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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Feb 02. 2024

아메리칸 빈티지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일본 패션계의 작은 아버지 니고와 휴먼 메이드(HUMAN MADE)

Brand LAB: HUMAN MADE

아메리칸 빈티지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HUMAN MADE. 벌써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일본 패션계의 살아있는 전설, 니고(Nigo)가 그 설립자다.


©highsnobiety.com





목욕하던 유인원, 인간이 되다


2021년, KENZO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되며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이한 니고. 일본 스트리트 웨어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을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한때 전 세계적으로 붐을 일으켰던 원숭이 얼굴, BAPE(A BATHING APE)의 설계자니까.



BAPE 디렉터 시절의 니고 ©ssense.com




힙합과 펑크, 스케이트 보드 등 서브컬처의 강한 에너지에 니고만의 미감을 더해 재치있게 풀어낸 BAPE. 그 인기 역시 대단했다. 2024년의 우리가 Supreme에 열광하는 것만큼이나 파급력이 거셌다. 칸예 웨스트와 퍼렐 윌리엄스, 에이셉 라키 등 2000년대 초를 주름잡던 탑 힙합 뮤지션들이 주 고객이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또한 퍼렐은 이런 니고의 감각에 절대적 신뢰를 보이며 다양한 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그 누구라도 솟구치는 BAPE의 기세에 기꺼이 휩쓸릴 수 밖에.



BAPE 2008 LOOKBOOK에 등장한 칸예와 퍼렐 ©hypebeast.com
2007년 출시한 BAPE와 칸예의 협업 스니커즈, BAPE의 시그니처 카모 재킷을 착용한 에이셉 라키 ©kickgame.com, ©hypebeast.com
퍼렐과 니고의 브랜드 BILLIONAIRE BOYS CLUB ©bbcicecream.com




하지만 너무 큰 명성은 가끔 부작용을 초래하는 법. BAPE의 엄청난 인기는 곧 폭발적인 수요로 이어졌고, 그 수요를 모두 충족시키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또한 브랜드 내에서도 희소성과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생산 자체를 강하게 제한했다는 후문. 수요보다 공급이 한참 모자란 지경에 이른 것이다.

결과는 뻔했다. 곧 수많은 가품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BAPE의 의상 구성이 대체로 재현이 쉬운 단순한 디자인과 카모 패턴, 로고 프린트 위주였기에 진가품을 구별하기 어려운 것 역시 큰 문제였다.



BAPE 진가품 구별 팁을 알려주는 콘텐츠들 ©dypeapp.com ©유튜브 @SHOWME21632, @FRESHFROMTHEFLEA





결국 니고는 서서히 BAPE로부터 떠날 채비를 한다. 하지만 패션에 대한 애착이 상당했던 그는 2010년, 새로운 브랜드인 HUMAN MADE를 설립하여 새출발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1년, BAPE의 회사 지분 90%를 홍콩 회사에 매각한 뒤, HUMAN MADE의 운영에 본격적으로 집중하기 시작한다. 목욕하던 원숭이는(A BATHING APE) 그렇게, 인간(HUMAN MADE)으로 진화하게 된다.



HUMAN MADE 2012 SS ©dazeddigital.com








그렇게 패션은 또 한 번 진화한다


이미 BAPE를 통해 스트리트 웨어의 하이엔드화를 꿈꿨던 니고. HUMAN MADE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을 따르는 듯하다.  그러나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순 없었기에, 그는 오랜 경험으로부터 획득한 나름의 노하우를 이 새로운 터전에 가감 없이 투영해 나간다.



파일럿 장비에서 영감을 받은 시즌 27 (2024 SS) ©hypebeast.com


파일럿 장비에서 영감을 받은 시즌 27 컬렉션. 투박한 파일럿 재킷이 은은한 컬러와 장난스러운 패치를 만나 매력적인 일상복으로 다시 태어난 모습이다.

자, 그럼 여기서 보충 설명 들어간다! HUMAN MADE는 보통의 브랜드처럼 한 분기의 컬렉션을 통째로 공개하지 않고 분할시켜 드롭하는 방식을 취한다. Supreme과 같은 타 스트리트 브랜드 처럼 한 시즌에 약 두 세 번의 드롭이 연속된다 보면 된다. 때문에 같은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무드의 제품군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점 미리 숙지해 둘 것.




동물 그래픽이 인상적인 시즌 26 (2023 FW)


벌목꾼을 모티브로 한 시즌 26의 두번째 드롭 ©hypebeast.com




BAPE와 HUMAN MADE를 비교하는 것은 마치 Yeezy의 신발을 빈티지 Adidas 스탠 스미스와 비교하는 것과 같다.
(FLEXDOG, 2023년 1월)


니고는 HUMAN MADE를 통해 보다 성숙해진 시선으로 스트리트 패션을 대하려 한다. 신념과 노력, 거기에 시간이 더해져야만 획득될 수 있는 장인정신을 앞세워서 말이다. 또한 BAPE 시절엔 서브컬처가 메인 테마였다면, HUMAN MADE에선 60년대 빈티지의 매력을 계승한다. 미국의 작업복, 후디와 데님, 스타디움 재킷과 같은 올드스쿨 타입을 지지하며 트렌드와는 정반대의 길을 추구하기로 다짐한 것이다.


