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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Aug 25. 2023

보테가 베네타가 초록색을 선택한 이유

Stories: Fashion and Color Green

Stories: Fashion and Color Green

반전의 색, 두 얼굴의 초록



늘 푸른 자연을 닮아서일까. 한결같은 매력으로 우리를 사로잡는 초록의 힘, 그리고 그 뒤에 감춰진 반전의 이면에 대하여.




당신의 삶에 힐링을 선사하는 방법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초록을 응시할 것.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이 눈 건강을 지키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초록을 권한다. 시야각이 다른 색보다 좁기 때문에,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시달렸던 눈의 피로를 해소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당신은 지금부터 이 글에 더욱 집중해야만 한다. 곳곳에 등장할 초록의 이미지들이 두 눈에 쌓인 피로를 날려줄 테니까.



영화 <어톤먼트>의 한 장면 ⓒpxfuel.com



초록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색이다. 거리의 가로수와 신호등의 푸른빛, 심지어 회색빛 아스팔트를 뚫고 나오는 이름 모를 식물의 모습은 가끔 경이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초록을 색으로 재현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연에서 채취한 녹색 염료는 쉽게 갈변된다는 단점이 있었고, 이외에도 여러 광물을 이용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노력에 비해 값이 비싸고 유지가 어려워 선호되지 않았다. 또한 근대기엔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염료 생산 과정에서 심각한 독성 문제가 발견되어 ‘위험한 색’이라는 부정적 인식까지 더해져 버렸다.



게오르게오르크 프리드리히 케르스팅, 수 놓는 여인 (1817) ⓒtheparisreview.org



하지만 현대의 초록은 다르다. 회색빛에 둘러싸인 도시인들은 본능적으로 녹음(綠陰)의 풍경을 갈망할 수밖에 없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흔한 말도 초록에겐 예외. 최근 캠핑붐이 일어난 것도 식집사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여름의 끝자락, 초록을 향한 그리움을 채워 줄 특별한 이벤트가 필요하다면? 여기 당신을 위해 미국 대표 언론 기관인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아름다운 장소’ 들을 소개한다. 이미 명소로 알려진 성산 일출봉과 보성 녹차밭은 물론 눈과 정신까지 함께 힐링 되는 효과 만점 코스가 무려 50곳이나 나와있으니 반드시 메모해 둘 것.



남해 다랭이마을
강원 삼부연 폭포
강원 삼화사
제주 협재 해수욕장 ⓒedition.cnn.com





누군가에겐 또 다른 초록


하지만 이 아름다운 초록을 온전히 즐길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최근 많은 사랑을 받았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도 등장했던 색각 이상, 흔히 색약이나 색맹으로 불리는 질환에 대한 이야기다. 그중에도 녹색각 이상은 녹색이 밝은 회색, 검은색, 적색 등으로 보이게 되는 증상이다. 빛의 파장을 구분하는 원추세포의 이상으로 인해 특정 색상을 감지하는 데에 어려움이 생긴 것.

ⓒ넷플릭스 코리아 유튜브



그러나 정확히 알아두어야 할 사실 하나. 이들은 색을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감지하는 것’이다. 게다가 녹색 약자는 비색각 이상자가 구별하지 못할 10가지 이상의 카키색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그렇다면 그들이 감지하는 초록은 어떤 모습일까? 색각 이상자의 시선을 체험할 수 있는 시뮬레이터의 도움을 빌려 초록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보자. 모두가 푸른 풍경에 감탄하고 있을 동안 막연한 소외감을 느낄지도 모를, 누군가를 위해.



ⓒtoryburch.com
ⓒtoryburch.com
Dior 2014 FW ⓒvogue.com



색맹인 팬을 위해 회색톤만으로 된 그림을 그리는 강의를 진행하여 극찬을 받았었던 우리의 영원한 밥 아저씨, 화가 밥 로스(Bob Ross). 사실 색각 이상자들에 대한 직업적 편견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몇몇 유명인들은 이 질환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꿈을 실현해 냈다.

영상미와 관련하여 극찬을 받아오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과 니콜라스 윈딩 레픈(Nicolas Winding Refn), 배우 키아누 리브스(Keanu Reeves), 페이스 북의 창립자인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도 색각 이상자다. 특히 겨울왕국의 캐릭터 디자이너이자,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최초의 한국인 수석 애니메이터로 알려진 김상진 씨는 이 질환이 치명적인 약점으로 여겨질 수 있는 분야에서 가장 값진 성공을 이뤄냈다.



ⓒinfobae.com, ⓒimdb.com, ⓒdisney.fandom.com





두 얼굴의 초록


빌런들은 왜 초록에 환장하는가? 외계인이나 괴물의 피는 왜 초록색인가? 치명적인 독성 물질이나 악마의 묘약은 왜 전부 초록으로 묘사되는가? 얼핏보면 마냥 싱그러워 보이는 색이지만, 약간의 차이만으로도 정반대의 느낌을 내는 것이 바로 초록이다.

