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Baechu
Interview: Baechu
그의 카메라 안에는 뉴진스, 이센스, T1 페이커의 얼굴이 있다.
2000년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에드워드 양 감독의 유작 <하나 그리고 둘> 영화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아빠로부터 카메라를 선물 받은 주인공 8살 소년 양양. 양양의 사진은 남들과 조금 다릅니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삶의 뒷면을 렌즈로 들여다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앞만 보고 있으니, 뒤는 볼 수 없잖아요. 그러니 진실의 반만 보는 거죠.” 그렇게 꼬마 양양은 스크린 속에서 늘 카메라를 손에 쥐고 무언가를 담아냅니다.
<하나 그리고 둘> 영화 속 양양이 사진을 찍는 모습
젠터뷰 네 번째 주인공은 ‘배추’ 네이밍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지훈 포토그래퍼. 우리가 놓치는 특별한 순간을 뷰파인더 안에 하나의 피사체로 기록하는 사람이기도 한데요, ‘사진가 배추’이자 ‘인간 강지훈’이 바라보는 삶의 뒷면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는지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사진 찍고 있는 배추입니다.
우선, 사진전을 많이 방문했습니다. 그중에서 기억 남는 건 도쿄도 사진 미술관에서 감상한 신진작가 전이었는데요. 작가들의 나이가 결코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에 대한 순수한 감정이 느껴졌달까요? 아, 이렇게 사진을 오롯이 사랑할 수 있구나. 다시 한번 깨달았죠.
덧) 일본을 방문할 계획이라면 롯폰기 국립 신미술관과 에비스에 있는 도쿄도 사진 미술관을 강추합니다.
요시유키 오쿠야마 (Yoshiyuki Okuyama). 셔터를 무심하게 툭툭 누른 듯, 편안한 사진이라 좋아합니다. 너무 화려하지 않은 일상의 순간을 담아서 자주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작가가 개인 작업만 하는 건 아니고 상업사진도 찍고, 필름도 만들고, 영역이 다양해서 사진가로서도 많은 영감을 주는 사람이에요.
요시유키 오쿠야마의 포카리 스웨트 브랜드 광고 이미지
물론, 모든 촬영이 뜻깊었지만, 그중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T1 페이커가 기억에 남네요. 은퇴하기 전에 꼭 찍어보고 싶던 선수였거든요. 타이밍 좋게 제가 촬영한 유니폼을 입고 23년 롤드컵을 우승해서 사진이 많이 알려진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T1 친필 싸인 티셔츠와 배추 님
그룹 뉴진스
처음부터 잘 찍겠다는 생각을 과감히 접으세요. 비싼 장비보다도 중요한 것이 자신만의 시선을 갖추는 것. 그러니 무엇보다 많이 찍어보는 게 중요합니다.
인물 사진을 찍다 보면 종종 혼날 때가 있어요. 특히 남성분들보다는 여성분들께 신랄한 피드백을 받을 때가 많죠. 저는 무방비 상태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포착하니까…(웃음) 그래서 아무런 의견 없이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만 하는 풍경의 사진을 찍는 게 좀 더 좋아요.
요리사가 집에 오면 요리를 잘 안 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저도 사진을 많이 찍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요. 이제는 찍어줄 준비가 되었습니다. 찍어줄 사람만 찾으면 되겠네요.
거실에 위치한 루이스폴센(Louis Poulsen) ph5 조명
스케이트보드 크루와 떠난 유럽투어가 기억에 남아요. 아마 2015년 정도였던 것 같아요. 그 친구들의 라이프스타일이나 마인드 셋이 특히나 인상 깊었는데, ‘내가 유럽에 왔으니 어디 어디 가고 무엇을 즐겨야지’ 식의 강박적인 여행이 아니었거든요. 서울에서 살던 대로, 늦잠도 늘어지게 자고,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에 귀를 기울이면서 여유를 누릴 줄 아는 자세가 기억에 남아요. 아, 아프리카 여행도 기억에 남고요.
아프리카 사람들의 옷을 대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어요. 패션이라는 생각보다는 삶의 기본적인 요소 중 하나라는 것으로 와닿았던 것 같아요.
‘한순간의 꿈(A fleeting ruya)’ 아프리카 케냐와 이집트에서 사진가 배추의 시선으로 담은 사진.
여행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저는 무조건 오래 입을 수 있는,근본 있는 옷을 사요. 쇼핑을 애초에 많이 안 하기도 하지만요. 그치만 오해는 말아주세요. 안 꾸미는 건 아니니까요.
VISVIM. 제 젠테 위시리스트도 모두 VISVIM 아이템으로만 채워져 있어요.
VISVIM 아이템으로 가득 찬 배추님의 젠테 위시리스트, VISVIM 모자를 쓴 포토그래퍼 배추
2008년에 클럽에서 일하면서 사진을 처음 찍기 시작했어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홍대에 ‘사부’라는 작은 클럽이 있었거든요. 거기서 티켓도 팔고 바에서 일도 하다가 같이 일하는 형이 카메라를 갖고 있었는데, 그걸 만지기 시작하면서 사진에 눈을 뜨게 된 것 같아요.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였으니, 사진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서 자유로운 사진들을 많이 찍기 시작했죠.
다시 태어나도 망설임 없이 포토그래퍼라는 직업을 선택할 거예요. 일단 재밌어요.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카메라만 들고 다니면 일상 속 모든 순간을 작업으로 승화시킬 수 있거든요.
중꺽그마.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 꾸준하게 한 길을 쭉 나아가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보다 확실한 건 없는 것 같아요.
못 만났던 친구들을 몰아서 만나요. 제가 화이트 와인을 좋아하는데, 친구들이랑 두런두런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술 한잔하는 거죠.
재구네 닭발, 신당 중앙시장, (닭발 맛집) 우정. 이 세 곳을 추천드릴게요.
2023년을 돌아보면, 우선 제가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면서 목표로 했던 바를 많이 이룬 한 해 같습니다. 개인전도 열었고, 사진집도 제작했고요. 그래서 올해는 쉴 틈 없이 달려왔다면, 2024년도에는 좀 더 흘러가는 대로, 시간에 몸을 맡기면서 살아보고 싶어요. 개인 작업하면서 자유롭고 또 여유롭게.
20살 때 별명이었던 ‘배추’. 단순히 파마머리라서 친구들이 제게 붙여준 이름이었지만 정감이 가고 임팩트가 있어서 한 번 들으면 잘 안 잊혀져 활동명으로 여태껏 사용하고 있는데요. ‘배추’라는 단어의 어감부터 장난스러우면서 유쾌하잖아요. 이렇게 이름처럼 살고 싶어요. 주변인들과 상생하며 재밌고 즐겁게.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