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못하면, 즐겨라
3월이었나?
코로나가 한창 새로운 뉴스로 다가오던 올해 초, 일본은 일본 국적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에게로부터 국경을 봉쇄했고, 우리처럼 체류비자 자격으로 일본에 사는 사람들도 일단 나가면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
매년 여름, 우리의 디폴트 피서지는 무조건 한국이다. 그동안 아이들은 한국어도 좀 늘고, 난 해외에서 지친 육아에 휴식을 취하고는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렇게 계획을 했었는데 이런 봉변이 닥친 것이다.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 국적의 지인들이 일본을 잠시 떠났다가 정말 들어오지 못하는 걸 목격하게 되자, 우리는 일단 국경 봉쇄가 풀릴 때까지는 여기서 지내면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그 기다림이 이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다.
그렇게 우리는 일본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채, 2020년의 가을을 맞이했다.
2000년 여름, 미국으로 유학을 간 이후로 이렇게 장시간 (그래 봤자 9개월) 비행기를 타지 않고 한 나라에 머문 적이 처음이다. 하지만 분명 좋은 점도 있다. 도쿄는 전 세계인의 탑 여행지에 항상 꼽히는 곳이어서 1년 내내 여행 성수기인 것처럼 붐빈다. 그러나 코로나 덕분에 이런 유명한 도시에 관광객이 하나도 없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을 기회삼아 도쿄 근교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곳들 위주로 당일치기 여행을 최대한 자주 가보기로 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공항/비행기/신칸센 이용은 찝찝하기에 주로 차를 이용했다.
시마는 일본어로 섬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조가시마는 조가 섬이라는 이상한 어감의 한국어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도쿄 시내에서 차로 한 시간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이 곳은, 미우라 반도 남쪽 끝에 위치하고, 접근이 편하게 다리로 연결되었다. 도쿄 근방을 차로 여행하며 신기한 점은, '오봉'이나 '골든위크' 같은 큰 명절이 아니고서는 차가 심하게 막힌 적이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조가시마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곳이 아니어서 한적한 모습에 도착하고 나서도, '맞게 온건가?' 싶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조가시마 공원의 주차장이 나온다. 공원 입구 바로 앞에 주차를 하고, 입구로 들어서면 쭉 펼쳐진 길이 나온다.
경치를 감상하며 길을 따라 끝까지 쭈욱 들어가면 넓고 푸른 초원이 나온다. 미우라 반도 북쪽에는 미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어 주말에 쉬러 나온 미군 가족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사람도 많이 없고 넓디넓은 잔디밭에 피크닉 매트를 펼쳐 놓고 자리를 잡았다. 피크닉 테이블도 몇 개 있지만, 오전부터 너무 뜨거운 햇빛 때문에 앉아있기가 힘드므로 나무가 있는 그늘 아래 앉는 게 좋다.
조가시마 공원의 최대 장점은 쾌적한 잔디밭 공원 외에도 살아있는 생태계를 접할 수 있는 바닷가이다. 엄청 많은 소라게가 바닷가에 서식하고 있어서, 발만 디디면 소라게가 우글우글, 돌인지 소라게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다. 원래 계획은 잠깐 구경하고 미우라 반도의 다른 곳도 볼까 했지만,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하루 종일 놀다가 해질 녘 돌아왔다.
무척이나 즐거웠던 시간을 보낸 우리는 2주 후에 또 갔다. 사람이 많이 없어서 코로나를 피하기에도 너무나 좋은 곳이었다.
조가시마 필수 준비물:
아쿠아 슈즈 (부서진 소라껍데기가 사방에 있으므로, 구멍 없는 것으로)
피크닉용 돗자리 또는 텐트 (한여름엔 해가 엄청 강하다)
점심, 간식거리 (내부에 음식을 파는 곳이 없다)
물, 음료수
쓰레기 봉지
장점:
차가 있다면 시내에서 접근이 매우 용이한 근교
깨끗하고 쾌적한 자연
화장실 있음
유모차, 씽씽이 등 아이들 탈것 가져와도 편함
단점:
바위에 갯강구라고 하는 바퀴벌레같이 생긴 혐오스러운 벌레가 서식 (하지만 인간에게 해를 입히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늘이 많이 없어서 한여름에는 때약볕이 조금 힘듦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긴급사태가 발령되어 도쿄 도시 전체가 두 달간 셧다운 했던 그때, 친하게 지내는 프랑스/일본인 부부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들이 우연히 치바현에 드라이브를 하다가 사람이 하나도 없는 너무 좋은 계곡을 발견했다고. 우리는 긴급사태 동안은 어디를 가기가 조금 찝찝하여, 긴급사태가 해제되고 그 친구들을 따라 이 외딴 계곡에 가게 되었다. 도쿄에서 아쿠아 라인이라는 해저터널을 타면 치바현에 금방 도착할 수 있다. 아와마타 폭포까지는 한 시간 반 조금 넘게 걸렸던 것 같다. 주말이어서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 친구들의 조언을 따라, 일부러 아와마타 폭포 쪽이 아니라, 북쪽 반대 방향의 어느 외딴 주차장에 세웠다. 종일 주차해도 500엔 정도였던 것 같다.
때 묻지 않은 넓은 풀밭과 오솔길을 지나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작은 계단이 나온다. 그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아와마타폭포에서 이어지는 계곡이 있다. 너무나 깨끗한 물에, 물고기는 물론이고 개구리, 민물게, 도마뱀, 뱀 등을 볼 수 있다.
계단에서 내려와 시냇가에서 좀 놀다가, 이대로 계속 내버려 두면 아와마타 폭포는 정작 구경도 못하겠다 싶어서 우리는 디딤돌 다리를 건너 시냇물의 반대편에 나아있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너무도 놀라웠던 점은, 치바현이라는 시골의 외딴 계곡의 청결한 관리 수준이었다. 일본에 살며, 일본이 선진국이라고 특별히 느낄 때는 이런 구석구석까지 일정 수준 이상의 정비와 청결상태가 갖춰져 있는 것을 경험할 때다.
그 길을 따라 계속 걷다 보면, 아와마타는 아니고 "작은 아와마타"라는 뜻의 코자와마타 폭포가 나온다. 지도에 표시도 안 되는 걸로 보아서 이 정도 규모는 폭포의 축에 끼지도 못하나 보다. 그래서인지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우리 아이들은 폭포 물속에 뛰어들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사진을 뒤져보니 막상 아와마타 폭포의 사진을 남기지를 않았다. 더 규모가 큰 폭포여서 가까이 가서 놀 수는 없기에 폭포 하단의 계곡물에서 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고기와 개구리를 잡으며 저녁때까지 놀았다. 이 부분은 입구에도 제대로 표시가 되어 있어서 그런지 사람이 좀 있었다. 우리가 주차해놓은 주차장이 있었던 입구에서, 아와마타 폭포까지 대략 1킬로 남짓한 거리인데, 너무 지친 우리는 다시 같은 길을 돌아가기가 버거워서 아와마타 폭포 입구 쪽 계단으로 나가, 그 동네 마을버스를 타고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아와마타 폭포 필수 준비물:
아쿠아슈즈 또는 크록스
점심거리, 간식
물, 음료수
쓰레기 봉지
장점:
사람이 거의 없음
깨끗하고 쾌적한 자연
잔인하게 더운 한여름에도 시원
단점:
화장실이 없음 (치명적인 단점)
유모차 반입 어려움 (아주 어린아이를 데리고 가긴 힘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