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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정은 Nov 16. 2019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

열등감의 원천

내가 "세 도시의 엄마"를 쓰면서, 서울에 대한 리뷰는 대부분 부정적인 설명이 더 크다는 걸 깨달았다. 나도 서울 출신이기에 완벽히 객관적일 수는 없겠지만, 한국인으로서 외국에 살면서 더 내 나라 사람들과 그들이 속한 사회의 문제점이 부각되어 보였다. 그 이유는 내 눈에 비치는 각 도시의 단점 중에서도 유독 서울에서 내가 목격하게 되는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 때문이다. 어디선가부터 무언가 많이 잘못되었고, 그것은 바로 설명이 필요 없는 사람으로 자라기 위해 아이들이 아이다울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사회인이 된 내가 살았던 도시들- 뉴욕, 서울, 런던 그리고 도쿄. 그중에서 공교롭게도 객관적인 관점으로 내 출신 도시인 서울만 세계적인 도시라고 하기 어렵다.


부모님과 함께 미국에 살았었던 90년대 초반에는 미국인에게 한국은 교과서에서 본 거 같은 저 지구 건너편 변방의 나라 정도였다. 초등학교 2, 3학년이었던 내 눈에도 부모님이 다른 백인 어른들을 만날 때 긴장하시는 것을 느꼈다. 교육의 정도나 사회적인 위치로는 우리 부모님이 그 당시 내 미국 친구들의 부모보다 훨씬 나았는데도 불구하고, 단지 그들의 언어가 약간 서툴다는 점과 인종이 다르다는 점, 그리고 출신 국가가 한국이라는 점이 엄마, 아빠 스스로를 작게 생각하게 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아이였던 내가 자연스럽게 습득했다.


그보다 약간 더 한국이 발전해서, 사정이 나았던 보딩스쿨을 다니던 시절인 2000년대 초반에도 평범한 미국인들에게 한국의 존재감은 매우 낮았다.

"한국에도 눈이 와?"

"너는 일본에서 왔어, 중국에서 왔어?"

그들에게 나의 출신인 그곳을 설명하게 만드는 질문들은 분명 나쁜 의도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혔을 것이다. 그들의 무지가 나를 작아지게 했다. 그래서 나는 더 미국화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 후로 몇십 년이 지난 지금은 훨씬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특히나 주변인 중에 한국인이 별로 없는 서양 국가 출신의 기성세대에게 한국이란 나라는 항상 설명이 필요한 곳이다.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일본이나 중국에는 비할 수도 없거니와 심지어 (뉴스에 매일 나와서 유명한) 북한보다도 존재감이 떨어지는 그런 곳이란 말이다.




약 10년 전 뉴욕에서 일하던 당시에 타임스퀘어 근처에 살았었는데, 집 근처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크게 떠있던 비빔밥 광고를 난 잊지 못한다.

바로 그거였다. 나의 아픈 곳.

저렇게 무지막지한 돈을 들여 남의 나라에 광고를 해서라도 알려서 먹이고 싶은 마음.

"우리는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니야"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은 한국의 모습.


내가 뉴욕, 런던, 도쿄와 서울에 살면서 느낀 건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세 도시는 설명이 필요 없이 자기만의 아이덴티티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화려하게 겉을 포장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기에 더 진실되게 자기 자신일 수 있다. 뉴욕은 뉴욕답게, 런던은 런던 답게, 도쿄는 도쿄 답게. 과연, 서울다운 것은 무엇일까?


"제발 비빔밥 한 번만 먹어봐." 사진출처: The Korea Herald


이제는 K-Pop 때문에 서울과 한국이 예전보다 많이 유명해지기는 했지만, K-Pop 세대 이전에 성장한 나와 나의 윗세대의 한국인은 여전히 가슴 어딘가에 굳은살처럼 박힌 열등감이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계속 끊임없이 개발과 변화를 꾀한다. 선진국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OECD라는 말을 전 국민이 알 정도로, 순위 하나하나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부모들은 아이를 경쟁하듯 키운다. 옆사람 보다 더 빠르게, 더 똑똑하게, 더 뛰어나게. 1등은 원래 설명이 필요 없는 법이니까. 일단 경쟁에서 앞설 수만 있다면, 아이의 정서와 행복은 조금 더 뒤로 미뤄도 된다는 생각으로, "이 땅에 살려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믿음 아래, 서울의 아이들은 다른 사회의 아이들에 비해 너무 일찍부터 경쟁사회에 노출된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대학에 가기 위하여, 모두가 알고 인정하는 직업을 갖기 위하여, 설명이 필요 없는 삶을 살기 위하여.





이 세 도시들에 대해 더 쓰고 싶은 내용이 많지만, 일단 17일까지 브런치 북을 마무리하고 응모하기 위해 일단 이 시리즈는 여기서 잠깐 쉬어가야겠습니다. 오랜만에 목표라는 것이 생겼고, 내가 올린 글에 대해 가족과 지인들의 피드백을 얻는 것이 기다려졌습니다. 아직 구독자 수는 적지만 어느 날 갑자기 하루에 2만 뷰를 넘기도 하고, 글을 써가면서 내 경험과 생각이 정리되는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계속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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