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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Feb 06. 2024

마르지엘라가 타비 슈즈를 선택한 이유

Stories: History of Tabi


Stories: History of Tabi

마르지엘라가 타비 슈즈를 선택한 이유





처음 타비 디자인을 본 건 몇 년 전 교토 여행에서였다. 어디를 가던 쇼핑할 곳을 찾아내고 마는 쇼핑 중독(!) 에디터는 당시 교토 기반 브랜드 SOU SOU 매장에 방문하게 된 것. 엄지발가락이 나누어진 특이한 디자인은 마음을 끌기에 충분했다.


다양한 패턴의 SOU SOU 타비 슈즈. ⓒsharing-kyoto.com



그때 사둔 알록달록한 디자인의 타비 양말들은 지금 잠시 옷장에서 기나긴 휴식기를 가지는 중이지만, 여전히 Maison Margiela의 아이코닉한 타비 부츠는 주기적으로 위시리스트 한자리를 차지하는 아이템이다. 독특하면서도 묘한 매력의 타비 슈즈.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우리의 곁으로 오게 되었는지 타비의 역사를 파헤쳐 본다.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너


타비라는 신발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인상을 떠올려 보자. 단순히 ‘이상하다’ 혹은 ‘특이하다’라고만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발가락이 갈라진 형태가 주는 동물적인 감각이 분명 있다. 오죽하면 타비를 두고 ‘족발 신발’이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타비 부츠는 독특한 실루엣 덕분에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nyulocal.com





어쩌다 발가락 사이에 신발을 끼우게 됐을까


많은 독자들이 ‘타비’하면 제일 먼저 Maison Margiela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사실 타비의 시작은 15세기 일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metmuseum.org, ⓒartsandculture.google.com


일본의 전통적인 끈 샌들과 함께 착용하는 타비 양말은 계급 사회의 상징이었다. 상류층은 금색과 보라색을 착용했고, 평민들은 파란색, 사무라이는 앞서 언급한 색상을 제외한 어떤 색상도 착용할 수 있었다. 엄지발가락이 분리된 디자인은 균형을 주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실제로 발가락이 나누어진 디자인은 더 민첩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고.



ⓒgrailed.com

일본 전통 타비 양말. 



그 후 끈 샌들과 함께 신었던 타비 양말은 20세기 무렵 고무의 수입과 함께 양말 밑창에 고무 솔을 더한 ‘지카타비(地下足袋)’가 되었고, 이것이 ‘Maison Margiela 타비’의 전신이 된다. 이 신발은 빠른 속도로 퍼지기 시작했고, 갈라진 발가락이 편안하고 움직임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노동자, 농부들이 즐겨신는 신발이 된다.



ⓒniwaki.com,ⓒen.wikipedia.org

현재 지카 타비를 워크 웨어로 판매 중인 브랜드 ‘Niwaki’, 기존의 타비 슈즈에 고무 밑창을 추가한 ‘지카 타비(Jika Tabi)’




물론 눈에 띄는 모양 탓에 단점도 있었다. 실제로 일본군이 남긴 발자국 덕분에 호주군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발자국을 추적하고 찾을 수 있었다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본 건설 노동자의 신발로 남아있는 지카타비는 일본의 포토그래퍼 마츠다 타다오(Matsuda Tadao)가 촬영한 사진 속에서도 만날 수 있다.



ⓒnippon.com



일본 내에서 머무르던 타비가 처음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건 1951년 보스턴 마라톤. 당시 마라토너 다나카 시게키(Shegeki Tanaka)는 타비 슈즈로부터 영감받은 Onitsuka 운동화를 신고 우승한다. 하지만 그 성공에도 불구하고 당시 서구 사회에서 타비는 그저 이상한 것으로 여겨졌다고 하니. 역시 낯선 외모로 낯선 땅에서 호감을 사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nssmag.com

마라토너 다나카 시게키(Shegeki Tanaka). 




마르지엘라가 타비를 아이코닉하게 만든 법


본격적으로 패션계에 등장한 타비 부츠, 그 탄생은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로부터다. COMME des GARÇONS의 레이 가와쿠보(Rei Kawakubo)나 Yohji Yamamoto와 같은 일본 디자이너의 영향을 받은 그는 앤트워프 식스 멤버들과 함께 떠난 일본 여행을 떠나는데.. 그곳에서 타비를 처음 보고 크게 영감받아 자신만의 해석을 담은 실루엣의 부츠를 런웨이에 처음 선보이게 된 것.

기존 물건을 해체해 새로운 것으로 탄생시키는 ‘해체주의’는 Martin Margiela를 관통하는 키워드이며, 타비 슈즈 역시 그 결과물이었다. (그러고 보면 1989 SS의 쇼 네임 ‘해체와 해석(Deconstruction and Interpretation)’은 아주 적절한 이름이다.)


ⓒnssmag.com

Maison Martin Margiela의 타비를 신고 있는 가수 뷔욕(Bjork). 



당시 쇼 장에서 모델들은 흰색 천 위를 걸으며 발바닥에 묻힌 새빨간 페인트 발자국을 남겼다. 발가락 부분이 갈라진 타비 부츠의 독특한 디자인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는데, 이는 가장 확실하게 타비 부츠의 디자인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흰 천 위에 수놓아진 발자국 프린트는 다음 컬렉션인 1989 AW 쇼 오프닝 룩의 슈트 조끼로 사용되었다.



