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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Sep 08. 2023

디자이너의 슬기로운 부캐 생활

Stories: Fashion Designer and Side Job 

Stories: Fashion Designer and Side Job

디자이너의 슬기로운 부캐 생활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코미디언 김민경 사이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본캐 못지않은 부캐의 비범한 능력이다. 다빈치는 그림 이외에도 과학과 건축, 의학까지 통달한 마스터 중의 마스터였으며 김민경은 먹방요정으로 선방하던 와중 우연히 접한 사격에 재능을 발견해 1년 만에 국가대표가 되었다.

이들처럼 패션계에도 본캐를 위협할 정도의 매력적인 부캐를 육성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름만 보아도 알아주는 거장들의 화려한 부캐 라이프를 지금부터 만나보자.




사진에 대한 순수한 열정


에디 슬리먼(Hedi Slimane)


ⓒwwd.com


Dior과 SAINT LAURENT, 최근엔 CELINE까지. 손대는 브랜드마다 화제의 중심에 올려놓는 마이더스의 손 에디 슬리먼. 그는 자신의 사진 작품으로 몇 번의 전시회를 개최한 실력 있는 포토 그래퍼이기도 하다. 그에게 사진은 패션 이상으로 특별하다. 11살 때부터 직접 카메라를 다루고 손수 인화 작업까지 했을 만큼 애착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에디가 직접 찍은 CELINE 캠페인 ⓒmodels.com



”나는 항상 사진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2017년 VOGUE와의 인터뷰에서 사진에 대한 솔직한 열망을 드러낸다. 마치 패션이 나의 진정한 길은 아닌 것 같아, 라고 고백하듯 말이다.

주변을 기록하고, 한 시대를 기록하고, 나아가 그 시대의 보관자가 될 수 있는 사람. 에디는 사진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토대로 이 일이 반드시 세상에 필요하다고 믿는다. 디자이너 모드일 때도 사진으로부터 영감을 받는 일이 대부분이라고 하니, 어쩌면 진정 그가 원하는 건 사진가로서의 삶일 수도 있겠다.



에디의 사진 작품들 ⓒautre.love



”인물 사진을 찍는 건 그 인물에 대한 짧은 소설을 쓰는 것과 같다.“ 에디의 사진은 특히 인물을 다루는 데에서 빛을 발한다. 피사체를 선택하는 데에도 나름의 관점이 있는 듯, 대부분 예술적 에너지가 풍부한 아티스트들과 독보적인 색채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는 그들의 강한 개성을 하나의 마법 같은 세계라 표현하며 그것을 포착하는 데엔 사진만 한 게 없다고 덧붙인다. 덕분에 우린 시대를 장악했던 멋진 예술가들의 순간들을 영원히 감상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저 감사할 뿐. 더 많은 에디의 작품이 궁금하다면 여기 <에디 슬리먼 일기>에 접속해 보자. 사진에 대한 그의 진정성이 여실히 느껴질 것이다.



에디 슬리먼 일기에 업로드 된 작품들 ⓒhedislimane.com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newyorker.com



그를 빼고 어떻게 패션에 대해 논할 수 있으랴. 2019년 임종 직전까지 CHANEL과 FENDI를 책임졌던 칼 라거펠트. 그 역시도 패션과 사진을 겸업으로 하는 디자이너이자 포토그래퍼다. 그동안 CHANEL 캠페인의 촬영을 전담한 것도 모자라 유명 잡지의 표지와 화보 작업도 진행했으며, 2016년엔 피렌체의 보석 같은 장소인 ‘피티 궁전(Florence’s Pitti Palace)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던 실력자다. 그의 사진에 관심 있는 팬이라면 2011년, 국내에서 열린 전시 ’Work in Progress'를 떠올렸을지도.



