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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Feb 29. 2024

퇴폐미의 정석: 라나 델 레이 알아보기

음악과 삶 그리고 패션을 통해 섹시함의 아이콘으로 거듭나다

Stories: Lana Del Rey

퇴폐미의 정석




누군가 내게 퇴폐(頹廢)미가 무어냐 묻는다면,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라 대답할 것이다. 짙은 스모키 아이, 고혹한 눈빛, 질끈 문 담배와 연기에 감싸인 알 수 없는 표정. 나른한 목소리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힘.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라나의 라이브를 본 적 없는 이가 있다면 당장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유튜브에서 그녀의 이름을 검색해라. 내 결정에 곧 동의하게 될 테니.



매번 화제가 되는 그녀의 라이브 아웃핏들ⓒflickr.com, ⓒpinterest


ⓒInterview Magazine






그녀가 돌아왔다


최근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킴 카다시안(Kim Kardashian)의 브랜드 SKIMS. 그들은 올해 1월 말, 발렌타인데이를 겨냥해 새로운 캠페인을 공개했는데 그 반응이 역대급이다. 공식 인스타그램엔 좋아요가 무려 48만 개, 댓글은 6000개가 넘게 달렸고 VOGUE와 Variety 등 여러 매체에선 킴의 천재적인 마케팅이라며 극찬을 보냈으니. 심지어 몇몇 누리꾼들은 홍보 담당의 연봉 인상을 고려해야 하지 않겠냐는 재치 있는 의견까지 내놨다.



SKIMS의 발렌타인데이 캠페인에 등장한 라나 델 레이ⓒvogue.com



그리고 그 찬사의 중심엔 데뷔 10년을 훌쩍 넘긴 싱어송라이터, 라나 델 레이가 있다. 밝은 금발의 롱 헤어, 새빨간 하트 패턴이 인상적인 착장과 함께 카메라를 새침하게 응시하는 그녀의 표정까지. 무엇 하나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캐스팅이 아닌가!



ⓒvogue.com



캠페인의 주된 무드는 라나가 데뷔 초부터 고수해 오던 60년대 스타일이다. 전형적인 고양이 상의 마스크, 찰떡 같이 어울리는 캣 아이라인, 코랄빛의 입술이 여전한 모습. 다소 파격적으로 느껴지는 헤어 컬러는 그동안 짙은 머리색만을 추구하던 그녀에게 산뜻한 변화를 주기 위해 킴이 특별히 요청한 것이라고 한다.



라나 델 레이가 참여한 패션 캠페인들. H&M(좌)과 GUCCI(우)ⓒjustjared.com







내가 쓰고 싶은 노래를 쓸 거야


라나가 이 캠페인에 등장하게 된 이유엔 2년 만에 발표한 신보 Did you know that there's a tunnel under Ocean Blvd의 인기도 한몫했다. 66회 그래미 어워드에선 무려 다섯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올해 4월에 열릴 코첼라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어엿히 이름을 올렸을 정도이니.



Did you know that there's a tunnel under Ocean Blvd(2023)ⓒpitchfork.com



허나 이런 그녀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 미성년 시절부터 술에 의존하기 시작해 나중엔 알코올중독 진단까지 받았던 데다, 엄한 부모의 강요에 떠밀려 입학한 기숙학교에서도 심한 따돌림을 받아 통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 그녀에게 힘이 되어 준 건 바로 문학이었다. 시와 소설들을 배우며 지독한 외로움과 공허함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하니까. 그녀의 우상은 미국의 시인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와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한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Bob Dylan).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음악을 만드는 싱어송라이터의 꿈을 품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앨런 긴즈버그(좌)와 밥 딜런(우)ⓒlithub.com



대학에선 철학을 전공하며 동시에 송라이팅 공부도 치열히 병행했다. 그러던 중 뉴욕 브루클린에서 열린 작은 송라이팅 대회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고, 우연히 한 레이블의 관계자에 눈에 띄어 계약을 하고 데뷔 앨범까지 내게 되었다고. 하지만 당시 프로듀서와의 심한 마찰로 인해 본인이 추구하던 음악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음반이 나와버리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라나는 즉시 다른 회사와 계약을 하고 이 앨범을 폐기할 것을 요청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노래를 쓰고 싶다는 의지가 굉장히 강했던 것. 그리고 지금의 라나 델 레이라는 이름까지 새로 지어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Lizzy Grant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시기ⓒculledculture.com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Video Games (2011)


라나가 본격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건 2011년 첫 번째 싱글 Video Games의 뮤직 비디오를 통해서다. 웹캠을 이용한 홈메이드 방식에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영상들을 짜깁기 하여 만든 조악한 작품이었지만 이게 웬걸, 오히려 이 미숙함이 매력이 되어 음악팬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것이다.



Video Games MVⓒbustle.com




이 뮤비 속의 라나는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60년대 무드를 선보인다. 그녀는 자신을 갱스터 낸시 시나트라(60년대에 활약한 배우 겸 가수)라 어필하며 과거 센세이셔널 했던 여성 싱어들의 흔적을 따르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친다. 물론 그녀의 고전적인 외모와도 찰떡으로 어울리는 컨셉.

비록 편집은 서투르지만 20세기 중반 캠코더로 찍은 듯한 홈 무비 스타일 화면, 스케이트를 타는 소년들, 이와 병치되는 할리우드의 화려한 풍경은 마치 번뇌와 이상이 고스란히 담긴 라나의 공상을 엿보는 느낌이다.



