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Aug 18. 2023

패션에 찾아온 자유와 혁명의 순간들

Stories: Fashion and Freedom

Stories: Fashion and Freedom

패션에 찾아온 자유와 혁명의 순간들 



8월 15일은 1945년 대한민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기념일, 광복절이다.
빼앗긴 자유를 되찾기 까지 흘린 수 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을 생각하면 숙연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光復(광복). 어두움의 시기가 끝나고 밝은 미래가 왔다는 뜻처럼, 자신을 희생하여 후손들이 더 나은 미래에서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독립운동가들을 떠올리면 자신들의 손으로 찾은 자유를 만끽하고 사는 후손들을 내려다보며 환하게 웃고 있을 것만 같다.

패션계에도 어둠의 시기를 끝내고 새로운 빛을 가져다 준 독립 운동가들이 있다. 광복절을 맞이하여 패션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준 4인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가장 이상한 것에서 가장 보통의 것으로-미우치아 프라다


ⓒvogue


1978년, 젊은 나이의 미우치아 프라다는 가업을 물려받으며 보수적인 럭셔리 패션의 관행을 뒤바꿔 놓겠다고 결심한다. 공산당원이자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미우치아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아무런 주저가 없던 뜨거운 피를 가진 청년이었다. 그녀는 노동자들이 대다수이던 공산당에서 자신의 가문과 사업가들이 당하는 조롱을 마주하며 프라다 가문이 지금까지 해 왔던 것을 송두리째 바꿔 보겠다는 결심을 한다.


ⓒitalysegreta



그렇게 미우치아는 1984년, 가죽이 아닌 군용 텐트를 만드는 데 사용된 포코노 나일론 소재로 만든 가방을 선보인다. 가볍고도 관리가 용이하며 탄력이 넘치는 합성섬유 나일론은 구하기도 어렵고 가공하기도 까다로운 악어가죽과 바다코끼리 가죽에 비해 훨씬 실용적이고 파격적이었다.

패션계의 반응은 어땠을까? 당연히 비평가들은 하이엔드 패션의 격을 낮추고 있다며 거세게 비난했고, 그녀가 내세운 미학을 ‘어글리 시크(Ugly Chic)’ 혹은 ‘틀려먹은 시크(Wrong Chic)’라고까지 이름을 붙이며 조롱했다.


1988 FW ⓒPRADA


그러나 미우치아는 쉽게 굴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쓰레기 같다고 말하더라도 나의 판단에 신념이 있다면 그게 옳은 거예요. 저는 저의 감각과 직감을 믿거든요. 여태까지 그 힘으로 잘 이뤄냈고요.”

그녀는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가방뿐만 아니라 드레스, 아우터, 지갑 등 모든 아이템을 나일론으로 만들어 나갔다. 기존의 방식을 뒤엎겠다는 생각이 관행을 깨고 소재의 혁신을 이뤄낸 것이다.



ⓒvogue
ⓒPRADA


지금으로부터 5년 전, PRADA는 시그니처로 자리 잡은 나일론에 대한 이야기를 네 개의 에피소드로 만들어 공개했다.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 시리즈 중 한 편처럼 느껴지는 이 미래주의적이고도 섬뜩한 영상에는 ‘나일론 팜 Nylon Farm’이라는 주제를 둘러싸고 나일론에 대해 자신들의 유산, 기술과 혁신에 대해 계속해서 많은 이들에게 전파한다.



Nylon Farm 스틸컷 ⓒvogue



나일론을 만든 것은 월리스 캐러더스(Wallace Carothers)지만, 나일론을 통해 디자이너들에게 자유를 선사한 것은 미우치아 프라다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미우치아 프라다의 신념은 고급 = 비싼 소재 라는 공식을 깼다. 이는 단순히 값싼 소재를 고급화 시켰다는 의미를 넘어 후대의 디자이너들에게 소재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디자인을 표현하는 방식에 자유를 선사해 준 것이다.






드러내지 않을 자유-마틴 마르지엘라


ⓒlofficielusa.com


브랜드 Maison Martin Margiela를 설립하고 패션계에 은퇴를 선언한 2008년까지 20년간 전례 없는 방식으로 패션계를 흔들어 깨웠던 마틴 마르지엘라. 극한의 미니멀리즘과 해체주의, 상징적인 라벨 등 그가 패션계에 남긴 업적은 무수히 많지만, 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를 하나 고르자면 ‘익명성’일 것이다. 마르지엘라는 기존 대다수의 디자이너가 브랜드를 전개하던 방식과는 반대로 자신의 개성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마르지엘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작업물을 판단하기를 원치 않았다. 이러한 특성은 대중에게 자신을 노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나타났는데, 대부분의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하였고 관객들 사이에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쇼를 감상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패션쇼에서조차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았다.

심지어 본인뿐만 아니라 본인이 디자인한 옷을 입는 모델들에게도 페이스 커버를 씌워 ‘익명성’을 극대화했다.



