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es: The School Rebels
Stories: The School Rebels
우리들의 유일한 일탈, 교복
이 이야기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지금 대한민국에 도착했다. 주인공은 착실한 소년, 15살의 모범생 데이비드 스토어.
15살 소년 데이비드 스토어(David Storr)는 머리를 밀고 등교를 했다는 이유로 5일 동안 정학을 당했다.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데이비드는 교복을 입고 용모를 단정히 하느라 억눌렀던 취향을 꺼내 보이면서 반항심을 표출한 것일까? 사실 그건 아니다. 친구와 내기를 하던 중 5파운드를 따내기 위해 머리카락을 밀었을 뿐…
5파운드면 현재 가치로 약 4만원 가량 되는 돈이다. 4만원이면 머리를 좀 밀 수도 있지. 어째서 이런 과잉 대응으로 보답했을까? 학교는 데이비드의 일탈을 보고 다른 학생들이 따라 할까 봐 걱정됐던 것.
교복은 모름지기 학생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교복을 입고 일탈 행위를 하는 것은 엄격한 학교의 허용범위를 벗어났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쿵저러쿵 논쟁이 끊이질 않는 교복은 언제 탄생했을까?
최초의 교복에 대한 설이 분분하지만, 가장 먼저 교복을 도입한 교육기관은 1552년, 런던의 그리스도 병원 기숙학교(Christ Hospital Boarding School) 로 추정된다.
최초의 교복은 보육원 학생들에게 공평한 교육 환경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시간이 지나며 교복은 마치 군복처럼 학생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었으며, 대서양을 건너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을 위해 교복이 있는 게 아닌 교복을 위해 학생이 있는 것처럼 ‘단정한 용모’라는 키워드로 옷 매무새부터 머리카락 길이, 구두의 상태, 넥타이의 길이까지 검열을 하기 시작했다.
옥죄면 옥죌수록 불만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법. 청소년기의 들끓는 반항심을 자유로이 표출할 수 있는 곳이 없으니 이를 어쩌나,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오직 교복밖에 없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10대들의 반항적인 교복 문화에 대해 살펴보자.
우선, 무서운 학생들의 교복을 보기 전 스쿨룩의 정석은 어땠을까? 원조 교복 국가 영국부터 시작하자.
1952년부터 1961년까지 방영된 영국 만화 기반의 텔레비전 시리즈 <빌리 번터(Billy Bunter)>. 무려 9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은 드라마는 스쿨룩의 정석을 보여준다. 몸에 꼭 맞는 듯한 어두운 톤의 재킷과 먼발치에서도 눈에 띌 것 같은 과감한 체크 바지. 그리고 줄무늬 넥타이까지. 스마트함을 한껏 강조한 교복의 교과서라고 봐도 무방하다.
빌리 번터는 남학생들의 학교생활을 다뤘다면, 빌리 번터 종영 후에 등장한 <그레인지 힐(Grange Hill)>는 남녀공학의 삶을 다뤘다. 1978년부터 2008년까지 총 31개의 시즌으로 이루어진 시리즈. 여기서는 빌리번터만큼 스마트함을 한껏 강조한 룩 보다는 흔히 연상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서양 학생의 모습에 가깝다. 특히 이들의 자유로운 헤어스타일은 보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이 친구들은 대체로 학교라는 약육강식의 피라미드에서 중하위권을 차지한다면, 다음으로 소개할 이들은 조금 다르다. 교실의 포식자에 가깝다. 이들은 앞머리에 무스를 잔뜩 발라 한껏 치켜세우거나, 머리카락을 박박 밀고 시종일관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뱃지를 주렁주렁 달고 다녔다.
흥미로운 점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위치해있거나, 맨 아래에 있더라도 교복을 입는 데는 결코 정답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규칙은 있을지언정 미세한 틈을 파고들어 제각각의 개성이 필연적으로 드러냈다. 학교 선생님들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통통 튀면서 말이다.
저 멀리 있는 영국을 살펴봤으니, 우리나라 교복에 대해서도 필히 다뤄야 할 것. 영국 최초의 교복과 비슷하게 우리나라 최초의 교복은 보육 시설에서 시작되었다. 바로 1886년의 이화학당 다홍색 한복이 우리나라 교복의 시초.
이화학당을 필두로 점차 다른 학교들도 학교 로고를 새긴 뱃지를 활용해 각자의 색이 담긴 교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직 고등교육이 널리 퍼지지 않았을 개화기 조선, 고등교육기관의 교복을 착용하고 다니는 학생은 또래의 부러움을 샀다.
질투는 모든 사고의 원흉. 한 학생이 다른 학교의 교복을 훔쳐 입고 신분을 속이다 들통나 경찰서에 끌려갔다. 더 나아가서 교복 사기꾼들이 고학력자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막무가내로 식당과 여관에 쳐들어가 무전취식까지 시도했다. 이런 문제들이 속속들이 발생하며 사회적 문제로 번지기도 했다.
