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and Fine Art
Stories: Fashion and Fine Art
캔버스를 벗어나 런웨이에 오른 미술
Kidsuper 2023 SS 컬렉션은 미술 경매장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런웨이 가운데 착장마다 그림을 바꾸어 보여주고 해당 그림들이 프린트된 옷들을 입고 나오는 모습을 연출했다. 캔버스를 찢고 그림을 몸에 걸친 채 걸어 나오는 피날레는 모두의 환호성을 자아냈다. 이처럼 미술은 디자이너 영감의 원천이 되어 패션과 예술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실제 그림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디자이너들이 펼친 오마주 패션의 세계를 살펴보자.
Composition II in Red, Blue, and Yellow
차가운 추상이라는 세계를 만들어 낸 신조형주의 대표 작가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몬드리안은 추상적인 접근을 통한 사물의 본질적 이해가 완벽한 순수함과 조화, 균형을 나타낼 수 있다고 믿었다. 단순한 선과 컬러가 조화를 이루는 작품 ‘Composition II in Red, Blue, and Yellow’에서 그가 열망하던 완전한 균형과 조화를 살펴볼 수 있다.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은 1965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서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그대로 재현한 미니 드레스를 발표했다. 이브 생 로랑은 ‘몬드리안은 순수함 그 자체이며 20세기의 걸작은 몬드리안이다’라며 몬드리안을 칭송하기도 했다. 1960년대는 여성 해방운동 시기와 맞물려 여성들의 신체를 구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옷차림에 대한 열망에 따라 미니스커트가 최초로 등장한 시기이다.
이브 생 로랑은 시대적 요구와 미적 탐구를 바탕으로 단순하고 명료한 직선적인 실루엣을 통해 몬드리안이 그려내고자 한 조화와 균형을 드레스에 그대로 구현했다. 몬드리안 드레스라 불리우는 이 드레스를 통해 패션이 하나의 예술로 다가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자연 풍경의 아름다운 순간의 빛을 붓으로 포착해낸 인상주의 대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 역시 언제나 꽃과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컬렉션으로 옮겨와 아낌없이 풀어내곤 했다. 어린 시절을 바다가 보이는 그랑빌의 자연에서 보낸 그에게 모네가 그려내는 정원은 하나의 안식처 같은 작품이 아니였을까 생각된다.
The Path Through The Arise
모네의 풍경화를 패션이라는 움직이는 화폭 위에 그려내기로 마음먹은 크리스찬 디올은 1949년 SS 오트쿠튀르 컬렉션에서 모네의 작품 ‘The Path Through The Arises’를 오마주한 드레스를 발표했다. 드레스는 걸어 다니는 모네의 그림 그 자체였다. 섬세한 붓 터치로 표현된 꽃들이 드레스에 레이스와 시퀸 장식으로 새롭게 피어났다.
The Artist's Garden at Giverny
꽃과 자연을 사랑하는 Dior에게 모네의 그림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영감의 원천이었을까?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Raf Simons) 역시 Dior의 2012년 FW 오트쿠튀르 컬렉션에서 모네의 ‘The Artist's Garden at Giverny’ 그림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작품으로 선보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빛을 탐구한 화가의 열정을 움직이는 드레스 위에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지아니니 베르사체(Gianni Versace)와 앤디 워홀(Andy Warhol)은 오랜 시간 깊은 우정을 자랑한 것으로 유명하다. 메두사 그림의 엠블럼과 함께 여성의 매혹적인 힘을 테마로 브랜드를 전개해 나가던 지아니니 베르사체가 섹스 심볼의 상징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의 초상화를 선택한 건 우연이 아니다.
1991년 SS 컬렉션에 선보인 마릴린 먼로의 초상이 프린트된 옷은 말 그대로 움직이는 앤디 워홀의 무대였다. 앤디 워홀에 의해 불멸의 아이콘으로 남은 마릴린 먼로가 런웨이 위에서도 다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Versace의 화려한 패턴과 글래머러스한 디자인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컬렉션이었다. 상업과 예술의 사이를 넘나드며 대중 예술로 나아간 앤디워홀과 소위 하위 문화들을 하이 패션의 세계로 끌어들인 Versace. 두 세계의 만남은 대조적인 가치들의 경계를 허문 특별한 기록이 되었다.
사라버튼의 무드보드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강렬하면서도 관능적인 여인의 초상을 담은 ‘Adele Bloch-Bauer’는 Alexander McQueen의 디자이너 사라 버튼(Sarah Burton)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2013년 SS 컬렉션의 무드 보드가 되었다.
사라 버튼은 클림트가 사랑한 황금빛을 그녀만의 패션 언어로 재현한다. 클림트의 작품은 모델의 부유함의 상징으로 그림 위에 금박으로 덧칠한 화법을 선보였는데 사라 버튼의 의상 역시 각종 비즈와 시퀸 금박 장식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클림트의 작품이 의상을 입은 모델의 쇼로 재탄생한 모습은 눈이 부셨다.
사라 버튼의 미술에 대한 탐구와 열정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2013 FW 컬렉션에서 작자 미상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초상화를 모티프로 삼기도 했다. 얼굴과 목을 감싸는 과감한 진주 장식과 레이스로 장식된 드레스 등으로 왕궁 시대의 화려함과 위엄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화가는 고정된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린다면, 디자이너의 화폭은 훨씬 역동적이다. 어떤 패션은 그 자체로 걸어 다니는 예술 작품이기 때문이다. 갤러리 벽에서 걸어 내려와 쇼 무대와 거리를 활보하게 된 컬렉션은 삶을 더욱 반짝이게 만든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