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es: Fashion and Class
현대 사회에서 ‘계급’은 존재할까?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옷차림에 영향을 미칠까.
-빅토리아: 우리도 노동자 계급이예요.
-베컴: 솔직히 말해.
-빅토리아: 솔직히 말하고 있는 거야.
얼마 전 화제가 된 영상이다. 넷플릭스 <베컴(Beckham)>시리즈 중 한 장면으로, 세계적인 축구 스타 베컴과 패션 디자이너 빅토리아 베컴이 서로 가벼운 논쟁을 하는 모습.
평범한 서민 집안에서 자수성가한 베컴과는 달리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빅토리아 베컴이 자신을 노동자 계급이라고 말한 것이 이 영상의 주 포인트다. 이는 대중의 흥분 섞인 반응을 촉발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빅토리아는 그걸 이용해서 이미지메이킹을 하려고 해 더 화제가 됐다. “우리 아빠는 전에 롤스로이드 몰았어”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직접 팔기도 했으니.
빅토리아 베컴(VICTORIA BECKHAM) 사이트에서 한화 약 19만원 (150불)에 판매 중인 티셔츠.
이 사례를 통해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다. 사람마다 계급을 인식하는 게 상대적이라는 것. 누군가에게는 80년대에 롤스로이드를 타는 게 무슨 노동자 계급이냐 하겠지만, 빅토리아 베컴 딴에는 귀족이 아닌 돈 많은 평민 계급이라 또래 상류층들에게 무시를 당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기도 했을 터. 여전히 왕실이 있는 영국 사회의 계급적인 배경을 고려해 보면 빅토리아가 자신을 노동자 계급으로 정체화한 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더 나아가 같은 맥락에 있는 네포 베이비(Nepo Baby)란 단어를 들어봤는가. 네포 베이비는 족벌주의를 뜻하는 영어 단어 네포티즘(nepotism)과 아기(baby)의 합성어로 미국판 '금수저' 아이를 가리킨다. 이 단어에는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이뤘다기보다는 유명인인 부모 덕으로 미디어에 노출되고 상업적 성공을 이뤘다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함께한다.
“내가 네포 베이빈데, 그래서 뭐?”
백 마디 말보다 티셔츠를 택한 헤일리 비버를 보라. 배우이자 감독인 스티븐 볼드윈의 딸인 그는 ‘Nepo Baby’라고 적힌 옷을 입고 쿨하게 ‘인정’하는 모습. 물론 모두가 이런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네포 베이비들은 이런 논란에 대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성공한 것이라며 나름의 억울함(?)을 표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네포 베이비 스타, 조 크라비츠(Zoë Kravitz), 릴리 로즈 뎁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한국의 금수저, 흙수저 같은 용어로 대표되는 수저 계급론은 여전히 인터넷에서 더 나아가 실제 현실에서도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리 잡은 용어가 되었다. 그러니 확실히 말할 수 있겠다. 우리도 명백하게 존재하는 계급 속에서 자유롭지 않다.
계급에 영향을 많이 받는 분야 중 하나인 패션. 옷이라는 일상적인 매개물을 통해, 그 어떤 예술 장르보다도 친숙하면서도 사회와 가까이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에겐 그저 몸을 보호하는 수단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겐 미적 판단의 도구로 기능하니 말이다.
한편, 패션계에서 쓰이는 ‘오뜨 꾸뛰르(Haute Couture)’라는 용어도 계급을 반영한 것이다. 그 단어 자체를 살펴보면 엘리트, 상류층을 뜻하는 ‘haute’와 맞춤복이라는 뜻의 ‘couture’가 결합한 말. 19세기 당시 오뜨 꾸뛰르라는 고급 맞춤복을 입는 사람들은 당연히 상류층일 수밖에 없었다. 상류 계층을 위한 고급 맞춤복에서 시작한 만큼 그 명맥을 이어 일부 브랜드들에서만 쇼를 열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자격요건을 갖춘 브랜드만이 파리에서 오뜨 꾸뛰르 컬렉션을 공개할 수 있다.
CHANEL 2022 FW Haute Couture, DIOR 2023 FW Haute Couture
그 자격은 이렇다. 개인 맞춤 제작과 동시에 프랑스 파리에 20명 이상의 직원을 둔 전속 워크숍이 있어야 할 것, 일 년에 두 번 이상(1월/7월 파리)의 컬렉션을 열 때, 평상복과 이브닝 가운 의상을 포함할 것. 무엇보다 오뜨 꾸뛰르 협회 소속의 멤버일 것.
