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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Sep 20. 2023

금속으로 옷을 만드는 연금술사 파코 라반

Brand LAB: rabanne

Brand LAB: rabanne

금속으로 옷을 만드는 연금술사




우주 어딘가에는 지금도 새로운 별이 생겨나고 사라진다.

플라스틱, 금속이라는 낯선 소재도 옷으로 만들 수 있음을 알린 패션계의 뉴 스페이스 디자이너 파코 라반(Paco Rabanne). 그리고 총총히 빛나고 있는 브랜드 ‘rabanne’ 이야기.




2023년 2월,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파코 라반. 그의 사망 소식은 rabanne을 소유한 럭셔리 그룹 푸이그(Puig)로부터였다. 그룹의 CEO 마크 푸이그(Marc Puig)는 공식 성명을 통해 깊은 애도를 표했다.



"Among the most seminal fashion figures of the 20th century, his legacy will remain a constant source of inspiration.”

20세기 중요한 패션 인물 중, 그의 유산은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으로 남을 것이다.



그의 유산이 대체 무엇이길래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했을까. 디자이너 파코 라반, 그에 대하여 조금 더 면밀히 살펴보자.





내 이름은 프란시스코 라바네(Francisco Rabaneda)


파코 라반의 본명은 프란시스코 라바네. 그는 공화당 대령 아버지, 재봉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34년 파코의 출생으로부터 2년 뒤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고 내전을 일으킨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 군부 세력에 의해 아버지는 체포되어 사망한다.

재봉사인 어머니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obal Balenciaga)의 첫 번째 쿠튀르 하우스에서 수석 재봉사로 일했지만, 내전 상황과 도시의 함락으로 파코 라반과 함께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게 된다.

프랑스에서 새로운 삶에 적응해야 했던 그는 자신의 창작물에 Frank Rabanne으로 서명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그리고 영어권 국가의 사람들이 기억하기 쉽도록 프란시스코 성을 줄이며 그의 이름은 파코 라반이 되었다.


©Keystone Features, ©Hulton Archive



흐름상 파코 라반은 재봉사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패션계에 뛰어들게 되고, 스타 디자이너로 등극하는 다소 뻔한 전개가 계속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는 패션 전공이 아닌 건축 전공으로 프랑스 국립 미술 학교 에꼴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에 입학한다.

건축을 공부하는 동안 그는 산업 디자인, 플라스틱 가공 시스템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뭐가 돼도 될 놈은 된다고 했던가. 다양한 예술을 접하고 영향을 받은 파코 라반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BALENCIAGA, Courrèges, Pierre Cardin, GIVENCHY 패션 하우스에서 주얼리와 단추를 만들게 된다. 이 과정에서 파코 라반은 패션과 건축을 자신이 경험만의 개성으로 융합하기 시작한다.




건축 전공으로 패션과는 다른 길을 걸을 줄 알았던 파코 라반. 피는 못 속인다는데 재봉사로 일했던 어머니의 영향이 큰 탓이었을까, 결국 그는 1966년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하우스 Paco Rabanne을 설립하며 패션 업계에 본격적인 신호탄을 터뜨렸다.



천재와 광인은 한 끗 차이


누군가 당신에게 철 덩어리를 내밀며 “옷으로 만들어 오세요.”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높은 확률로 우스갯소리라는 듯 실없이 웃으며 넘기지 않을까.

하지만, 파코 라반은 달랐다. 경계 없이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패션을 배웠다. Paco Rabanne 브랜드 데뷔를 위한 첫 컬렉션을 보면 편견 없는 그의 면모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Paco Rabanne 1996 SS Haute Couture


©vmagazine.com



컬렉션 이름하여 '12 Unwearable Dresses in Contemporary Materials’.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현대 소재로 만든 입을 수 없는 12벌의 드레스’가 되겠다.