ⓒminniemuse.com

Maison Martin Margiela 1989 SS과 그 다음 시즌 Maison Martin Margiela 1989 AW의 타비 부츠 재킷. 



타비 부츠는 내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한 번에 알아볼 수 있고, 2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한 번도 그대로 복제된 적이 없다." –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


타비를 재해석해 선보인 쇼가 끝난 후 마틴 마르지엘라는 백스테이지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타비라고 불리는 이 신발이 단 한 번도 복각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오랜 세월 많은 이들이 신어 온 이 신발이 마르지엘라 전에 그 어떤 디자이너에게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과 자부심을 내비친 것이었을 터.

마르지엘라의 기대와는 달리 매체들은 회의적인 반응이 주를 이뤘다. 특히 그 외형이 ‘기이하다’는 식의 비판이 주를 이뤘다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타비 부츠를 이을 새로운 디자인의 신발을 만들기 위한 예산이 그에게는 턱없이 부족했고 그는 몇 년간 똑같은 신발을 런웨이에 올릴 수밖에 없었다. 종종 새로운 느낌을 주기 위해 다양한 색의 페인트로 덮었을 뿐.



ⓒgrailed.com



하지만 시대는 변하는 법. 매 시즌 타비를 선보이면 전에는 이해받지 못하던 마르지엘라의 미학이 점차 주목받기 시작한다. 이를 시작으로 부츠, 스니커즈, 발레리나, 플랫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상과 실루엣으로 재해석 되며 컬렉션에서 필수적인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사로잡는 건 1996 SS 컬렉션의 토플리스 타비(Topless Tabi). 발을 신발에서 잡아주기 위해 사용한 투명한 테이프 스트랩과 타비 밑창의 조화는 미니멀리즘의 정점을 보여주는 수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nssmag.com, ⓒvogue.fr

1996 SS 컬렉션의 토플리스 타비(Topless Tabi), 미래에서 온듯한 2014 FW 타비 부츠

ⓒlyst.com, ⓒhypebeast.com

비가 와도 걱정 없이 신을 수 있는 타비, 심플한 룩의 포인트가 되어줄 타비 로퍼

ⓒhypebeast.com, ⓒvaniitas.com

웨스턴 부츠 실루엣의 타비, 디스코 볼을 신발에 담은 타비 부츠


이제 신발만으로는 부족했는지 가방까지 타비 형태로 출시하며 진정한 원조는 누구인지 보여 준 Maison Margiela.



ⓒcettire.com, ⓒvspconsignment.com



2000년대 패션을 주름잡았던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의 귀환, 2024 Spring Couture에서도 타비 슈즈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송치 소재와 애니멀 프린트로 재해석된 모습으로,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과 협업을 거쳤다고.



ⓒvogue.com

Maison Margiela 2024 Spring Couture 






노동자의 신발에서 패션 아이템으로


물론 타비의 독보적인 실루엣을 Maison Margiela만 선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PRADA는 2013 SS 컬렉션에서 누가 봐도 타비 양말을 연상시키는 끈이 달린 힐 제품을 선보였는데.. 사실 이 신발은 Margiela의 타비 슈즈보다 일본의 타비 양말을 직접적으로 떠오르게 한다.



ⓒgrailed.com

PRADA 2013 SS. 


1995년부터 지금까지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Nike의 에어 리프트는 타비의 스포티한 버전이라 할 수 있겠다.


ⓒpinimg.com, ⓒnike.com

ⓒharbourcity.com

Reebok의 대표적인 스니커즈인 인스타펌프 퓨리를 재해석한 Maison Margiela 2020 SS 컬렉션. 



2009년부터 2012년까지 Maison Margiela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일한 뎀나(Demna)는 언제나 그래왔듯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마르지엘라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irenebrination.typepad.com

뎀나가 선보인 VETEMETS식 타비 부츠, 2018 FW. 





타비 부츠 사이에 뭐 좀 꼽아 봤다면


한창 Tumblr가 유행하던 시절 감성에 살고 감성에 죽던 에디터에게 Maison Margiela의 타비 부츠 사이에 지폐나 담배를 끼워둔 사진들은 마음에 불을 지르기에 충분했다. 이토록 시크하면서도 흥미로운 이미지라니. 패션은 재밌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이에게 이토록 매력적인 신발이 있을까.



ⓒenfntsterribles.com



평범한 아웃핏에 특별함을 더해주는 타비 부츠. 당신도 시도해 보면 어떨까. 꼭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기분을 안겨줄 테니.



ⓒnyc-looks.com, ⓒhighsnobiety.com, ⓒgq.com, ⓒvogue.de
ⓒvogue.com, ⓒwwd.com



처음 발매된 이후 30년 넘게 Martin Margiela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타비 슈즈. 그때를 시작으로 30년 넘게 고유한 형태를 유지하며 패션계에 독보적인 족적을 남기는 중이다. 마틴 마르지엘라가 처음 타비를 선보일 때 강렬한 발자국을 남겼듯이 말이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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