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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Nov 14. 2023

디자이너는 컬렉션 피날레에서 무엇을 입을까

Stories: Fashion Designer and Backstage


Stories: Fashion Designer and Backstage

디자이너는 컬렉션 피날레에서 무엇을 입을까




세상 모든 브랜드는 디자이너가 담아낸 태도나 신념이 깃들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디자이너가 6개월에 걸쳐 준비한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는 런웨이 피날레는 그들의 스타일을 파악하기에 아주 적절한 순간!




쇼의 진정한 주인공, 디자이너


마지막 모델의 런웨이 워킹이 끝나는 순간, 전 세계에서 온 취재진의 카메라와 관객의 시선이 꽂히는 건, 바로 쇼의 진정한 주인공, 디자이너다. 피날레에 선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의 옷만큼이나 확고한 스타일을 선보여 왔으니.


Vivienne Westwood 2019 FW RTW, Vivienne Westwood 2012 RTW

수트핏의 정석, 톰 포드(Tom Ford), Tom Ford 2015 SS, GUCCI 2004 FW

ⓒvogue.com

피날레를 독식했던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Christian Dior 2005 FW, Christian Dior 2002 SS 

생 로랑과 디올 바지를 즐겨 입은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CHANEL 2015 SS, 다이어트 전의 칼 라거펠트, CHANEL 2000 AW



그렇다면 요즘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은 런웨이 피날레에서 어떤 재미를 불러일으키고 있을까. 지금부터 찬찬히 살펴보자.





한걸음에 달려나갑니다, JACQUEMUS


피날레에 댕댕이처럼 박수를 치며 뛰어나오는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Simon Porte Jacquemus)의 쾌활함. 그의 옷이 프랑스 남부의 햇살이 그대로 시각화된 다채로운 모습이듯, 그 또한 긍정적인 온건함을 풍기는 디자이너다. 윈드 브레이커나 운동화를 주로 신고 나타나는 편인 그는 쇼를 찾은 이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인다. 소셜미디어 세대답게 인스타그램을 직접 관리하며, 남자친구와의 셀카도 브랜드 계정에 과감히 올리는 진정한 이 시대의 만능 디자이너!



JACQUEMUS 2023 FW, JACQUEMUS 2023 SS

ⓒvogue.com

JACQUEMUS 2022 FW, JACQUEMUS 2021 SS






그 자체로 러버보이, CHARLES JEFFREY LOVERBOY


만화 캐릭터가 튀어나온 듯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의 소유자 CHARLES JEFFREY LOVERBOY. 그를 표현하자면 ‘해맑은 빌런’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이돌 의상으로 자주 쓰인 ‘귀 달린 모자’나 ‘시선이 따라오는 그래픽’처럼 남다른 발상을 담아낸 옷들은 아래 사진만 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 퀴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며 사회적 관습에 도전하는 그의 매 컬렉션은 더 자유로운 자기 자신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피날레에서 웃음 머금은 얼굴로 손 키스를 날리는 이 러버보이, 정말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CHARLES JEFFREY LOVERBOY 2024 SS, CHARLES JEFFREY LOVERBOY 2023 FW

ⓒvogue.com

CHARLES JEFFREY LOVERBOY 2020 FW, CHARLES JEFFREY LOVERBOY 2018 SS







내향인의 인사법, JW ANDERSON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이 JW ANDERSON과 LOEWE의 피날레에서 인사하는 순간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간다. 주로 손을 주머니에 넣은 모습으로, 급한 발걸음에서 후딱 인사하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는데.. 어쩐지 같은 내향인으로서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조나단 앤더슨의 MBTI는 ISFP라고..) 피날레에서 쇼의 화려한 의상을 만든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주로 무난한 스웨터, 청바지, 첼시 부츠 그리고 브레이슬릿을 착용한 모습. 몇 시즌 내에 같은 아이템이 몇 번이나 눈에 띄는 걸 보면 좋아하는 아이템은 마르고 닳도록 입는 타입임은 분명하다.