피렌체 피티궁전에서 개최한 칼 라거펠트의 사진 전시회 ⓒvogue.com



1987년, 직접 고용한 작가가 찍은 CHANEL의 컬렉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럴 바엔 내가 찍겠다.”며 카메라를 빼앗은 게(?) 시작이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지만, 어쨌든 직접 찍은 작업이 전문가 못지않은 파급력을 일으켰으니 그의 대담한 도전이 제대로 들어맞은 건 맞다. 대중의 관심은 물론이며 저명한 큐레이터들 역시 작품의 예술성을 인정했을 정도니까.



칼이 직접 촬영한 CHANEL 캠페인 ⓒiso1200.com, ⓒfashiongonerogue.com


칼은 익숙함 속에서 피사체를 찾았다. 친구와 뮤즈, 풍경과 정물, 건축과 그의 반려묘까지. 소중한 순간을 포착하고 싶은 그의 순수한 마음이 카메라를 쥐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작품들은 절대 무료하지 않다. 주변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은 물론, 완성된 사진에 여러 변주를 주어 패션 작업과 차별화를 둔 작업들도 있으니 말이다. 주 무대가 아닌, 또 다른 분야의 감각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라니. 역시 레전드는 다르다.



칼의 사진 작품들 ⓒhypebeast.com, ⓒartspace.com







패션과 액션 사이


톰 포드(Tom Ford)


ⓒnytimes.com



지금으로부터 한 20년쯤 뒤의 세대는 톰 포드를 영화감독으로 먼저 인지하지 않을까? 물론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멋진 브랜드가 있지만, 그 톰 포드가 그 톰 포드였어? 하고 놀라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 같다. 패션에 무지하고 영화에 매료된 씨네키드라면 무조건.



ⓒpapercitymag.com



GUCCI와 SAINT LAURENT을 거쳐, 브랜드 TOM FORD의 수석 디자이너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그는 올해 2023년 FW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런웨이에서 은퇴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런 그의 파격적인 선언에 대중과 언론은 모두 같은 예측을 했으니… 아, 이제 이 사람이 본격적으로 영화를 찍을 작정이구나!

“<싱글맨>을 만들었더니, 사람들이 내가 이렇게 깊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한다.“ 이처럼 그의 데뷔작인 <싱글맨>엔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톰 포드의 색다른 면모가 담겨있다. 게다가 연기도 내용도 미장센도 처음이라 하기엔 너무나 완성도가 높았다. 이 작품은 주연인 콜린 퍼스(Colin Firth)에게 남우 주연상을 안겨주었으며, 이듬해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노미네이트 될 정도로 영화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영화 <싱글맨>과 촬영 현장 ⓒnpr.org, ⓒfashionschooldaily.com




2016년의 <녹터널 애니멀스>는 한층 더 견고한 구조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를 심어두는 액자식 구성을 선택해 더 풍성한 서사를 펼쳐냈으며, 비주얼은 완벽을 넘어 결벽적일 만큼 치밀했다.

하나 우스운 건,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에 이어 톰 포드도 촬영장에 정장을 입고 출근한다는 사실이다. “양복은 갑옷입니다.”라고 말했던 그의 열정적인 투지가 영화에서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음을 단번에 느낄 수 있는 포인트다. 현재 준비 중인 차기작은 다크한 코미디가 될 것이라고 하니 어디 한 번 마음껏 기대해 보자.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와 촬영 현장 ⓒtheoddapple.com, ⓒfashionista.com






메리 케이트 & 애슐리 올슨 (Mary-Kate & Ashley Olsen)


ⓒthetimes.co.uk


요즘 급부상하고 있는 올드머니룩 덕택에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는 THE ROW. 기품 있고 성숙한 분위기는 물론, 최상의 품질로 유명한 이 브랜드의 수장 올슨 자매는 사실 배우 출신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잘 나가던.

미국인들에게 이 둘은 우리나라로 치면 ‘국민 동생’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생후 9개월부터 시트콤 풀 하우스(Full House)에 출연했다고 하니, 경력으로만 따지면 로버트 드 니로 저리 가라다.