망치로 두드린 금속, 플라스틱, 종이, 광섬유, 알루미늄 호일 더 나아가 시멘트까지 사용해 새로운 의류를 만들어 낸 파코 라반. 남들에겐 그저 건축에 쓰이는 재료 중 하나로 인식되었던 소재가 그의 손을 지나 새롭게 태어났다. 철을 금으로 바꾸어내는 연금술처럼 패션계 연금술사가 있다면 파코 라반이 그 주인공 아닐까.


©rabanne


무엇이 되었건 호불호는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금속 드레스’는 당시로서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였다. 때문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이도 대다수였다고 한다. 코코 샤넬(Coco Chanel)은 라반의 컬렉션을 보고 ‘패션계 금속공학자’. 라고 말하며 그의 창의성을 단순히 야금학자로 치부해 버리기도 했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컬렉션이지만, 거침없던 그의 연금술 디자인 행보는 패션 업계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새겼다.



©rabanne


"I defy anyone to design a hat, coat, or dress that hasn't been done before...The only new frontier left in fashion is the finding of new materials."

패션계에 남아있는 유일한 개척지는 새로운 소재의 발견이다.
– 파코 라반



파코 라반과 셀럽이 만났을 때


첫 컬렉션으로 이슈몰이에 성공한 파코 라반. 이후, 럭셔리 패션 세계관으로 진입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셀럽’과의 시너지다.



프랑수아즈 아르디(Francoise Hardy)


도입부 5초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샹송 Comment te dire adieu 를 부른 가수 프랑수아즈 아르디. 헝클어진 머리와 중성적인 외모의 아르디는 1960년대를 풍미한 팝 아이콘이자 패션 아이콘이었다. BALENCIAGA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니콜라스 게스키에르(Nicholas Ghesquiere)는 아르디를 ‘프렌치 시크의 정수’라고 칭하며 많은 패션 디자이너의 뮤즈로 영감을 주었다.

그런 아르디가 가장 좋아했던 패션 브랜드는 다름 아닌 Paco Rabanne. 심플한 티셔츠와 데님의 조합이 그녀의 시그니처 룩으로 손꼽히지만, 특별한 공연이 있을 때 찾은 의상은 Paco Rabanne 메탈 체인 드레스였다.


©Giancarlo Botti


1968년 프랑수아즈 아르디는 전시회 개막식에서 Paco Rabanne 드레스를 착용한다. 9kg의 금으로 만들어진 1,000개의 금속과 300캐럿 다이아몬드, 5,000개 금반지로 만들어진 미니드레스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드레스’로 불렸다.


시대를 대표하는 패션 아이콘 프랑수아즈 아르디와 대중에게 브랜드 존재를 각인시키고자 했던 Paco Rabanne. 서로에게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istitutomarangoni.com



제인 폰다(Jane Fonda)


파코 라반은 1968년 SF 판타지 영화 바바렐라(Barbarella)에서 우주를 누비는 여성 히어로 제인 폰다의 의상을 디자인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최정상 배우 반열에 올랐던 제인 폰다의 초록빛 드레스는 지금 보아도 미래 지향적이며 대담함을 띠고 있다.

©smoda.elpais.com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시대를 초월한 오드리 헵번 스타일에서도 파코 라반의 드레스를 찾아볼 수 있다. 1967년 영화 언제나 둘이서(Two for the Road)는 패션이 영화와 어떤 방식으로 상호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상징적인 메탈 체인 드레스와 귀걸이는 콰이어트 럭셔리 대명사 오드리 헵번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모양.

©ALAMY

Two for the Road (1967)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20세기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코코 샤넬, 피카소(Pablo Picasso),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등 화려한 인맥을 자랑했는데, 당시 파코 라반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둘 사이의 신뢰를 알 수 있는 사례 중 하나로, 달리는 파코 라반을 ‘Spain's second genius’로 불렀다고. 괴짜들의 우두머리 괴짜 살바도르 달리가 천재로 인정했다고 하니 그 비범함의 농도가 더욱 짙어 보인다.


