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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Mar 12. 2024

블랙 하나로 자신의 우주를 넓히다. 누아 케이 니노미야

Brand LAB: NOIR KEI NINOMIYA


Brand LAB: NOIR KEI NINOMIYA

블랙 하나로 자신의 우주를 넓히다.






전위적인 실루엣의 NOIR KEI NINOMIYA가 브랜드를 전개하는 법.



이토록 블랙에 진심인 브랜드

까맣다. 온통.


©dazeddigital.com


누군가 그랬다. 오늘날의 오뜨 꾸뛰르가 궁금하다면 고개를 들어 NOIR KEI NINOMIYA의 컬렉션을 보라고. 이름에서 알 수 있듯 (Noir: 프랑스어로 ‘검은색’), 디자이너 케이 니노미야는 본인의 이름 앞에 검정을 호기롭게 붙여 놓고선, 컬렉션의 테마로 자주 소환한다.


사실 일본 디자이너들의 검은색 사랑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1980년대를 지나 지금도 패션 애호가들의 마음에 깊게 자리 잡은 COMME des GARCONS의 레이 가와쿠보(Rei Kawakubo),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Yohji Yamamoto) 등 1세대 선배들이 검정의 해체주의로 서양 패션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듯 말이다. 온몸을 올블랙으로 장식한 모습이 마치 까마귀 떼가 모여 있는 모습과 같아 ‘카라스 조쿠(Karasu Zoku, 까마귀 족)’ 라고 불리는 일본 고유의 서브컬처가 생겼을 정도로 패션계에서 검은색이 가진 영향력은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models.com

NOIR KEI NINOMIYA x Moncler 



그러한 정신을 이어받은 NOIR KEI NINOMIYA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어려서부터 COMME des GARCONS을 즐겨 입었던 니노미야에게 검정은 어쩌면 굳이 영감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당연한 선택일 수도 있겠다. 그만큼 니노미야에게 일상적이고 쉬운 컬러이면서도, 동시에 주변의 모든 빛을 삼키고, 사물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신비로운 힘을 가진 검정의 매력을 일찍이 매료되기도 했을 것이다. 게다가 한 컬러에 집중하면 지향하는 테크닉과 형태 그리고 디테일이 더욱 잘 드러나기도 하니까.




COMME des GARCONS의 정신 아래서

NOIR KEI NINOMIYA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 바로 COMME des GARCONS다.

현재 패션계에서 가장 독립적이고, 고집스러우면서도 고유의 순수를 유지하는 브랜드이자, 처음 그가 패션 커리어를 시작하고 여전히 몸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wmagazine.com

2023 SS 컬렉션을 마무리하는 백 스테이지의 케이 니노미야. 



처음부터 패션을 했던 건 아니었다.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많아 도쿄 아오야마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던 그가 패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당시 학교 근처의 COMME des GARCONS 매장을 자주 다니면서부터다. 그 결과로 졸업 후 앤트워프 왕립 예술 학교에 입학까지 하게 되고, 1년간 다니던 중 COMME des GARCONS에 지원한 뒤, 면접에 합격하면서 디자이너로서의 길이 열리게 된 것.

그렇게 레이 가와쿠보의 제자이자 패턴사로 일하며 혁신적인 재봉 기술과 건축학적 실루엣을 자유롭게 다루는 법을 익히게 된다. 그 후 학교를 중퇴한 뒤, 2023 SS 컬렉션에서 처음 데뷔하며 브랜드 NOIR KEI NINOMIYA의 아방가르드한 패션 여정, 그 막이 오르게 되었으니.


©vogue.com


레이 가와쿠보의 영향력이 느껴지는 케이 니노미야의 초창기 컬렉션들, NOIR KEI NINOMIYA 2016 SS 


©vogue.com


NOIR KEI NINOMIYA 2017 FW 


©vogue.com

NOIR KEI NINOMIYA 2018 SS 




NOIR KEI NINOMIYA 컬렉션은 누가 레이 가와쿠보 제자 아니랄까 봐 한눈에 봐도 COMME des GARCONS이 떠오르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가끔 케이 니노미야의 손을 거친 탁월한 실루엣의 옷은 스승보다 나은 제자 없다는 말의 진의를 의심하게 하기도 하니까.



©whitewall.art



COMME des GARCONS에서도 굉장히 빠르게 본인의 라인을 가지게 된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작업에서 중요한 건 새로운 것을 만들고, 새로운 제조 방식을 찾거나 새로운 실루엣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레이블 내에서 기술적으로도 가장 다채롭고 복잡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는 그의 작업물만 봐도 알 수 있듯 말이다.



©lux-mag.com

NOIR KEI NINOMIYA 2020 SS 



이렇듯 그는 새로움에 중점을 두고 컬렉션을 전개하는데, 이런 부분은 컬렉션의 콘셉트와 제작 방식에도 잘 드러나 있다. COMME des GARCONS의 전통적인 라인들과 마찬가지로 상업적인 부분보다는 예술성에 집중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많은 라인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눈길을 끄는 독특한 입체감은 모든 컬렉션을 직접 손으로 만드는 장인정신에서 온다.




