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KITSCH MOOD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은 기꺼이 지갑을 열고 싶어지는 것과 다름없다면 귀여운 건 필연적으로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 패션계에서도 식지 않는 ‘귀여움’ 사랑에 대해 알아보자.
‘귀여움 이론’의 창시자인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에 따르면 귀여움은 우리 뇌에 긍정적인 자극을 불러일으켜 우리를 집중시키고,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킨다. 자연스레 친밀감을 형성해 대상에 대한 경계심을 무너뜨리는 귀여움의 힘. 패션 세계에서도 통한다. 그래서일까. 런웨이에서 귀여운 얼굴로 마음을 사로잡는 옷들을 만날 수 있다.
Collina Strada 2023 SS, Ashley Williams 2020 FW
Chopova Lowena 2023 SS
Kiko Kostadinov 2023 FW, VAQUERA 2022 SS
Comme des Garçons 2018 SS
디자이너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옷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관해 질문케 한다. 특히 디자이너 레이 카와쿠보(Rei Kawakubo)의 Comme des Garçons 2018 SS 컬렉션은 귀여움을 담은 컬렉션 중 하나. Comme des Garçons의 옷을 보다 보면 발견할 수 있는 재기발랄한 애니메이션은 유년기의 판타지를 자극한다.
귀여움과 키치는 함께 한다. 둘을 절묘하게 섞어서 감각적으로 만든 이를 꼽자면 바로 런던 출신의 디자이너 애슐리 윌리엄스(Ashley Williams)가 있다. 10년 전 혜성같이 등장한 디자이너인 그는 진정한 런던식 키치 펑크란 무엇인지를 귀여우면서도 시니컬한 요소가 담긴 프린팅과 화려한 컬러감을 내세워 보여준다.
반가운 소식은 팬데믹으로 2년간의 공백을 가졌던 애슐리 윌리엄스가 9월 런던 패션 위크에서 다시 돌아온다는 것. 패션 이스트(Fashion East) XLNC 프로그램과 UGG로부터 약 2만 파운드의 보조금을 확보한 애슐리 윌리엄스는 2024 SS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패션쇼는 다가오는 9월 16일 공개된다고 하니 이 디자이너만의 통통 튀는 무드를 사랑했던 이들이라면 기대해 보자.
다음으론 그 이름처럼 귀여움의 천국을 보여주는 마크 제이콥스의 서브 레이블 Heaven.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과거 90년대의 그런지와 레이브, 서브컬처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특히 곰 인형 로고는 Heaven의 시그니처다. 독일의 전통 테디베어 브랜드 Steiff와 함께 협업해 제작한 곰인형을 보면 두 개의 머리가 달린 기상천외한 모습이지만 이 발상도 귀여움에 진심이라서 가능하지 않을까.
Heaven은 아티스트와 협업을 통해서도 브랜드의 세계관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고 있다. 바로 전자 음악계의 Y2K 선두 주자인 스웨덴 출신의 래퍼이자 프로듀서인 블레이드(Bladee)가 그 주인공이다.
블레이드(Bladee), ©dazed.com
Bladee x Heaven by Marc Jacobs
오토튠을 사용한 보컬로 청자에게 몽환적이면서도 허무주의적 감성을 선사하는 블레이드는 Heaven by Marc Jacobs 2022 SS 캡슐 컬렉션 협업을 맡았다. 그가 직접 제작에 참여한 베스트, 아트워크가 그려진 티셔츠, 니트 스웨터, 찢어진 청바지 그리고 악세사리는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꿈같은 세계에 대한 열망의 에너지를 들여다보게 하는 의도라고 한다.
계묘년 뉴진스(New Jeans)가 쏘아 올린 토끼 모자 트렌드는 올해 큰 인기를 끌었다. 더불어 고양이와 너구리 귀 모자도 있으니. 전 세계를 막론하고 귀여운 동물에 대한 애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Charles Jeffrey Loverboy 2022 FW, ©Mimi Wade
©Mimi Wade, ©jennierubyjane instagram
동물 귀 모자 트렌드에는 런던 기반의 두 브랜드를 호명할 수 있다. 바로 Charles Jeffrey Loverboy와 Mimi Wade. Charles Jeffrey Loverboy는 데뷔 1년 만에 영국 패션 어워드 올해의 떠오르는 남성복 디자이너로 선정된 스코틀랜드를 기반으로하는 브랜드이며 Mimi Wade는 90년대 후반 할리우드의 화려함을 내세워 그 시대만의 감성을 재현해 내는 브랜드이니 올 겨울을 책임질 귀여운 동물 모자를 찾고 있다면 꼭 참고해 보길 바란다.