ⓒvogue.fr



하지만 둘은 성인이 되어갈수록 연기로 주목받기보단, 오히려 패션으로 더 주목받는 셀럽에 더 가까워졌다. 그들이 얼마나 옷에 진심이었는지는 넘쳐나는 파파라치 샷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매해 다른 스타일에 도전하며 변신을 꾀하는 건 물론,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심미안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이윽고 그들은 2006년, 18살이 되던 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흰색 티셔츠’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의류 사업에 뛰어든다.



ⓒelle.com, ⓒrefinery29.com



그렇게 탄생한 게 바로 THE ROW다. 누구처럼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네임으로 톡톡한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었지만 과감히 포기했다. 그들에겐 오로지 ’제품만을 위한 제품‘을 만들겠다는 신념이 있었고, 충분히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THE ROW는 럭셔리 패션에 중심에 당당히 서있다. 성공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힘들다는 삭막한 패션계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은 것이다.



THE ROW 2023 FW ⓒvogue.com







그들은 언제나 예술가였다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


ⓒprimalinformation.com



올해 초, 국내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마틴 마르지엘라의 전시. 대체 불가능한 아우라로 패션계를 장악했던 그가 2008년 돌연 은퇴를 선언한 뒤 이어진 최초의 행보는 바로 순수 예술 전시였다. 사실 그의 팬이라면 충분히 예상하지 않았을까? 패션계에 분 해체주의 바람에 선도 주자나 다름없는 역사적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데오드란트(Déodorant), 2021 ⓒwallpaper.com



그러니까 마르지엘라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관건은 본인의 예술혼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지의 차이일 뿐, 그는 줄곧 같은 사유와 철학으로 세상을 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요점은 하나다. ‘패션은 할 수 없었으나, 예술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패션계에서의 그는 ‘반패션(Anti-fashion)’이란 개념을 빌어 강한 저항 의지를 표명해 왔다. 그의 런웨이는 항상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풍겼고, 사람들은 이를 기꺼이 반겼다. 매 순간이 새로움의 연속이었으니까. 하지만 패션은 인체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는 분야였다. 아이디어의 시작엔 항상 인간이 있어야 했으머, 상업적 이익까지 실속 있게 챙겨야 했다. 하지만 예술은 다르다. 지구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분야다. 어쩌면 마르지엘라는 데뷔 후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저항이란 프레임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마틴 마르지엘라의 패션 작업들 ⓒzoeakihary.com, ⓒnumero.com


예술의 영역에서 탄생한 그의 작품들은 우리에게 생명에 관한 독특한 시선을 제안한다. 인체에 대한 저항은 생명에 대한 집착으로 변했으며, 피상에 열중하기보단 내면에 대한 고찰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인공물 혹은 생명으로 온전히 인지하지 않았던 존재들에게 새로운 존엄성을 부여한다. 공간이나 사물, 신체 등을 재해석함으로써 말이다. ’보여주기 위한 작품‘에서 ’보여지기 위한 작품‘으로. 패션의 혁명가였던 마르지엘라는 이제 강한 주체성으로 작품들을 창조하는 이기적인 예술가가 되었다.


토로소 I-III(Torso I-III), 2018-2021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빨간 손톱들(Red Nails) 2019, 신체 부위(Body Part), 2019, 바니타스(Vanitas) 2020ⓒfrieze.com






헬무트 랭(Helmut Lang)


ⓒwmagazine.com


패션계의 아웃사이더 헬무트 랭. 그는 1980년대를 주름잡던 화려함 속에서 미니멀리즘의 싹을 틔운 인물이다. 상업주의에 빠져있던 패션계의 디스토피아적 현실에 맞서 자신만의 신념을 담은 실험적인 런웨이를 선보였던 것. 덕분에 1990년대의 패션계는 미니멀리즘의 계보로 차곡차곡 채워져 갈 수 있었다. 실용성과 기능성이 충족되지 않으면 의상이라 여기지 않겠다는 ‘기본’의 원칙이 제대로 먹혀들어간 것이다.


