. 소셜미디어 덕분에 기술과 취향이 상향 평준화되어 대중의 기준 자체가 높아져있었다. 현금은 더 이상 크게 필요가 없었다. 복잡한 본인 인증과 앱들을 다운로드하기 귀찮아서 현금을 쓰는 내가 왠지 촌스럽게 느껴지고는 했었다.
사람이 한번 편리함을 배우게 되면, 그걸 알기 전으로 돌아가기란 꽤나 힘든 것이다. 그때 6개월 정도 한국에서 지내며 디지털 생활에 완벽히 적응을 했던 나는, 런던과 서울에서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은 느릴 수 있어도 전 세계가 결국 디지털화되겠구나 단정 지었었다. 자만하고 무지했던 판단이었다.
서울에서 출산을 하고 도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미국에 있는 동생에게 소포를 보낼 일이 생겼었다. 동네 우체국에 가서 국제특급 편으로 신청을 하니 대략 1만 3천 엔이 넘는 돈이 나왔다. 카드로 내려고 하니, 현금밖에 받지 않는다고 했다. 우체국에서 한국돈 15만 원 이상을 현금으로만 받는다고?
공공기관인 우체국뿐이 아니었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식당, 병원, 빵집, 미용실, 등은 무조건 현금으로만 받는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교통카드도 전철역에서 꼭 현금으로만 충전이 가능했다. 현금을 항시 충분히 손에 지니고 있지 않으면 "아놔..."하고 시간 낭비하는 낭패를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때는 바야흐로 2018년 초. 전 세계적으로 각종 회사들이 "**페이"하는 핀테크 사업을 벌이며 경쟁 중이었고, 심지어 한국에서는 카**페이로 발레파킹 비용마저 실시간 무통장 입금할 수 있던 디지털 에이지. 그때 도쿄에서는 아직도 동전 한 개 한 개 세며 시대를 역행하는 계산법을 고수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올림픽이 연기되었지만, 이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서 도쿄는 굉장히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하였다. 대표적인 것들 중 하나가 카드 또는 앱 결제이다. 많은 택시 모델들을 런던 블랙캡과 닮은 신형으로 바꾸고, 카드 또는 앱 결제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또, 이전에는 카드를 받지 않던 곳들에서도 점차 전자 결재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그 변화가 느리고 미미하여 아직 현금 없이 생활하기에는 위험하다. 언제 어디서 "현금밖에 안됩니다"소리를 들을지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