ⓒarchivepdf.net
1996 SS ⓒculted.com
2009 SS
쇼의 마지막 2009 SS ⓒSSENSE


마르지엘라는 왜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을까? 욕망과 과시로 점철된 패션계에서 홀로 드러내지 않을 자유를 위한 투쟁을 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는 자신의 디자인을 본인의 명성과 시각적 자극이 아닌 오롯이 디자인 그 자체로 바라봐 주길 원했다. 그렇게 마르지엘라는 ‘익명성’의 자유를 패션계에 선사하고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그가 지켜낸 ‘익명성’의 자유는 오늘날 제2의 마르지엘라를 꿈꾸는 디자이너들에 의해 계승되며 패션을 철학의 영역으로 발전시켰다.



ⓒcondehousejapan.com


마틴 마르지엘라는 디자이너 개인의 정체성과 스타일로 브랜드의 운명이 결정되지 않도록. 개인과 작업물을 분리하여 의복의 본질에 더욱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거추장스러운 포장으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선사해 주었다.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 지우기-버질 아블로


ⓒvogue


“나는 No 라는 거절을 통해 더욱 성장합니다. I thrive off a no.”

부모님은 아프리카 가나 출신의 이민자, 본인은 미국 시카고의 외곽 지역에서 자란 소년. 그는 어린 나이부터 힙합과 스케이트보드, 그리고 패션에 푹 빠져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버질 아블로가 살고 있던 동네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뿐이었다. 갱에 들어가거나, 운동선수로 유명세를 떨치거나. 그는 어린 시절을 회고할 때, 자신이 알고 있는 디자이너들은 모두 나와 다른 생김새를 갖고 있어서 디자이너라는 꿈을 꿔도 될지 수만 번의 망설임이 있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2013년에 OFF-WHITE를 전개하고, 2018년도에 Louis Vuitton의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되어 ‘Louis Vuitton 최초의 흑인 디렉터’라는 영광의 수식어를 거머쥐었다. 아블로가 특별한 이유는 비주류와 주류를 초월하는 패션을 완성시켰다는 데에 있다. 본인의 인종과 배경으로 인해 겪어야만 했던 차별을 딛고, 하위문화 정도로만 인식되던 스트리트 패션을 하이패션과 동일선상에 당당히 올려놓았다. 패션계에 자리 잡고 있던 불필요한 경계들을 흐릿하게 만들고, 문화적 다양성을 힘껏 끌어안은 개척자, 버질 아블로.



ⓒvogue


2019년 루이 비통의 첫 번째 컬렉션으로 파리 패션위크에서 세간의 관심을 받았던 버질 아블로, 시간을 딱 10년 전으로 되감아 보자. 당시 버질은 칸예와 함께 파리 패션위크를 처음 방문한 새내기. 이미 칸예의 유명세가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문을 두드렸던 쇼장의 40퍼센트는 그들의 입장을 거절했다. 아쉬움이 남았던 경험이 오히려 그에게 영감을 준 듯, 그는 2019 SS 쇼에 무려 1,000명 정도의 패션 학도를 초청해서 생생한 현장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현장에 방문해 준 모든 이들에게 나눠줄 패션 대백과사전을 제작하고 나눴다. 자신이 직면해야 했던 허들의 높이를 계속해서 낮추고자 했다.



플레이보이카티, 스티브 레이시, 데브 하인스, 키드 커디 ⓒvogue


ⓒoutlandermag


그뿐만 아니라, 버질 아블로는 자신의 이전 브랜드 (혹은 스트릿웨어에 대한 실험) PYREX에서부터 마이클 조던을 모티프로 삼아 프린팅을 제작했으며 마틴 루서 킹과 같은 위대한 흑인 인물을 앞세워 컬렉션을 구성해 블랙 커뮤니티를 향한 지지를 표했다. 또한 런웨이에서는 플레이보이 카티, 스티브 레이시, 데브 하인스, 키드 커디와 같은 인물들을 런웨이에 세워 백인 모델의 수가 압도적이었던 풍경을 적극적으로 교체하는 데 힘썼다. 그의 세상 안에서는 신분도 국적도 나이도 더 이상 나를 따라다니는 꼬리표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vogue


한때는 함께 스케이트보드를 타던 친구들에게 재미로 티셔츠를 만들어주었던 소년. 이제는 스트릿웨어와 하이패션 모든 영역에서 버질 아블로를 빼고 논할 수 없게 되었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뒤바꿔 놓았다. 자신이 맛봤던 차갑고 씁쓸한 거절에 굴복하지 않고 많은 이들을 두 팔 벌려 환대한 디렉터. 출신과 배경에 제한받지 않는 세상, 위와 아래라는 구분이 불필요한 곳, 모두가 더 멀리 내다보고 더 깊은 꿈을 꿀 수 있는 자유를 가져다주었던 버질의 발자국은 여전히 짙게 남아있다.