시즌 25 (2023 SS)
스톰 카우보이 데님(Storm Cowboy Denim) 컬렉션 ©hypebeast.com
시즌 23 (2022 SS) ©endclothing.com
사냥을 주제로 한 캡슐 컬렉션 ©pausemag.co.uk



이로서 HUMAN MADE는 스트리트 웨어만의 개성과 편안함, 한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빈티지 취향, 이에 더해 일본의 타협 없는 장인정신까지 전부 취하겠다는 니고의 욕망을 성실히 대변한다. 90년대 초반부터 패션 외길을 걸어온 그의 소망이 전부 반영된 집약체인 것이다.



일본 전통 문화를 주제로 한 캡슐 컬렉션 ©hypebeast.com



하지만 그 기저엔 언제나 창작의 근본, 즉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들겠다는 개인의 소망이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다. 자신과 같은 세계의 모든 크리에이터를 위해, 그리고 그들의 미래를 위해, 이상적인 패션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려 한다.

Gears For Futuristic Teenagers. HUMAN MADE의 슬로건은 이처럼 앞으로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청춘들에게 패션으로 접속해 진실된 소통을 이어가겠다는 니고의 선언이나 다름없다.



미래는 과거에 있다는 컨셉으로 진행된 PAST MADE 컬렉션 ©hypebeast.com







니고의 영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나는 내 모든 취미를 일로 바꿉니다.” (System 매거진, 19호)


하나의 브랜드도 성공시키기 힘든 세상. 무려 두 브랜드를 성공 궤도에 올려놓고도 그걸로 모자라 풍성한 협업까지 감행해 우릴 충만케 하는 니고. 그의 지치지 않는 하는 영감은 대체 어디에서 샘솟는 것일까?


여러 인터뷰에서 서브컬처에 대한 사랑을 꾸준히 밝혀온 니고. 그의 작품에서 풍기는 스케이트 보드 문화와 스트리트 아트에 대한 애정은 그가 문화적 영감에 한껏 심취해 있음을 입증한다.


그러나 하나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음악이다.  비틀즈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는 그는 디자이너인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음반 프로듀서라는 부캐까지 착실히 육성 중이다. Pusha T와 Kid Cudi의 음반 제작은 물론 2005에 결성한 데리야키 보이즈(Teriyaki Boyz)에선 DJ로도 활약, 2022년에는 개인 음반까지 발매했다. 음악을 이해하지 않고는 패션을 이해할 수 없다는 그의 철학이 그대로 반영된 행보다.


칸예와 데리야키 보이즈 ©sabukaru.online
래퍼 릴 우지 버트 X HUMAN MADE
아티스트 카우스 X HUMAN MADE ©hypebeast.com



또한 그는 알아주는 빈티지 매니아이기도 하다. 빈티지 수집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탓에, 그의 아틀리에 지하에 위치한 아카이브 룸엔 온갖 희귀한 물품들로 가득하다고. 100년 전에 만들어진 최초의 Levi‘s 데님 재킷까지 있단다!



©complex.com
니고의 아카이브 룸에 있는 수집품들 ©system-magazine.com



그의 이러한 빈티지 집착(?)은 HUMAN MADE의 의상에서도 발견된다. 빈티지 티셔츠에서 자주 목격되는 싱글 스티치 방식을 적용한 뉴 티셔츠나, Levi's 트러커 재킷 1세대의 빅 포켓 디자인에 현대적인 프린팅과 자수 디테일을 접목한 것은 과거와 현재를 적절하게 믹스해 신선한 무드를 연출해 내는 니고만의 패션 화법이다.


시즌 26의 데님 재킷 (2023 FW) ©hypebeast.com






HUMAN MADE의 기발한 모험


HUMAN MADE하면 하트 로고. 그들은 COMME des GARCONS과 ami의 뒤를 잇는 하트 로고 플레이의 선두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친근한 매력이 물씬 풍기는 게 호불호가 없을 상이다.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로고 플레이에선 니고를 이길 자가 없다는 걸.



©humanmade.jp


이 러블리한 로고를 옷에서만 보기엔 너무 아까웠던 것일까. 니고의 컬렉터적 성향 때문인지, 예상치 못한 콜라보로 우리를 감탄하게 만드는 게 HUMAN MADE가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이다. 긴 말이 필요 없다. 일단 한 번 보시라.



©hypebeast.com



모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독특한 컨셉의 스토어를 차례로 오픈하며 고객에게 밀접하게 다가서려 한다. 브랜드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시부야의 ‘OFFLINE STORE’는 오래된 진료소를 리뉴얼 한 색다른 인테리어로, 오모테산도의 ‘HUMAN MADE GENERIC STORE’는 의류가 아닌 생필품 판매에 주력하는 드럭스토어 컨셉이다.

대체 국내엔 왜 스토어가 없냐며 울상을 짓고 있을 당신, 올해엔 HUMAN MADE를 위한 일본 투어를 계획해 보는 건 어떠신지.



오래된 진료소를 스토어로 리뉴얼한 ‘OFFLINE STORE’
옷보단 생필품을 주로 판매하는 ‘HUMAN MADE GENERIC STORE' ©hypebeast.com
©heddels.com



최근 HUMAN MADE에 찾아온 기쁜 소식. 그동안 비공식적인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던 퍼렐이 브랜드의 공식적인 어드바이저로 합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온 끈끈한 인연의 힘이 이번엔 어떤 시너지를 발휘하게 될 지, 패션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 중. 하지만 우려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마음껏 기대만 해도 된다. 니고의 올곧은 신념과 탁월한 미감, 게다가 이젠 든든한 조력자까지 얻었으니 이것이야 말로 천하무적이 아니겠는가. 간만에 펼쳐질 둘의 진한 브로맨스가 무척이나 반갑다. 그리고 부럽다.





Published by jentest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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