하나의 색이 안정감과 공포심을 동시에 안겨줄 수 있다니, 어떻게 이런 극과 극의 효과가 가능할까? 이에 대한 실마리는 생각보다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말레피센트>
<배트맨> 시리즈의 빌런인 포이즌 아이비와 리들러
녹색괴물 <슈렉>과 <스타워즈>의 요다 ⓒpeople.com, ⓒimdb.com, ⓒinsider.com




우선 초록은 인간의 신체에서 육안으로 발견할 수 없는 색이다. 이것만으로도 왜 수많은 외계 생물이 초록색 피부를 가졌는지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또 하나의 이유는 역사 속에서 발견된다. 1775년, 스웨덴의 과학자 셸레가 우연히 개발한 셸레 그린(Scheele Green)의 여파 때문. 이 색의 성분 중엔 독성이 강한 비소가 섞여있었는데, 제조사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수익에 눈이 멀어 대량 유통한 게 문제의 원인이었던 것.

아름답고 특별한 존재감 덕분에 큰 인기를 끌었던 셸레 그린. 하지만 점차 이 염료를 사용한 옷을 입은 사람들은 피부 발진과 수포와 같은 부작용을 겪기 시작했고. 먹거리나 장난감에까지 사용되어 아이들이 시름시름 앓다 목숨을 잃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심지어 온 방 안을 셸레 그린으로 장식했던 나폴레옹의 사망이 비소 중독 때문이라는 추정이 있을 정도.

이때부터 초록은 사람들에게 ‘죽음을 불러오는 색’으로 여겨졌으며, 훗날 보다 안전한 염료를 발견하기 전까지 이러한 인식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historicmysteries.com
셸레 그린으로 염색된 드레스와 비소의 위험성을 알리는 캠페인 ⓒopenculture.com





Fashion In Colors: Green

BOTTEGA GREEN



ⓒesquireme.com



2021년, 전 세계에 그린 열풍을 일으켰던 BOTTEGA VENETA의 그린. 같은 해 갑자기 브랜드를 떠난 디렉터 다니엘 리(Daniel Lee)가 남긴 최고의 유산이다. 사실 이 색은 켈리 그린(Kelly Green)이라는 본명이 있지만, 이젠 아무도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도 쭉 보테가 그린(Bottega Green)이란 새 이름으로 굳어질 듯하다.



2021년 서울에 설치되었던 BOTTEGA VENETA의 작품, 더 메이즈(THE MAZE) ⓒwmagazine.com



덕분에 한동안 아무도 찾지 않았던 이 쨍한 컬러는 액세서리뿐만 아닌 슈즈와 드레스, 외투에까지 과감히 적용되며 센세이셔널한 인기를 끌었다. 그저 하나의 색일 뿐인데 어떻게 이러한 파급력을 갖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보테가 그린 자체가 매우 입체적인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

봄날 파릇한 새싹의 생기와 영화 <매트릭스>의 오프닝이 떠오르는 디지털적 무드를 함께 풍기는 이 색은, 어떻게 매칭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주는 무척 특별한 녀석이다. 이러한 색을 찾아낸 것도, 선택한 것도, 적용한 것도 어찌 보면 기적의 연속이었던 셈.



2021년부터 이듬해까지 이어진 BOTTEGA VENETA의 그린 팔레트 ⓒwwd.com





패션이 그린 그린(Green) 그림


보테가 그린의 기세에 힘입어 최근엔 다채로운 그린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런웨이에 등장했다. 어쩜 이리 하나같이 매력적인지. 올해의 컬렉션을 활기차게 물들였던 그린의 향연을 차례로 감상해 보자.



Akris 2023 SS, Christopher Kane 2023 FW
VALENTINO 2023 FW COUTURE, OFF-WHITE 2024 RESORT
BALMAIN 2024 RESORT, GUCCI 2024 RESORT vogue.com



그린의 장점은 단연 독보적인 존재감이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히로인의 드레스엔 유난히 그린 컬러가 많다. 레드는 다소 부담스럽고 핑크는 왠지 키치해 보인다면, 고민의 마지막 종착지는 결국 그린이 될 것. 성숙미와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하기엔 이만한 컬러가 없으니까.



영화 <어톤먼트>, <위대한 유산>, <라라랜드> ⓒvogue.co.uk



평소 차분한 톤에 익숙한 사람들도 그린이라면 큰 거부감 없이 맞이하게 될 것이다. 어떤 이의 취향이라도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트렌드로 떠오른 밝은 라임 그린, 차분하면서도 화사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민트 그린, 매해 꾸준히 눈에 띄던 딥 그린까지. 명도와 채도의 차이만으로도 이미지가 단숨에 변하는 드라마틱한 경험을 만끽할 수 있다.



PRADA 2023 SS, Proenza Schouler 2023 SS
Victoria Beckham 2023 FW, self-portrait 2023 FW


Ralph Lauren 2023 FW, JIL SANDER 2023 FW ⓒvogue.com




게다가 꼭 튀거나 대담할 필요도 없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올리브 그린이나 비취색이라고도 불리는 제이드 그린은 은은한 분위기의 톤온톤 코디에 활용하기 딱 좋은 색이다. 차분함과 유니크함을 함께 쟁취하고 싶다면 반드시 도전해 볼 것.



Stella McCartney 2024 RESORT
ⓒvogue.com, ⓒharpersbazaar.com, ⓒsassydaily.com



이처럼 다채로운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는 초록. 하지만 우리가 이 색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유년 시절이 온통 초록빛으로 가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룡과 피터팬, 엄마 아빠 몰래 탐험하던 뒷동산과 동네 공원, 홀로 걷는 길목마다 꿋꿋이 솟아있던 들풀과 잡초까지. 그 사소한 기억들은 쌓이고 쌓여 어느새 울창한 숲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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