(좌) 2011 Wonderland Magazine에 실린 라나, (우) 낸시 시나트라ⓒindependent.co.uk







Born to Die (2012)


하지만 당시의 메인 스트림 음악은 EDM과 댄스 팝이 장악한, 강렬한 비트와 발랄한 멜로디의 곡들이 주목받던 시기였다. 하지만 라나의 곡들은 이와는 정반대로 우울하다 못해 침울했다. 또한 가사 역시 시대가 바라는 여성상과는 맞지 않는, 권력자의 사랑을 갈구하는 복종적인 여성의 모습들로 가득했다.



Born to Die(2012)ⓒen.wikipedia.org



때문에 라나는 매니아와 안티의 추앙과 공격을 동시에 받았다. 그러나 라나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데뷔 앨범 Born to Die를 발매한다. 이 앨범 역시도 이변은 없었다. 곳곳에 서린 다크한 메시지들과 자기 파괴적인 가사들, 한때의 사랑에 눈이 멀어 촛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는 여성의 모습들을 다루었던 것.



Born to die MVⓒimdb.com



물론 평론가들은 이런 나약한 여성상을 끈질기게 화자로 내세우는 라나를 싫어했다. 비련의 여주인공을 연기한다, 진정성이 없다며 악평을 쏟아냈고 세계적인 음악 매거진 피치포크(Pitchfork)와 롤링 스톤(Rolling Stone)의 앨범 평가 스코어 역시 하위권을 맴돌았다. 특히 2013년 The FADER지에선 라나의 음악에 대해 이렇게 평을 했을 정도다.


라나 델 레이의 노래가 미성숙한 여자 아이들에게 굉장히 해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에 반해 수록곡들의 뮤비 속 라나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커다란 성 안을 배경으로 순백의 드레스와 파란 꽃으로 장식된 화관, 프린지 장식의 화이트 레더 셔츠와 빨간 컨버스(Born to Die), 프린트 티셔츠와 데님 쇼츠의 올드 스쿨 클래식 룩과 웨스턴 코어의 향취(Ride)까지. 흠잡을 곳이 없다.



Ride MVⓒfashionmagazine.com, ⓒdiffuser.fm






Ultraviolence (2014)


평단의 이런 부정적인 분위기에도 인터넷의 소녀들은 라나 델 레이만이 갖는 센티멘탈한 분위기에 열광적 반응을 보냈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각자의 슬픔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마음껏 전시할 수 있을 용기를 얻었던 것. 항상 가사 속 관계의 주도권이 남자에게만 있다는 비판에도 라나는 이렇게 답한다.

여성들에게 특정 여성상을 강요하는 것 역시도 일종의 통제다. 모든 여성은 각자의 선택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남자에게 복종하던, 매달리던, 징징대던, 그들이 하고 싶은 걸 하게끔 그냥 내버려두라고. 이는 마치 그동안 과장된 제스처와 버닝 된 에너지를 온몸에 두른 채 여성 파워를 외치던 많은 아티스트들과의 태도와는 대립된 선언이었다.



Ultraviolence (2014)ⓒpitchfork.com




그녀의 발칙한 도전은 정규 2집 Ultraviolence에서 극대화된다. 어린 시절 관계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이라는 변을 내놓지만, 몇몇 가사에선 폭력과 마조히즘적인 색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아무튼 이래저래 탈이 많던 앨범이지만 스타일링만큼은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을 듯. West Coast의 뮤비 속 인디 슬리즈 룩과 Ultraviolence에서 빛을 발한 순백의 웨딩드레스는 변화무쌍한 그녀의 캐릭터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챕터다. 또한 개인적으로 최애곡인 Shades of Cool의 원피스 아웃핏은 발랄한 분위기로 시선을 사로잡는 베스트 아이템.



Ultraviolence MV
West Coast, Shades of Cool 뮤비에서 착용했던 원피스를 입고 공연을 한 라나ⓒhypebeast.com, ⓒharpersbazaar.com




Lust for Life (2017), 그 이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끝없이 성장한다. 정규 4집인 Lust for Life는 라나의 데뷔 이후 가장 팝적인 분위기를 살린 대중성을 겨냥한 앨범이었다. 가사 역시 희망적이고 감동적이다. ‘어둠 속을 빠져나와 푸른빛 속으로 움직이고 싶다(Get Free)‘는 새로운 선언과 ‘우린 우리 운명의 주인공이고 우리 영혼의 주인(Lust for Life)’라는 올곧은 주체성까지 탑재한 채 나타났으니.

패션 역시 전과는 달리 신선한 변화의 연속이다. 70년대 풍의 레드 미니 드레스와 화이트 삭스의 조합, 레이스 소매가 달린 화이트 드레스의 페미닌함을 보다 극대화시키기 위한 데이지 헤어 피스도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Lust for Life



정규 6집인 Chemtrails Over The Country Club(2021)의 컨셉도 독특하다. 50년대의 상류층 무드를 극적으로 재현한 모습. 풍성하게 힘을 준 헤어와 차고 넘치는 다이아와 진주 액세서리,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달리며 아직 늦지 않았으니 멈추지 말라는 라나의 외침이 가슴을 뛰게 만든다.



Chemtrails Over The Country Club MVⓒnme.com, ⓒimdb.com




그들은 틀렸어요. 거의 모든 면에서.

2023년 11월 VOGUE와의 인터뷰에서 라나는 과거 자신을 겨냥한 비난, 즉 그릇된 여성관에 사로잡혀 있다거나 가짜 우울을 연기한다며 혹평을 날렸던 평단과 대중을 향해 이와 같은 일침을 날린다. 용기와 낭만을 무기로 치열한 전투에서 드디어 뜻깊은 승리를 거머쥔 그녀. 라나의 음악은 우리에게 슬픔을 감추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마음껏 즐기라 말한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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