JW ANDERSON 2024 SS, LOEWE 2024 SS

JW ANDERSON 2024 RESORT, JW ANDERSON 2023 FW

ⓒvogue.com

JW ANDERSON 2023 RTW, JW ANDERSON 2023 RESORT






얼굴이 패션이다, Charles de Vilmorin


처음엔 모델인 줄 알았다. 아니다, 디자이너였다. 바로 수려한 외모의 디자이너 샤를 드 빌모랭(Charles de Vilmorin) 이야기다.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의 21세기 버전, 젊은 천재 디자이너 등의 수식어를 지닌 그가 지금 파리에서 가장 핫한 디자이너 중 한 명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 최연소로 Rochas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기도 했던 이 젊디젊은 디자이너의 미래를 기대해 보자.



Charles de Vilmorin 2023 FW COUTURE, Rochas 2023 SS

ⓒvogue.com

Rochas 2023 FW, Rochas 2022 SS

ⓒinstagram.com





새로운 남성성을 제시한 Hedi Slimane


모델들의 워킹이 끝나는 순간 키 크고 마른 남자가 등장한다. 바로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의 이야기다. 요즘은 CELINE를 지휘하는 그야말로 한결같은 스타일의 디자이너다. 스키니 진의 시대가 가건 오건 꿋꿋이 함께 해왔으니 말이다. 칼 라거펠트가 에디 슬리먼의 스키니진 핏을 보고 고령의 나이에 다이어트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근육질일수록 멋지고 ‘남성적’이라고 여겨지던 시대에 어깨 선을 좁히고, 몸매를 감싸는 옷의 라인을 줄였다. 그렇게 새로운, 이상적인 남성의 몸을 제시한 것이다. 장담한다. 그의 옷을 입기 위해 살을 뺀 남성이 칼 라거펠트뿐만은 아닐 테다.



CELINE 2019 AW, SAINT LAURENT 2015 FW

SAINT LAURENT 2014 FW, SAINT LAURENT 2013 FW






교장 선생님다운 푸근함, Walter Van Beirendonck


앤트 워프 식스의 멤버 중 한 명이자 패션 스쿨 앤트 워프의 교장 선생님이었던 월터 반 베이렌동크(Walter Van Beirendonck). 쇼 피날레에서 화려한 색감과 뚜렷한 메시지의 그래픽이 그려진 자신의 옷을 입고 모두에게 손을 흔드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브랜드의 상징 그 자체.



Walter Van Beirendonck 2023 SS, Walter Van Beirendonck 2022 FW

Walter Van Beirendonck 2019 SS, Walter Van Beirendonck 2011 SS

ⓒvogue.com






커플 룩의 교과서, LEMAIRE


LEMAIRE를 2014년부터 함께 이끌고 있는 사라 린 트란(Sarah Linh Tran)과 크리스토퍼 르메르(Christophe Lemaire). 서로에게 뮤즈가 되어 주며, 공유한 생각들을 르메르의 옷으로 만들어 내는 이들은 한때 연인이었지만 지금은 동업 파트너라고. 데일리로 따라 입고 싶어지는 스타일의 정석인 사라 린 트란의 스타일은 자연스러운 세련미가 돋보인다. 같은 컬러 팔레트 내에서 한 착장을 완성하지만, 다양한 소재와 실루엣에 중점을 두어 전혀 심심해 보이지 않는 것이 그 특징. 둘이 함께 피날레에 등장해 그야말로 완벽하게 LEMAIRE를 소화한 모습을 볼 때면 진정 자신들이 입고 싶은 옷을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LEMAIRE 2024 SS, LEMAIRE 2023 FW

ⓒvogue.com

LEMAIRE 2020 FW, LEMAIRE 2020 FW





함께라서 완성되는, VAQUERA


사실 이 글은 VAQUERA의 피날레를 보고서 쓰기로 마음먹었다. 언젠가 런웨이 사진들을 보던 중 이 뉴욕 기반 듀오가 매 컬렉션 피날레에 입은 착장이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 주로 컬렉션 착장을 입고 등장하는 이들은 무채색을 주로 활용하되, 거기에 ‘PURE’, ‘I LOVE PARIS’, ‘FAMOUS SOON’같은 그래픽이 적힌 위트 있는 티셔츠를 입는다. 말 그대로 뺏어 입고 싶은 룩! (물론 에디터의 아주 주관적인 취향이다.) 특히 쇼 영상에서 박수갈채를 즐기며 뿌듯한 얼굴로 런웨이를 걷는 이들의 모습을 보다 한 문구가 절로 떠올랐다. 열심히 일한 자 즐겨라!



