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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Feb 16. 2024

패션 관계자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이탈리아 브랜드는?

주저없이 Magliano(마리아노)

Brand LAB: MAGLIANO

클래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혁명



METAL 매거진의 클라우디아(Claudia Luque)는 말한다. MAGLIANO는 매우 불경스러운 방식으로 규칙을 가지고 놀려한다고. 그래서 그런가. MAGLIANO의 컬렉션은 매번 우리에게 상상치 못한 세계를 보여준다. 때문에 더더욱 궁금해진다. 대체 어떤 브랜드 길래.



브랜드 로고가 너무나 귀엽다 ©magliano.website






피티 우오모와의 인연


내가 MAGLIANO를 다시 보게 된 결정적인 이유. 바로 이번 피티 우오모(Pitti Uomo)에서 개최된 그들의 2024 FW 쇼 때문이다. 동료 에디터가 연초에 물밀듯 쏟아져 나왔던 맨즈 패션 위크 컬렉션들 중 단연 최고라 하길래 당장 유튜브를 켜고 풀영상을 관람하기 시작했는데... 역시는 역시. 웅장한 계단 위를 오르내리는 모델들의 아웃핏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2024 FW ©highxtar.com



의상도 의상이지만, 그 의상들이 갖는 본연의 의미를 어떻게 더 극명하게 보여줄 것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로마에 위치한 캄피돌리오(Campidoglio) 언덕의 계단으로부터 영감 받은 무대 세트는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평소 영화에 조예가 깊던 디렉터 루카 마리아노(Luca Magliano)의 심미안이 거장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의 대표작 노스탤지아(Nostalghia, 1996)에 등장한 이 계단의 미장센을 포착해 낸 것.



영화 노스탤지아의 한 장면 ©closeupfilmcentre.com



영화에서의 계단의 의미는 수동적인 그리움을 뛰어넘는, 상실된 것에 대한 불타는 욕망을 대변한다. 그리고 MAGLIANO 쇼에서의 계단 역시 이와 비슷한 은유로 응답한다. 역동적인 실루엣과 섬세한 디테일, 젠더리스한 무드의 착장이 상하운동을 반복하는 모습. 이는 곧 젠더와 패션 사이에 존재하는 고정관념을 타파하여 배척당한 자아와 욕구를 되찾기 위한 결심의 과정처럼 느껴진다.



2024 FW ©vogue.com



하지만 이번 MAGLIANO의 컬렉션이 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 이유는 바로 2018년 데뷔 컬렉션 역시 피티 우오모를 통해 공개되었었기 때문이다.

피티 우오모란 1972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된 남성복 박람회로, 전 세계의 남성 패션계 인사들이 모여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모의하는 화합의 장이자 떠오르는 브랜드의 최신 컬렉션도 함께 개최되는 중요한 행사. 루카는 당시 이탈리아 보그와 피티 우오모가 함께 주최하는 신진 디자이너 후원프로그램인 Who is on Next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며 무대 진출권을 획득해냈다.



MAGLIANO의 디렉터 루카 마리아노 ©wearglobalnetwork.com



이토록 화제를 모았던 그의 첫 컬렉션의 제목은 사랑에 빠진 남자를 위한 옷장(Wardrobe for a Man in Love). 루카는 이 컬렉션에 대해 i-D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다.

우리는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친절은 성차별, 인종차별, 계급주의를 비롯한 모든 차별과 싸우기 위해 우리가 가진 유일한 무기입니다.



2018 FW ©malefashiontrends.com



어떤가. 런웨이 위를 가득 채운 로맨틱한 장미 언덕, 90년대의 이탈리아 복식 문화를 과감한 색채와 재치 있는 디테일로 풀어낸 점이 주제와 너무나 잘 어울리지 않는가.






역사는 볼로냐에서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2017년 탄생하여, 아직 이제 갓 5년을 넘긴 브랜드가 대체 어떻게 이런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

이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먼저 브랜드의 수장인 루카 마리아노에 대해 더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탈리아 볼로냐 출신에, 예술 대학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모국의 브랜드인 Ter Et Bantine에서 인턴을 거친 그. 여기까지만 보면 꽤 평범한 행보다. 그러나 그는 20살부터 자신만의 레이블을 차렸고, 꾸준히 독립하려는 시도를 거듭해 왔다. 물론 우리에게 알려진 건 MAGLIANO 뿐이지만. 게다가 상복도 많다. 앞서 언급한 Who is on Next 프로그램의 최종 우승은 물론, 2023년 LVMH의 2등 상인 칼 라거펠트 상도 수상했으니.



©businessoffashion.com



그러나 이는 그저 요행이 아니었다. MAGLIANO의 기저엔 뿌리 깊고 뚜렷한 몇 가지 신념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루카는 매 컬렉션에서 이를 드라마틱하게 살려내며 대중들과 평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그 신념에 대해 살펴보아야 할 차례다.

MAGLIANO는 자유주의 운동과 계급투쟁의 상징인 도시이자, 루카의 고향인 볼로냐(Bologna)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볼로냐는 고향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반체제 성향이 강한 지역이었기에 물질만능주의를 배척하고 예술성을 사랑하는 반부르주아적 발상의 모태가 되었고, 활성화된 LGBT 커뮤니티들 덕분에 스스로의 성 정체성의 확립에도 많은 영향을 준 특별한 곳이었다. 그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방식을 체득할 수 있었다.