유서 깊은 브랜드에 일으킨 균열-DANIEL LEE


BURBERRY 2023 FW ⓒvogue


화려한 그래픽이 돋보이는 티셔츠의 옷소매에 붉은 글씨가 타고 흐른다. ‘변화는 불가피하다 Change is inevitable’. 이 제품은 BURBERRY의 2023 FW 컬렉션 피스로, 새로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한 다니엘 리의 확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BOF


오래된 것은 고리타분하고 지루하기만 하다고? 다니엘 리에게는 그렇지 않다. 전통의 답습이 기출문제라면 다니엘 리의 선택은 기출 변형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안일하게 옛것만 가져와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핵심 개념을 추출해 더 좋은 형태로 선보이는 것. 그가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것은 하루아침 일이 아닐 것이다.

2011년 센트럴 세인트마틴의 졸업과 동시에 Maison Margiela, BALENCIAGA와 같은 굵직한 브랜드에서 일을 배우며 자신의 취향을 탐색했다. 그리고 딱 1년 뒤, 2012년에 피비 파일로와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로부터 둘은 6년간 동고동락하며 사람들이 미치도록 열광한 셀린느의 매력을 조각해 나갔다. 클래식하고도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신선하고도 파격적인 스타일에 대해 멈추지 않고 연구했다. 그곳에서부터 다니엘 리라는 옥석이 반들반들 다듬어지며 점차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곡차곡 기본기부터 다졌던 다니엘 리는 2018년 돌연 BOTTEGA VENETA의 수장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유서 깊은 이탈리아 하우스의 가세는 기울고 있었고, 다니엘 리는 겨우 32살의 젊은 디자이너였으니, 대중은 이 동맹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디자이너들이 기피하고 있던 BOTTEGA VENETA였지만, 다니엘 리는 성공의 열쇠를 이미 거머쥔 듯했다. 정답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바로 브랜드가 몇십년 간 유지해 온 전통 속에 담겨있었으니까.



다니엘 리가 전개한 첫 번째 컬렉션 Pre-Fall 2019 ⓒfashionweekdaily.com



다니엘 리는 BOTTEGA VENETA의 시그니처였던 인트레치아토(가죽 땋기 기법의 하나) 가방을 더욱 다양한 패턴과 사이즈로 재출시했다. 이게 제대로 히트를 쳤다. 단지 다니엘 리의 독창성과 혁신 때문에 해당 아이템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두가 옛 것이라며 눈을 흘기고 지나쳤던 유산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펴보고 관심을 기울이고, 이것을 아주 조금 변행해 편안한 익숙함과 짜릿한 새로움을 동시에 선사한 것이 비법. 그러나 여기서만 멈췄더라면 다니엘 리는 지금의 다니엘 리가 아니었을 것. 그는 브랜드에 새로운 상징을 달아주었다. 모두가 기억하기 쉽도록, 로고도 아니고, 디자인도 아니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바로 브랜드의 독보적인 컬러를 만들어 준 것이다. BOTTEGA GREEN.



ⓒWWD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뿌리인 영국으로 돌아와 BURBERRY의 방향키를 잡았다. 영국성과 영국 문화를 제대로 담아내겠다는 목표와 함께. 그의 첫 번째 혁신은 2018년도에 변경되어 한차례 논란이 되었던 산세리프체의 로고를 이전 버전으로 과감히 되돌려놓은 것. 또한, 2015년부로 단종되었던 BURBERRY Prorsum 라인의 재개를 알리는 듯, 기사 로고 역시 등장시켰다.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잠들어 있던 책의 한 구절을 다시 꺼내서 보여주는 것이다.


그가 다시 꺼낸 창, Prorsum 은 라틴어로 ‘전진하다’를 의미한다. 다니엘 리는 계속해서 전통의 맥을 이어가면서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브랜드를 성공궤도에 되돌려놓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콜럼버스처럼 미지의 영역을 발견하고 개척하는 것이 아닌, 원래 있던 우수성을 모두가 보기 좋게 꺼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모두가 낡고 빛바랜 것이라고 고개를 돌릴 때, 그곳에 더욱 섬세한 시선을 던진 다니엘 리. 그는 역사를 잊은 자에게 미래가 없다는 것을 자신의 신념으로 삼고 있으리라. 이제는 흥행보증수표가 되어버린 천재 크리에이티브의 다음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vogue
2023 FW ⓒvogue


지금까지 패션계에 자유와 혁명을 불러일으킨 인물 4명을 살펴보았다. 정답처럼만 여겨지던 가죽이라는 소재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준 미우치아 프라다, 본질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자유를 준 익명의 마르지엘라, 어쩌면 패션을 통해 세계 대통합을 이룩하고자 했던 버질 아블로, 옛것은 지키되 새로움을 받아들일 줄 아는 유연한 사고의 다니엘 리까지.

이처럼 패션계에서 자유를 위한 투쟁은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 당신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시간까지 계속되고 있다. 작게 뭉쳤던 눈을 굴리면서 점차 크게 불어나는 것처럼, 자유를 향한 작고 큰 노력에 의해서 오늘날의 패션계를 완성된 것이 아닐까? 각기 다른 모양의 자유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하던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만세!’를 외치고 있을 것이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jentestore 바로가기


작가의 이전글 복제 불가능한 우리만의 이야기 Story MFG.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