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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Oct 17. 2023

영원한 건 절대 없어

Stories: Fashion and Death

Stories: Fashion and Death

영원한 건 절대 없어




한 치 앞도 모르는 우리네 인생. 아이러니하게도,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 있다면 ‘죽음’일 것이다. 그럼에도 죽음은 여전히 일상에서 쉽게 꺼내기 어렵고도 두려운 주제다. 우리는 종종 잊고 살지만 죽음은 삶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삶의 또 다른 한 면일 뿐. 그 다른 한 면에 귀 기울일 때 삶이 주는 기쁨을 더 누릴 수 있다는 역설에 대하여.




기억한다는 건 살아있다는 것


ⓒleopoldmuseum.org

Death and Life by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영원할 것 같은 우리 삶도 언젠가 끝이 난다. 특히 가까운 이가 사고나 질병으로 죽음을 직면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유한한 존재인 우리 자신의 인생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죽음 그 자체보다 그 과정이 더 고통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지난날의 기억들이 교차하며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킬 테니.

실제로 죽음은 삶을 성찰하게 한다.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5가지’같은 류의 글을 한 번쯤은 본 적 있을 것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후회를 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시한부 환자들이 하나같이 가장 후회하는 일은 바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반추하게 하는 말이다. 또 죽음을 미리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기도 하다. 되돌릴 수 있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themoviedb.org

영화 ‘코코’ 포스터. 



멕시코의 전통 축제이자 대표적 명절인 ‘죽은 자들의 날(Day of the Dead)'. 이는 디즈니와 픽사에서 제작한 영화 ‘코코’의 배경이기도 하다. 주인공 ‘코코’는 우연히 만진 기타를 통해 ‘죽은 자들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는데 ‘코코’의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가 연결되는 방식은 바로 ‘기억’이다. 그런 점에서 두 세계는 분리된 세계가 아니라 서로에게 열려 있는 세계이며, 이는 삶과 죽음을 동일한 대상으로 보는 멕시코 사람들의 인식과 맞닿아 있다.



ⓒmexicotravel.blog.com

멕시코의 대표적인 명절 ‘죽은 자들의 날’.

ⓒnohurrytogethome.com



죽은 자들이 이승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머문다는 내세관에서 출발하는 ‘죽은 자들의 날(Day of the Dead). 해골 분장을 하고 전통 옷을 입은 이들로 도시가 가득 메워지고, 더 이상 곁에 없지만 함께한 소중한 기억들을 나눈 사람들을 다 같이 기억한다. 이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잠깐의 이별이며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아있다면 진정으로 죽은 게 아니다.



ⓒvestoj.com




인간의 실존을 되묻는 옷


패션과 죽음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은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이었다. 2010년, 어머니의 장례식을 하루 앞두고 런던 자택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맥퀸. 이는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맥퀸의 ‘거의’ 모든 컬렉션은 불안과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으니까. 맥퀸을 비롯한 많은 패션 디자이너들이 죽음을 주제로 컬렉션을 구현해냈고, 그 안에는 그 어떤 불안한 낭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vogue.co.uk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처음으로 자신의 옷을 선보인 1992년 센트럴 세인트 마틴 졸업 컬렉션부터 그의 손길이 닿은 마지막 의상들을 볼 수 있었던 A/W 2010 쇼까지. 알렉산더 맥퀸은 우아하고도 가식적인 아름다움이 몸에 밴 기존 패션 문법을 모조리 파괴했다. 오로지 자신이 믿는 것을 묵묵히 관철하며, 승부했다.


한 예로 ‘Highland Rape’ 1995 AW 컬렉션은 그 자체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고, 그로 인해 많은 여성 혐오자라는 공격과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맥퀸의 의도는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를 강간했던 역사를 지적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보면 알 수 없는 사회 고발적 맥락이 있었던 것이다. 1995 AW 컬렉션에는 타탄 무늬 스타일이 나오는데, 당시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가 즐겨 쓴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이 스타일은 그저 사랑스럽고 로맨틱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18세기 스코틀랜드는 버거운 시폰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성이 자유롭게 떠도는 황야가 아니었다고.