왼쪽부터 파코 라반, 프랑수아즈 아르디, 살바도르 달리.


“There are only two geniuses in Spain: me and Paco Rabanne”

스페인에는 천재가 단 두 명 있습니다. 바로 나와 파코 라반입니다.
– 살바도르 달리




제인 버킨(Jane Birkin)


호소력있는 그 이름. 여자들의 ‘워너비 스타일’을 수두룩하게 제시했던 제인 버킨도 눈여겨보았던 브랜드가 바로 Paco Rabanne. 파코 라반은 제인 버킨 한 사람만을 위한 드레스를 만들었고, 바로 아래 보이는 이미지가 그 미니드레스다.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제인 버킨과 연인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 그의 트리뷰트 앨범 커버 또한 Paco Rabanne 의상이 단연 돋보인다. 입었다 하면 화제를 일으켰던 당시 최고의 셀러브리티 제인 버킨과 대담한 디자인의 Paco Rabanne이 만남이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rabanne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파코 라반은 패션계 메탈을 남긴다.


“누구나 스타가 될 수는 없어요. 똑똑해야 합니다.”
– 파코 라반


©Getty Image


똑똑한 스타 디자이너 파코 라반이 이끌어왔던 브랜드의 강세는 1980년대에 들어서며 꺾이기 시작한다.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 티에리 뮈글러(Thierry Mugler) 디자이너가 주목받던 80년대에는 퍼프 숄더, 볼륨감 있는 실루엣, 선명한 컬러가 지배적이었기 때문.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을까. 파코 라반은 쿠튀르 쇼를 마지막으로 1999년 패션계 은퇴한 뒤 24년 동안 대중의 눈에 거의 띄지 않았다. 이후 들려온 소식은 다름 아닌 파코 라반이 세상을 등졌다는 비보였다.

Paco Rabanne의 공식 인스타그램은 파코 라반의 생전 사진이 ‘선구자’ 캡션과 함께 올라왔다. 패션계 혁명을 가져왔던 그는 호랑이 가죽 못지않게 지워지지 않는 진한 발자국을 남긴 채 떠났다.


©Eric Robert, ©Getty Image, ©Getty Image





Paco Rabanne의 끝, Rabanne의 시작


상실도 잠시, Paco Rabanne은 창립 60주년을 기념하며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 리브랜딩 전략을 펼쳤다. Paco Rabanne에서 rabanne으로 이름을 바꾼 것. 로고에도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데, 변경된 rabanne의 타이포그래피는 1969년 처음 출시된 Paco Rabanne의 향수 칼란드레(Calandre)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현재 rabanne을 이끌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줄리앙 도세나(Julien Dossena). 그는 미래주의적 미학을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개선된 시각적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The process of designing brings inspiration for me, so working with my team, it’s really like a laboratory – and at Rabanne that’s even more true, since innovation is so key to the DNA of the brand”

디자인 과정은 나에게 영감을 주기 때문에 팀과 함께 일하는 것은 실험실과 같다. Rabanne에서는 혁신이 브랜드 DNA의 핵심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 줄리앙 도세나


©rabanne



미래학자, 디자이너, 신비주의자, 미치광이, 다다이스트, 조각가, 건축가, 점성가, 향수 제조자, 예술가 및 예언자. 모두 파코 라반을 수식하는 단어다.

그는 독특하고 평범하지 않은 것에 대한 궁금증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그렇게 Paco Rabanne의 첫 컬렉션 ‘입을 수 없는 드레스’는 ‘누구나 입고 싶어 하는 드레스’가 되었듯, 파코 라반은 남들이 무심히 지나쳐 버리는 것들로 세상을 변화시켜 왔다.

궁금증이 세상을 만든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당연한 걸 당연히 여기지 않는 호기심, 나를 둘러싼 편견을 넘어서는 자세가 아닐까. 경계 없이 세상을 바라보던 파코 라반의 시선, 그리고 rabanne이 지닌 신념이 유난히 빛나 보인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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