일제 잔재 청산을 목적으로 1983년 중고등학생들이 교복 대신 사복을 입을 수 있도록 교복 자율화가 실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탈선 증가, 빈부격차로 인한 위화감 조성, 가계 부담 등 여러 사회문제를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1986년 교복 자율화는 3년 만에 폐지되었다.
국내에서 교복은 엘리트의 상징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골목에 모여있는 교복 차림의 학생 패거리를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눈을 피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한국 십 대의 흑백 초상 필름 시리즈 ‘키드 노스텔지어(Kid Nostalgia)’는 우리를 낭만 가득했던 2000년대로 다시 데려간다. 사진가 박성진의 2001년부터 2009년까지 기록이다.
자유롭게 펄럭거리는 나팔바지, 한껏 줄여 입은 체크 치마, 그리고 자연스럽게 물고 있는 담배까지. 길거리에서 실제로 마주쳤다면 재빨리 옆을 지나갔겠지만, 사진으로 마주하니 그 눈빛과 행동에서도 치기 어린 마음이 엿보이는 듯하다. 저작권과 초상권 등의 문제로 국내 교복에 대한 많은 사진을 싣지는 못하지만 그의 사진을 모아둔 사이트를 첨부한다. (아쉽게도 작가 웹사이트는 재정비 중이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진만큼이나 우리 집에도 양질의 자료집이 있지 않은가. 바로 우리들의 졸업 앨범!
영국과 우리나라의 교복 풍경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가장 극단적인 교복 형태는 바로 일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양키들이 학교를 꽉 잡고 있었으니.
양키란 불량스러운 청소년, 혹은 폭주족을 지칭하는 단어다. 개조 교복과 특공복 그리고 화려한 리젠트 머리를 고수한 이들은 무모함을 장착하고 밤거리를 질주했다. 이때 이들이 갑옷처럼 챙겨 입은 옷은 바로 특공복이다.
오토바이가 자신의 분신이라면 특공복은 자신의 목숨과도 같이 소중히 했다. 특공복은 흰색에 검은 글씨가 기본적인 형태였으나, 새겨진 자수의 양이나 디테일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 자수는 당연히 특별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세상에 나보다 귀한 사람은 없다, ‘천하무적 상남본부련’: 세간에 적수가 없는 상남의 집단 모임 등 진지하게 글귀를 골라 새겼다. 얼마나 다채롭고 독특한 문화가 많았는지, 폭주족만의 독보적인 문화만을 다룬 잡지, ‘챔프로드’가 발간되기도 했을 정도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런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바이크를 타라고 한다면 부끄러워질 듯 하지만, 이들에게는 상관없다. 양키들에게 타인의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진정한 B급 영화의 정수를 보여준 <불량공주 모모코>. 로코코풍의 드레스에 푹 빠진 모모코와 이치고의 긴 교복 치마의 레이디스 스타일 교복과 특공복을 보고 있으면 안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한 쌍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모코와 이치고의 관계에 대한 내용은 영화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피보다 진한 우정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는 기회니까. 그런데 이 영화의 백미는 다름 아닌 이들의 환상적인 코스튬이다.
그리고 교복을 논할 때 스즈란 고등학교 학생들을 빼놓을 순 없다. <크로우즈 제로>와 같이 패권 싸움이 주를 이루는 학원물에서는 차이나 칼라 교복 형태의 검은 가쿠란 교복이 주를 이룬다. 주인공 타키야 겐지의 강렬한 등장씬을 더욱 인상 깊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의 패션 때문이다.
대체로 교복과 잘 어우러지는 어두운색의 벨트를 착용하던 때, 그는 화이트 벨트에 체인까지 다는 과감한 시도를 보여줬다. 물론 소가 핥고 간 머리와 짙은 눈빛이 카리스마를 뽐내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청소년기, 자아를 확립해 나가야 하는 가장 자유로워야 할 시절. 열심히 땀 흘리며 놀고 뛰고 실수하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야 할 시기에 학교라는 감옥에서 교복이라는 죄수복을 입고 공부라는 벌을 받는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 과정이 훗날 개성을 찾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교육의 일환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쉽지만 이제는 교복을 입고 싶어도 입을 수가 없다. 스킨헤드라고 정학 받을 일도 없고, 귀밑 3센치 이상으로 머리가 내려와도 벌점을 주는 선생님도 없다. 우리는 학창 시절을 졸업했으니까.
교복은 세상 모든 것이 흥미진진했던 시절의 잔상이 묻어 있는 옷이기에, 보고 있기만 하더라도 우리를 그때 그 시절로 되돌려 놓는 마법의 힘을 갖고 있다. 오늘은 먼지가 쌓인 졸업앨범을 집어 들고 내 교복은 어땠는지 들여다보자. 거기에는 아직 열정 가득한 나만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을 테니까.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