CHANEL Haute Couture Studio
과거에는 옷으로 명백하게 계급이 드러났다. 그러나 서구에서 프랑스 혁명이 열린 후, 공고하던 ‘계급’의 사회가 무너지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선언되었다. 허나 모두의 평등이란 말은 사실상 자본주의 하에선 불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불평등은 여전히 존재하고 없앨 수도 없으니.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은 본능적으로 끊임없이 더 나은 삶, 계급을 갈망하니까.
부유해 보이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이 패션계에 드러난 사례는, 드러내지 않는 로고를 내세워 과시하지 않는 우아함을 추구하는 올드머니 트렌드가 있다.
올드 머니(Old Money)란 내가 직접 번 뉴 머니(New Money)가 아닌 상속된 재산을 말한다. 올드 머니룩은, 그러한 올드 머니를 가진 사람들이 입는 옷을 말한다. 정확히는 미국과 유럽에서 부를 대대로 물려받은 전통적인 상류층 옷 스타일을 의미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스타일이 트렌드가 되었다는 건 올드 머니의 정체성을 옷차림으로는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 하고 싶은 욕망’이 그 기저에 깔려있다는 평가된다는 점에서 주체가 모호한 트렌드다. 하지만 진정한 올드머니 룩은 단지 옷이 아니라, 입은 이의 체형과 분위기 등으로 완성될 수밖에 없다. 이때부터는 옷과 같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는 욕망하는 대상을 온전히 따라 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그럼 우리는 어떤 잣대로 자신과 타인을 평가할 수 있을까?
"취향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모든 것, 즉 인간과 사물 그리고 인간이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할 수 있는 모든 것의 기준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스스로를 구분하며, 다른 사람들에 의해 구분된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취향이 한 사람의 계급에 대해 말해준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취향이란 그 사람이 속한 사회 집단의 속성에 영향을 받으며 생성되는 것으로 이를 '아비투스(Habitus)'라고 일컫는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아비투스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대손손 내려온 ‘찐 부자’와 ‘벼락부자’와의 차이가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부르디외는 오랜 기간 축적되어 형성된 아비투스야말로 그 사람의 계급을 보여준다고 답할 것이다.
이를테면 누군가는 태어난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주어진 고급 ‘문화 자본(Cultural Capital)’ 속에서 자신의 취향을 확고하게 형성해나가며 계급을 공고히 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그런 문화 자본을 누리는 것 자체가 사치일 수 있다. 이게 반복되면서 문화의 ‘빈익빈 부익부’는 공고화된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회적 분류 체계 속에서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취향은 그림이나 음악을 즐기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입고, 먹고, 타는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유효하니 말이다. (물론, 현대인들은 취향의 폭이 넓고 다양한데다 혼재된 측면도 있어서, 취향만으로 개인의 계급 수준을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말이다.)
고급 취미로 꼽히는 승마, 테니스, 골프 관련 스포츠 웨어. 그 안에도 계급적 코드가 들어가 있다. 승마가 과거 귀족계층의 전유물이었다는 걸 고려하면 Hermès같은 숱한 럭셔리 브랜드들이 승마용품을 시작으로 브랜드를 전개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 게다가 애초에 스포츠(Sport)라는 명사 자체가 귀족 계급의 사냥에서 유래된 말이기도 하다. 19세기 중반까지는 스포츠맨(Sportman)이 사냥꾼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Hermès 2023 FW
로고를 장식한 말과 사륜마차만 봐도 알 수 있듯, Hermès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승마다.
승마 경기의 전통을 되살리고자 ‘소 에르메스(Saut Hermes)’ 행사를 개최해 온 Hermès는 1837년부터 승마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승마가 럭셔리 브랜드에 성공만을 가져다준 건 아니다. 말을 타고 런웨이를 달려서 Hermès를 따라 한다는 조롱을 받았던 CHANEL의 2022 SS 컬렉션이 있으니. 당시 쇼에서 말을 탄 모델은 Hermès의 상징과도 같은 ‘켈리 백’ 속 그 캘리의 손녀였다. 그야말로 Hermès의 상징을 데려와 CHANEL의 런웨이에 세운 셈.
CHANEL 2022 SS, 승마 챔피언들이 경기를 펼치는 소 에르메스(The Saut Hermès)
말 안장(새들, Saddle)은 말의 등에 얹어서 사람이 타기 쉽게 만든 기구로, Hermès의 대표적인 승마 아이템이다. 새들에 쓰인 ‘새들 스티치’는 에르메스의 뛰어난 가죽 세공 능력의 정수 그 자체.