볼로냐의 전경 ©lonelyplanet.com



클래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혁명. MAGLIANO의 컬렉션 전반을 아우르는 이 발칙한 도전은 모두 이 볼로냐란 도시에 빚을 지고 있다. 다크한 멋 속에 숨겨진 유머러스함, 진보적인 제스처와 엉뚱함, 미니멀함을 추구하면서도 혼란스러운 변주를 가미한 이 요상한 브랜드의 마력에 우리는 모두 홀리고 만 것이다.






고전과 현대의 대화


MAGLIANO의 컬렉션에선 항상 낭만주의의 숨결이 느껴진다. 모든 보편성에 저항하는 것이 낭만주의의 기본 철칙이라면, MAGLIANO만큼 이러한 계보를 철저히 따르는 브랜드도 없을 터. 하지만 그는 그저 기본에 저항하기 위해 옷을 짓는 건 아니다. 직물과 기술에 있어선 철저한 장인정신을 추구하여 현대적인 디자인을 재현하는 데에 완성도를 높인다. 다시 말해 기본은 철저히 지켜내지만, 그걸 풀어내는 방식이 남들보다 희한할 뿐이다.



2019 SS LOOKBOOK ©pinterest



이탈리아의 범죄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2019 SS,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2020 SS, 지중해의 고스(Mediterranean Goth)란 이름으로 전개된 2020 FW 등은 모두 루카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뒷받침된 귀중한 산물들이다. 특히 2020 FW는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컬렉션. 자칫하면 다크 하게만 느껴질 수 있는 고스풍의 무드를 진중한 색감과 키치한 디테일을 더해 색다른 감성으로 풀어낸 점이 포인트다.



2020 SS LOOKBOOK ©fuckingyoung.es
2020 FW ©metalmagazine.eu



루카 피셜 가장 추억하고 싶은 시즌으로 선택된 2021 SS 컬렉션은 해적의 옷장이란 타이틀로 진행되었다. 왜 하필이면 해적일까? 나는 감히 이러한 추측을 해본다. 각박한 현대 문명 속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해적은 아나키즘의 산 증인이다. 규칙을 불경스러운 방식으로 가지고 놀고 싶어 하는 그에게 이보다 끌리는 주제가 또 있을까?



2021 SS ©vanityteen.com







나는 모든 예술을 사랑한다


루카의 인터뷰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유독 타 장르의 예술가들에 대한 언급이 활발하다는 점이다. 마치 모든 예술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주장이라도 펼치려는 듯 말이다.

영화와 문학은 내 판타지를 구성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영감을 줍니다.
(Metal Magazine과의 인터뷰 중)

특히 이탈리아의 소설가인 이자벨라 산타크로체(Isabella Santacroce)와 아카데미에서 공로상까지 수상한 영화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 영화 아라비안 나이트(Arabian Nights, 1974)로 칸 심사위원 대상을 비롯해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모두 본상을 받은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Pier Paolo Pasolini)는 그가 자주 언급했었던 인물들.

이 셋의 공통점을 찾기란 쉽지 않지만... 굳이 꼽아보자면 존재와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궤를 함께 한다. 이자벨라는 사랑과 공포로, 페데리코는 무의식과 꿈으로, 파솔리니는 폭력과 저항을 통해 말이다. 이 모든 요소들이 MAGLIANO의 컬렉션에 한 번씩 출현한 걸 보면, 그는 분명 이 시대의 모든 예술로부터 적잖은 도움을 받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자벨라 산타크로체, 페데리코 펠리니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en.wikipedia.org, ©rottentomatoes.com
파솔리니의 영화 아라비안 나이트의 한 장면 ©imdb.com



MAGLIANO의 2022 FW 쇼는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의 영화인 로코와 그의 형제들(Rocco e i suoi fratelli, 1960)의 영향을 받았다. 개최된 곳 역시 영화의 주 배경으로 등장했던 복싱장이었는데, 한가운데 침대를 두어 공간과 사물의 충돌을 조장하고 오묘한 이질감을 형성했다. 평소 자신에게 서려있던 우울과 고독감을 기이한 느낌으로 표현하려 했던 것이다.



2022 FW ©vogue.com



여기서 끝이 아니다. LVMH 수상 이후 전개된 2023 FW와 2024 SS에선 보다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상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MAGLIANO를 보여주어야겠다는 디자이너의 의지가 반영된 듯하다. NO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쉽게 타협하지 않겠다는 포부를 보여준 2023 FW, 바머 재킷과 테일러링 슈트, 워크 웨어 등 평범한 의류에 디테일을 더해 쿠튀르적 분위기를 연출한 2024 SS는 앞으로 펼쳐질 MAGLIANO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2023 FW
2024 SS ©vogue.com



자, 이제 MAGLIANO에 대한 모든 의문이 풀렸는가. 당신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아직 멀었다. 어찌 된 게 보면 볼수록, 파면 팔수록 새로운 질문들이 생기는지. 하지만 그래서 쉴틈없이 즐겁다. 끝없는 혼돈을 조장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물음표를 선사하는 것. 바로 이것이 MAGLIANO를 유일무이하게 만드는 비결이 아닐까.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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