그러면서 맥퀸은 덧붙인다. “내 패션쇼는 그런 낭만주의를 반박한다. 맥락을 무시하고 옷이 어떻게 재단되었는지만 살펴본다면 머리를 많이 쓸 필요가 없다. 나는 그런 무지한 태도에 맞춰줄 수 없다. 사람들이 조금 더 생각하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라고. ‘죽음’을 비롯해 당시 금기시되던 소재를 본질을 적극적으로 끌고 와 펼쳐 보인 그 다운 말이다.



ⓒlofficielbaltic.com, ⓒi-d.vice.com

Alexander McQueen 1998 SS, Alexander McQueen 2001 AW

ⓒnytimes.com

Alexander McQueen 1998 AW 

ⓒtwitter.com

Alexander McQueen 1998 SS 

ⓒlofficielbaltic.com

Alexander McQueen 2006 FW 



“그의 디자인에는 늘 죽음에 대한 동경이 서려 있었다. 아마도 그가 죽음을 희롱하는 사이, 죽음이 그에게 매혹을 느꼈던 모양이다” -전 CHANEL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죽음의 상징인 ‘해골’.

지금은 해골을 패션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지만, 사실 사람이 죽은 뒤 썩은 머리뼈라고 생각하면 그 자체로 섬뜩한 이미지다. 70년대 펑크 록 유행과 함께 반항심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던 해골을 주류 패션으로 끌어 올린 건 바로 맥퀸이다. 죽음의 이미지와 해골과 뼈를 디자인 모티프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pinterest.ca

Alexander McQueen 2001 FW 

ⓒalexandermcqueen.com, ⓒpinterest.ca

Alexander McQueen 시그니처 해골 스카프, Alexander McQueen 시그니처 해골 팔찌

ⓒpinterest.co.kr

ⓒpinterest.ca, Alexander McQueen 1998 SS 

ⓒteampeterstigter.com, ⓒhighsnobiety.com

Comme des Garçons 2011 SS, ERL 2022 FW



GIVENCHY의 리카르도 티시(Riccardo Tisci) 역시 어둠의 세계를 파고들었다. 음산하면서도 로맨틱함이 돋보이는 '죽음을 보는 낭만적인 방법'을 대변하는 2015 AW 컬렉션.



ⓒvogue.com

GIVENCHY 2015 AW

,ⓒfashionweekdaily.com

GIVENCHY Women 2015 AW



Thom Browne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사선 디자인. 우리나라 장례식 상주의 의상을 연상시키는 탓에 인터넷에 톰 브라운을 검색하면 “톰 브라운 장례식 컬렉션”같은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디자이너 톰 브라운(Thom Browne)이 조금이라도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것인지 알 길은 없지만 말이다.



ⓒmontenapodaily.com

Thom Browne 



2015 AW 컬렉션에서 죽음을 상상하며 옷을 만든 그는 “상복을 입는 게 항상 슬픈 것만은 아니다. 낭만적이고 아름다워 보이는 상복을 만들고 싶었고 그 자체로 희망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소중한 이가 더 이상 현실에 없는 것에 대한 슬픔을 표하고 그들이 생전에 해 온 일에 감사하며 그저 삶을 축하하고 싶었다는 것.



Thom Browne 2015 FW

ⓒnytimes.co


Thom Browne 2015 AW

ⓒvogue.com



당시 쇼 현장에 있던 많은 이들을 눈물짓게 했다고 전해지는 레이 가와쿠보(Rei Kawakubo)의 ‘이별식(Ceremony of Separation) Comme des Garçons 2015 FW 컬렉션도 빼놓을 수 없다.



Comme des Garçons 2015 FW

ⓒdezeen.com



런웨이에 선 모델들은 가와쿠보가 전하고자 한 이별의 궁극적인 의식을 보여줬다. 서로에게 작별을 고하는 이들의 사이의 공기와 그들은 감싼 옷이 만들어 내는 시너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체험이었다.


가와쿠보는 이별의 고통이 아름다운 힘으로, 어떤 식으로든 극복되고 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이쯤 되니 ‘애도의 다섯 단계’라는 용어가 떠오른다. 상실을 겪은 이가 그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정서적 단계로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이 있다는 것인데, 이 쇼를 보고 있노라면 그 과정을 한 번에 다 경험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Yohji Yamamoto 2015 FW, 어둠 속을 걷는 슬프고 고요한 퍼레이드는 죽음의 심연을 보여 준다.