Hermès Saddle
패션계에 많은 영감을 주고 있는 테니스는 발상지인 유럽에서 확실히 계급성이 두드러지는 스포츠다. 처음에는 아무나 못하는 귀족의 스포츠에서 왕실과 주변 친척들이 즐기다가 상류층이 즐기게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엄격한 규칙과 예절을 지키면서 해야하는 건 필수.
테니스 스커트를 런웨이에 올린 MIU MIU는 ‘테니스 클럽’이란 이름으로 단 하루 동안 세계에서 가장 패셔너블한 클럽을 열기도 했다.
MIU MIU 2022 AW
누군가에겐 테니스를 시작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킬 CHANEL 로고가 새겨진 테니스 라켓.
비용이 많이 드는 스포츠라는 인식이 있는 골프. 올해 LOUIS VUITTON이 출시한 골프백의 가격은 무려 12만 9000달러(약 1억7082만원)이었다.
약 1억7082만원(12만9000달러)의 LOUIS VUITTON 골프백
생각해 보자. 럭셔리 브랜드들이 축구복이나 농구복을 만드는 걸 본 적 있는가. 애초에 귀족의 스포츠로 시작하긴 했지만, 이들이 대표적인 영국의 노동 계층의 문화가 담긴 축구복을 만드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그런 점에서 럭셔리 패션은 여전히 기존의 고착화된 계급 속에서 머무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영국 서민들의 서브컬처에 영감을 받아 다양한 성별, 연령을 런웨이에 세우는 Martine Rose는 축구 유니폼을 자신의 해석을 더해 만들어 냈다.
애초에 진입 장벽이 높은 승마, 테니스, 골프와는 다르게 축구 선수로 성공하면 계층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대가 존재하는 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사회구조를 답습하여 재생산하는 패션도 있지만, 하위문화를 표방해 위계질서에 저항하는 패션도 있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차브(Chav) 문화가 있다. 체크 패턴을 다양하게 변형해 오며 진화해 온 BURBERRY는 누가 봐도 고급 패션을 지향하는 브랜드다.
그런데 영국의 차브족, 소위 ‘양아치’로 불리는 젊은이들이 즐겨 입는 브랜드가 되면서 큰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게다가 이들이 디자인만 비슷한 가품을 주로 착용한 탓에 이득을 보지도 못했다고. 물론 BURBERRY 입장에서는 참으로 고민되는 일이었겠으나, 한편으로는 이런 하이 브랜드를 타겟 층과는 전혀 거리가 먼 계층이 소비하는 걸 보는 데서 오는 전복적인 카타르시스가 분명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패션계에서는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를 필두로 기존 옷에 담긴 계급적 코드를 전복하려는 시도가 계속되어 왔다. 하이패션이라는 형식에 하위문화를 담은 온 VETEMENTS과 BALENCIAGA. 기존에 흔히 볼 수 있는 일상과 누구나 사용할 법한 물건의 형식을 취해서 비싼 값을 붙여 팔 수 있는 게 바로 그의 재주라고 할 수 있겠다.
BALENCIAGA가 2024 SS으로 내놓은 타월 스커트는 흔히 볼 수 있는 수건을 둘러놓은 것 같은 디자인. 가격은 1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스웨덴 가구 브랜드 ‘IKEA’가 이를 조롱하는 듯 패러디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몇 년 전, 영감을 찾던 일본 브랜드 N. Hoolywood는 일명 ‘노숙자 패션’을 런웨이에 올려놓기에 이르렀다. 정작 쇼에 올라온 어떤 피스도 살 수 없는 이들이 영감이 된 쇼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아이러니이자 타인의 삶을 구경거리로 소비했다는 점에서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침울한 표정으로 무대를 걷는 모델들의 표정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으며, 재킷에 적힌 ‘Survive’는 그저 공허한 외침으로 들릴 뿐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가고 싶은 욕망의 민낯을 그려낸 영화 <리플리>은 계급에 관한 이야기다. 본인의 초라한 계급적 현실을 숨기고 남의 멋져 보이는 현실을 훔쳐 계급 상승을 이루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요원해 보인다. 현대사회에는 더 이상 신분제도와 같은 계급 구분이 없지만, 그럼에도 계급적인 코드는 우리가 입는 옷에 여전히 녹아 있다. 이 영화에서도 각 인물들이 입은 옷은 그들의 계급적 욕망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 <리플리>
허나 과거에는 계급이 넘지 못할 선이었다면 지금은 환경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우리는 각자의 취향이나 관심사에 따라 자신이 추구하는 스타일을 선택하지 않는가. 어쩌면 계급이라는 틀에 스타일을 가두는 건 너무나 뻔한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옷을 잘 입는다는 건 그저 자신의 감각과 역할, 기분을 전달하는데 충실하면 되는 것이 아닐지.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