너무 좋아서 그만 인형 그 자체가 되고만 패션도 있다. 이탈리아 브랜드 La Milanesa는 개구리, 곰, 오리, 토끼 등의 동물 인형들을 하나하나 붙여서 당장이라도 옷장으로 데려가고 싶은 욕구를 일으키는 비주얼의 가방을 선보였다. 하지만, 결코 귀엽지 않은 가격이 함정.
Adidas Originals by Jeremy Scott에서는 La Milanesa보다 한발 더 나아가 인형뽑기의 신이 입을 것 같은 팬츠를 선보이기도 했으며 Walter Van Beirendonck는 2020년 가을 컬렉션을 통해 인형 그 자체인 옷을 공개했다.
400개가 넘는 산리오의 캐릭터들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한다면 바로 ‘귀여움’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헬로키티(Hello Kitty)는 패션계에서 분명한 아이콘. Blumarine과 GCDS, BALENCIAGA와 같은 하이 브랜드부터 Nike, PUMA 같은 스포츠 브랜드까지 섭렵하며 셀럽들의 사랑도 듬뿍 받는 중이다.
Leaf Xia 2019 AW, Jimmy Pual 2020 SS
Soulland 2023 SS
헬로 키티 마니아라면 눈을 뗄 수 없을 귀여운 GCDS 크로셰 비키니를 휴양지에서 착용한 두아 리파(Dua Lipa), 자타 공인 키티 마니아인 걸그룹 블랙핑크 멤버 지수 그리고 딸들과 함께 핑크로 무장하고 산리오 월드를 방문한 할리우드 스타 킴 카다시안(Kim Kardashian)까지.
올해로 개최 23주년을 맞은 음악 페스티벌 서머 소닉(Summer Sonic) 무대를 마치고 한여름 도쿄에서 포착된 그룹 뉴진스도 있다
마치 친구들과 수학여행을 간 듯 영락 없이 풋풋한 소녀의 모습의 뉴진스 멤버들 모습 중 눈길을 사로잡은 건 혜인과 다니엘이 오버핏으로 착용한 서머 소닉 X 헬로 키티 콜라보 티셔츠다.
그렇다면 이토록 오랜 기간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헬로 키티의 힘은 무엇일까. 인터넷을 떠도는 밈에서 그 비결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었다.
“당신은 사랑받아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선 타인에게 친절해야 한다. 머리에 있는 리본은 사람 간의 유대를 의미한다. 키티가 입이 없는 건 우리에게 말보다 행동으로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패션은 몸과 가장 가까운 문화인 만큼, 신체 그 자체가 패션이 되기도 한다. 귀여움에 대한 애정은 뷰티 부문에서도 현재 진행 중이다.
트렌드세터들로부터 뜨겁게 사랑받고 있는 뷰티 브랜드 Starface는 귀여운 캐릭터나 도형의 여드름 패치를 만든다. 여드름 나길 기다리게 만드는 여드름 패치라니. 우리가 귀여워지는 방법은 옷뿐만이 아니었다.
‘귀엽다’는 단어로는 온전히 표현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일본어로 카와이(Kawaii)라고 말해져야만 비로소 온전해지는. 이는 대중문화에서 주류를 이루는 귀여운 캐릭터 문화가 일본에 그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00년 초반 일종의 서브컬처로서 현대미술계에 진출한 일본의 카와이 문화는 이제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귀여움과 패션을 놓고 말하자면 하라주쿠 문화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리고 하라주쿠를 논하자면 일본 스트리트 패션 매거진의 전설인 후르츠(FRUiTS)가 있었으니.
사진작가 아오키 쇼이치(Shoichi Aoki)가 1997년에 창간한 이 잡지는 도쿄 하라주쿠 근처에서 자주 시간을 보내며 놀았던 젊은이들의 독보적이고 개성 있는 스타일을 연대순으로 기록해 남긴 패션 잡지이자 아카이브다.
Pinterest, Tumblr 등에서 떠도는 스냅을 새로이 발견한 젊은 층들의 인기에 힘입어 후르츠 매거진이 다시금 소환되었듯, 귀여움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돌고 돌아 계속될 것이다.
어른들의 세계에도 발을 내디딘 귀여운 패션. 이미 커버렸지만 누구나 내면 안에 존재하는 아이와 판타지에 대한 열망이 있지 않을까. 혹은 소소하게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귀여운 캐릭터들을 얼굴을 마주하면서 과거의 기억들을 재발견하고 싶은 모종의 마음이 있지 않을까.
무엇이 되었든, 귀여움을 삶에 두는 일은 삶을 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현재를 즐기라는 오랜 격언을 되새기는 일종의 제스처다. 실존하지 않는 판타지 세계처럼,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이상화된 과거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한들 말이다.
아무렴 어떤가, 귀여운 건 그 자체로 미덕이고 우릴 행복하게 하니, 그거면 됐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