VAQUERA 2024 SS, VAQUERA 2023 FW

ⓒvogue.com

VAQUERA 2023 SS, VAQUERA 2022 SS





두 손 꼭 잡고, CHOPOVA LOWENA


아직 런웨이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그 이름만은 확실하게 알리고 있는 런던 기반의 브랜드 CHOPOVA LOWENA. 두 디자이너, 엠마 쇼포바(Emma Chopova)와 로라 로웨나(Laura Lowena)가 센트럴 세인트 마틴 학사 1학년 때 만나 설립했다. 자신들이 만든 옷을 입고 엠마가 오른쪽에, 로라가 왼쪽에 서서 두 손을 꼭 잡고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절로 이들을 응원하게 된다.



ⓒvogue.com

CHOPOVA LOWENA 2024 SS, CHOPOVA LOWENA 2023 SS






고수는 티 내지 않는 법, Miuccia Prada와 Raf Simons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는 운영을 끝냈지만 PRADA에서 만나볼 수 있는 라프 시몬스의 모습. 그것도 미우치아 프라다와 함께. 둘이 함께 공동 디렉터로 컬렉션을 만드는 세상이라니! 쇼 마지막에 인사를 건네는 두 패션 거장의 모습은 마치 진정한 어른을 마주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함과 여유 덕분인지 피날레에서 과하지 않되 포인트가 되는 착장을 선보인다. 라프 시몬스(Raf Simons)는 심플한 올블랙의 스웨터와 팬츠로 편안한 룩을 추구하는 반면 미우치아 여사는 풀 스커트를 즐겨 입으며 우아함을 드러낸다.



PRADA 2024 SS, PRADA 2023 FW RTW

PRADA 2023 FW, PRADA 2023 SS RTW

ⓒvogue.com

PRADA 2023 SS, PRADA 2022 FW RTW





내 옷 입을 거면 이렇게 입도록, RICK OWENS


릭 오웬스가 쇼의 피날레에 입고 나오는 룩은 일종의 교과서다. 그러니까 자신의 옷은 이렇게 입는 것이라는 선언 같은 거랄까. 온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표정에 플랫폼 하이힐 슈즈를 신은 릭의 카리스마. 심지어 포그 머신 속을 걸어 나오는 그의 실루엣은 멀리서 봐도 누군지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매 시즌 똑같은 걸 보여주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지금까지의 컬렉션들을 쭉 나열해서 보면 그 스타일의 변화가 뚜렷하게 감지된다. 거기서 릭의 취향 변화가 보이기도 하는데, 그가 피날레에서 입어 왔던 옷들만 봐도 브랜드의 흐름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RICK OWENS 2024 SS RTW, RICK OWENS 2024 SS

RICK OWENS 2023 FW, RICK OWENS 2023 SS

ⓒvogue.com

RICK OWENS 2022 FW, RICK OWENS 2020 SS







디자이너를 닮은 옷


지금까지 쇼 피날레에 선 디자이너들의 모습을 만나봤다. 물론 모든 디자이너가 런웨이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나 COMME des GARCONS의 레이 가와쿠보(Rei Kawakubo)처럼 말이다. 나타나는 것이 그렇듯 나타나지 않는 것 또한 그들의 옷에 관해 무언가를 말해준다.

결국 창작물은 그것을 만드는 사람을 닮을 수밖에 없으니. 이 이야기가 흥미로웠다면 앞으로 쇼를 볼 때 디자이너가 등장하는 순간을 눈여겨 봐주길.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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