90년대 HELMUT LANG 컬렉션 ⓒvogue.com



그는 2005년 자신의 브랜드 HELMUT LANG과 결별한 후, 무려 10년이라는 공백을 깨고 2015년 뉴욕에서 첫 개인전을 열며 진정한 아티스트의 반열에 들어섰다. 사실 그는 디자이너로 활동할 당시에도 사진작가, 건축가, 현대 예술가들과 활발한 교류와 협업을 진행해 왔었기에 은퇴 이후 예술로 커리어를 전향한 건 그리 놀랍지 않은 일.

반면 작품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일단 디자이너 시절부터 추구해오던 미니멀함의 미학을 꾸준히 지켜냈다는 점이 그렇다. 조각을 선택한 것 역시 탁월하다. 수십 년간 다뤄 온 인간의 신체라는 오브제에서 자연스럽게 옮겨가기 딱 좋은 장르니까. 때문에 그의 창작욕은 더욱 고차원적인 미니멀함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은 동일한 무게를 갖는다(Alles Gleich Schwer), 2008
헬무트 랭: 신작(Helmut Lang: New Work), 2016 ⓒanothermag.com



2010년, 스튜디오에 큰 화재가 일어나 그동안의 아카이브 제품들이 손실되는 사고가 있었지만 오히려 그 잔재들을 재료로 활용하여 재탄생시킨 작품 <63>. 이 작업은 그가 앞으로 지향해 나갈 지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올바른 시작과 결말을 판단할 수 없는 예술 속에서 오직 ‘지금에 열중하라’고 말이다. 플랜 B는 존재하지 않으니.



63, 2019 ⓒanothermag.com







비트를 담은 디자인


버질 아블로(Virgil Abloh)


ⓒinterviewmagazine.com


Off-White와 LOUIS VUITTON의 디렉터. 우리가 기억하는 버질 아블로는 아마 이 두 직함으로 굳어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는 성공한 투잡러였다. 두터운 음악적 커리어를 자랑하는 어엿한 디제이로서 말이다. 10대부터 디제이 활동을 해왔다고 하니, 순서로 따지면 음악이 먼저인 셈.



ⓒpurepeople.com, ⓒpitchfork.com



“디제잉은 내게 유일한 마음의 평화를 제공했다. 디자이너를 그만두게 되면 디제잉을 할 것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디제잉을 향한 한결같은 사랑을 고백했다. 고등학교 시절의 버질은 에이 트랙(A-Trak)이나 록 라디아(Roc Raida), 인비저블 스크래치 피클즈(Invisibl Skratch Piklz)같은 유명 디제이들을 덕질했던 디제이 꿈나무였던 것.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에이 트랙, 록 라디아, 인비저블 스크래치 피클즈 ⓒfactmag.com, ⓒsoundcloud.com



이렇게 보면 칸예 웨스트(Kanye West)와의 깊은 친분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무리 패션으로 맺어진 인연이라지만, 음악적 공감대가 있었기에 더욱 돈독한 관계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 이후 그는 여러 앨범의 아트워크를 제작하고 뮤직 비디오까지 연출하면서 틈틈이 음악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나아가 2018년엔 보이즈 노이즈(Boys Noize)와 함께 EP 수록곡을 작업하기도 했으며, 여러 페스티벌에서 자신만의 음악적 스타일이 녹아있는 디제이 셋을 선보이기도 했다. 듣는 순간 비트 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선곡과 수려한 테크닉. 버질의 음악 세계는 그의 패션 만큼이나 매력적이다



이제 패션과 다른 분야의 경계를 나누는 건 무의미한 일이 되어버렸다. 서로의 영역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교류하고, 성장하며, 진화하고 있으니 말이다.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또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열정이 부디 지치지 않고 계속되기를,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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