ⓒshowstudio.com

Yohji Yamamoto 2015 FW



2019년 알렉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가 GUCCI의 쇼 장소로 선택한 곳은 이끼가 덮인 고대의 무덤이 줄지어 있는 알리스캄프(Alyscamps)였다.



ⓒtheguardian.com

GUCCI Cruise 2019 



환한 불꽃을 사이로 신비로움이 넘실대는 런웨이. 그 위에선 고대의 무덤 문양과 고딕, 로큰롤 정신이 꿈틀댄다. 종교적 유물같이 손에 쥐어진 장례식 꽃과 핸드백에선 어떤 숭고함이 느껴진다.

"죽음은 매혹적이다 (Death is a fascination)” – 알렉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



ⓒharpersbazaar.com


단언 눈길을 끈 건 한 모델이 착용한 팬츠에 적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twitter.com, ⓒTHECUT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죽음을 잊지 마라' 등으로 번역되는 라틴어 문구다. 삶의 유한성을 자각하라는 의미로 쓰인다. 그런 점에서 패션은 그 자체로 일종의 ‘메멘토 모리’다. 트렌드가 탄생하는 순간, 그것은 죽을 운명이며, 거기서 다시 새로운 탄생이 기약되니.




장례식은 꼭 슬퍼야 할까?

ⓒfashionmodeldirectory.com

Cesare Paciotti 2000 SS 



장례식과 묘지를 배경으로 한 Cesare Paciotti의 2000 SS 캠페인. 무표정한 모델들에게선 그 어떤 비통함도 가늠되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서 멋지게 차려 입고 있을 뿐. 이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엄숙함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장례 문화도 있다. 가기 전에 실수라도 할까 ‘장례식 예절’을 먼저 검색해 보게 되니 말이다.

“건강할 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일본 건설 분야 기업 고마쓰의 전 사장 안자키 사토루(Satoru Anzaki)가 ‘생전 장례식’을 치르겠다며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실은 광고이다. 당시 암을 선고받았던 그는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모습으로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던 것. 그는 “회비나 조의금 없이, 일상복으로 와달라”라며 “나는 (삶을) 마감하듯 하는 게 싫어서 다 같이 즐거울 수 있는 모임을 열었다. 죽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인생을 충분히 즐겨왔고 수명에는 한계가 있다”라고 말하며 능동적으로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태도란 무엇인지 보여줬다.



ⓒpapermag.com

Jean Paul Gaultier 



이처럼 살아있을 때 ‘생전 장례식’을 여는 이들의 마음은 죽기 전 슬프지 않은 분위기에서 작별을 하겠다는 것이다. 관 속에 들어가 누워보는 체험처럼 살아 있을 때 생을 돌이켜 보며, 아름답게 정리하자는 일종의 웰다잉(Well-dying) 활동인 셈. 죽은 후에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하며 유언장을 써보거나, 주변의 지인들에게 편지를 쓰는 방식으로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piainterlandi.com

인체의 분해 과정을 모방하는 수의. 



그런 의미에서 장례식 의상(누군가가 매장, 화장, 혹은 다른 방식에서 입는 옷)은 고인이 살아있을 때 가장 편하게 느꼈던 옷을 입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가장 자신다운 모습으로 말이다. 지속 가능성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 지금, 서구권에서는 고인에게 인체의 분해 과정을 모방하는 생분해성 옷을 입히기도 한다. 삶의 일부인 죽음을 능동적인 주체로, 자신답게 맞이하는 법에 대해,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삶의 일부인 죽음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을 뿐, 마지막 도착하는 곳은 같다.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중

영원한 건 없다. 우리의 인생도 언젠간 끝이 나며, 좋으나 싫으나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게 ‘죽음’이다.  죽음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것은 당연지사지만 죽음 역시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생의 마침표인 죽음을 제대로 인식하고 마주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을 더 귀하게 여기며 만들어 나갈 수 있을 테니.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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