직접 보고 느끼는 NOIR KEI NINOMIYA의 세계

매 시즌 컬렉션이 담고 있는 내용에 따라 디테일은 다르지만, 브랜드가 가진 ‘느와르’ 정체성만은 단단하게 유지하는 NOIR KEI NINOMIYA.

2024 FW까지 전개된 최근의 컬렉션까지 살펴보면 컬러풀한 와이어부터 금속 소재를 활용하며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케이 니노미야의 블랙을 향한 무한한 애정이 희미해졌을 리는 없다. 그에게 다른 색상을 쓰는 건 검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돋보이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니까.





대자연에서 왔어요

흑과 백의 만남을 보여 준 2020 SS 컬렉션.

끝을 짐작할 수 없는 어두운 배경 속 떠다니는 구름 모양의 하얀 가운. 이 구름은 입체 형태의 커다란 유닛을 부드럽고 얇은 툴로 제작해, 길이를 조절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NOIR KEI NINOMIYA만이 가능한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의상.


NOIR KEI NINOMIYA 2020 SS, 호주 황소 상어에서 영감받은 의상.



게다가 호주 황소상어의 하얀 피부와 후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민들레 홀씨를 닮은 원피스를 보고 있자면 짐작하게 된다. 당시 케이 니노미야의 머릿속엔 분명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자리 잡고 있었으리란 걸.

모델들의 머리를 장식한 모자도 그렇다. 플라워 디자이너, 아즈마 마코토(Azuma Makoto)가 디자인한 것으로 실제 식물인 양서류, 이끼, 야자수로 제작되어 대자연의 닮은 니노미야의 실루엣을 완성해 냈다.



©vogue.com




블랙 했다, 핑크 했다 내 맘대로 바꿈

기존의 날서고도 우아한 NOIR KEI NINOMIYA의 이미지에 낭만 한 스푼 가미한 2021 SS. 고딕 블랙 드레스와 그 위를 장식한 핑크 프릴 리본 드레스를 보라.

이때 선보인 의상들은 새로운 직물을 구해 특별히 짜낸 것이 아닌, 케이 니노미야가 이미 가지고 있거나 준비된 것들을 사용한 것이어서 더 특별한 의미를 더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컬렉션의 테마는 “테마 없음”이었다는 것. 작업하는 과정 그 자체에서 영감을 얻고 실체로 만들어 나가는 케이 니노미야의 성향이 반영된 대목이다.



©vogue.com

NOIR KEI NINOMIYA 2021 SS 





이게 다 수작업, 패턴사로 일한 경력 어디 안 가죠

그 어느 컬렉션보다 꾸뛰르라는 이름에 걸맞았던 2023 FW. 다채로운 컬러 팔레트로 그는 하나하나 수작업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하나의 피스를 만들기 위한 시간과 노력이 가늠되지 않을 정도다.

모델을 압도하는 크기의 홀로그래픽 플라워 바디 슈트는 얇은 튤 소재를 활용해 제작한 것으로, 패턴사로 경력을 시작한 케이 니노미야의 짬(!)이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 컬렉션에서 등장한 레이저 컷, 튤, 플리츠, 가죽 등 다양한 소재와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제작한 디테일. 이 모든 것들은 그야말로 입을 수 있는 예술품 그 자체다.


©vogue.com

NOIR KEI NINOMIYA 2023 FW 





오로지 자신의 미학만을 믿고


새로운 컬렉션을 만들 때 트렌드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디자이너, 케이 니노미야.

내로라하는 하이브랜드조차 트렌드의 눈치를 보는 시대에서 묵묵히, 고집스럽게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창조물을 만드는 케이 니노미야의 확고한 비전과 삶의 태도는 그야말로 귀하다.


©interviewmagazine.com



그러니 그의 옷이 특정 한 인물을 대상으로 만들어졌을 리가 없다. 뚜렷한 비전, 강인한 애티튜드와 개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케이 니노미야를 닮은 옷에 어울릴 테니.

실제로 그런 정신세계를 보여준 아티스트들에게도 영감이 되고 있는 NOIR KEI NINOMIYA. 그도 그럴 것이 전위적인 퍼포먼스로 독특한 세계관과 전위적인 퍼포먼스로 명성을 가진 아이슬란드 아티스트, 뷔욕(Björk). 그녀의 최근 퍼포먼스 의상들을 구글링해보면 실험적인 케이 니노미야의 옷들이 주를 이룬다.



©wwd.com

공연 중인 뷔욕. 



사실 케이 니노미야에 관한 글을 쓰기란 쉬우면서도 어려웠다. 블랙이니, 전위적인 실루엣이니 그런 수식어를 붙이는 건 쉽지만, 그런 말들이 다가 아니니까. 그를 더 자세히 알아보려 읽은 몇 안 되는 인터뷰에서조차 그 자신이 작업에서 영감받는 것이나 사생활 관련 질문에 대한 답을 거부하며, 쉽게 언어로 규정되기를 거부하는 태도와 분위기를 확실히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답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는 옷으로만 그를 온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정말 중요할까. 하나하나 분석하기보다, 그저 그의 쇼에 등장한 모든 것들이 NOIR KEI NINOMIYA의 미학이자 ‘누와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더 기대되는 걸지도.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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