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Mar 22. 2024

90년대 행 타임머신을 탑승하시겠습니까?

Things That Happened in the '90s

Culture: Things That Happened in the '90s

90년대 행 타임머신




마지막 접촉의 시대


요즘 인스타 피드를 보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90년대에 유행했던 팝과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들까지 자주 목격되기 때문이다.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이들이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90년대 문화에 열광한다는 게. 하지만 그 시절의 어렴풋한 기억이 있는 내겐 이러한 현상이 무척이나 반갑다. 매일 오후 6시면 알람처럼 들렸던 만화 주제가와 뜻도 모르고 따라 부르던 히트곡의 멜로디, 당시엔 이해할 수 없었던 드라마 속 장면들이 아련한 풍경을 떠올리게 하니까.



명탐정 코난©oricon.co.jp




나는 이 시기를 지구상 마지막 접촉의 시대라고 말하고 싶다. 그때는 뭐든지 직접 만나고 만져야만 했다. 접촉하지 않으면 그 어떤 상대에게도 닿을 수 없었기에 모든 시도엔 확신과 준비, 그리고 용기가 필요했다. 기계도 마찬가지다. 그것에 어울리는 공간을 찾아내고, 자리를 내어주고, 직접 다루고 익히며, 꾸준히 점검해야 했다. 대중문화평론가인 이문원은 이러한 90년대를 인간이 기술을 지배할 수 있었던 마지막 시기라 일컫는다.

지금은 경우가 다르다. 모든 만남과 기술이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향하고 있는, 접속의 시대다. 클릭 한 번과 전화 한 통이면 대부분의 일을 해결할 수 있고, 타인과의 관계도 악수 한 번 없이 이뤄질 때가 있다. 음성과 눈빛, 촉감과 온기는 수많은 메시지로 환원되며 우리는 그 메시지를 믿음의 증거로 제시한다.



뉴욕 스테레오 바이어스(Stereo Buyers)사의 빈티지 오디오 시스템©cnet.com




물론 트렌드가 2-30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건 이젠 필연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90년대는 좀 특별하다. 단기간에 반짝하는 것이 아닌, 꽤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마치 집단 향수병에라도 걸린 듯 말이다. 어쨌든 확실한 건 90년대엔 지금의 현실을 겨냥하는, 그리고 치유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그 시절의 문화를 샅샅이 살피며 이 막연한 그리움에 대한 힌트를 찾아보는 것이다.



90년대 닌텐도(Nintendo)사의 지면 광고©businessinsider.com








록이 아직 죽지 않았을 때


90년대의 음악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다양성이다. 록과 알앤비, 힙합과 테크노, 뉴 메탈까지 차트에 이름을 올리며 메인 스트림의 한 영역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독보적인 아우라로 회자되고 있는 너바나(Nirvana)가 나타난 것이 바로 90년대 초. 또한 지금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오아시스(Oasis), 그린 데이(Green Day)와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라디오 헤드(Radiohead)와 같은 록 장르 뮤지션들의 인기도 대단했다. 지금이야 비실비실한 모습에 맥을 못 추고 있지만 한 때 록은 이토록 잘 나가는 음악이었다.



커트 코베인에게 영감을 받은 VETEMENTS(좌)과 SAINT LAURENT(우)©dazeddigital.com, ©independent.co.uk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오아시스와 라디오헤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그린데이©npo3fm.nl, ©ew.com




90년대 중후반엔 틴 팝의 열풍이 불었다. 영국의 걸그룹 스파이스 걸스(The Spice girls)와 백 스트리트 보이즈(Backstreet Boys),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가 속해있던 앤싱크(N Sync)는 청춘들의 히어로로 등극했고 수많은 명곡을 쏟아냈다. 우리에겐 Y2K 무드로 더욱 친숙한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의 라이벌 구도 역시 이 시기 음악계의 관전 포인트.



스파이스 걸스와 백스트리트 보이즈(좌), 엔싱크(우)©billboard.com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usmagazine.com



그중 가장 인상적인 건 세계 3대 디바로 불리는 여성 싱어들의 강세다.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들려오는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의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 영화 타이타닉(1997)의 주제가를 부른 셀린 디온(Celine Dion), 뛰어난 기교와 폭발적인 성량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이 삼대장의 무대가 당시 빌보드 차트를 휘어잡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범접할 수 없는 실력과 기록적인 성과는 2024년 현재까지도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머라이어 캐리©vogue.co.uk
셀린 디온(좌), 휘트니 휴스턴(우)©glamour.com



미국의 저명한 음악 매체 피치포크(Pitchfork)는 2022년, 90년대를 대표하는 150장의 앨범을 선별했다. 평소 인디 뮤지션과 언더 그라운드 음악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은 차트다. 슈게이징을 대표하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의 Loveless(1991)가 1위로 선정되었고, 라디오 헤드와 비요크(Bjork), 포티쉐드(Portishead), 다프트 펑크(Daftpunk), 에이펙스 트윈(Aphex Twin)과 DJ 섀도우(DJ Shadow) 등 30년이 지난 지금도 음악팬들의 열렬한 추앙을 받는 뮤지션들이 대거 출현한다. 이는 당시 대중들의 장르적 편식이 심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지표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Loveless 앨범©longlivevinyl.net








프렌즈와 섹스 앤 더 시티


90년대를 강타한 수많은 시리즈물이 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은 프렌즈(1994)와 섹스 앤 더 시티(1998)다. 둘 다 청춘 남녀들의 해프닝을 주로 다루고 있기에, 90년대 패션 무드에서 그들의 아웃핏은 놓칠 수 없는 단골손님.



프렌즈의 제니퍼 애니스턴©harpersbazaar.com, ©vogue.com




특히 프렌즈의 레이첼 역을 맡은 제니퍼 애니스턴(Jennifer Aniston)과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사라 제시카 파커(Sarah Jessica Parker)의 패션은 대단하다. 레이첼의 착장이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패셔너블함의 정석이라면, 캐리의 패션은 상대적으로 모험적인 색채가 짙다. 특히 후자는 오랜 역사를 가진 럭셔리 브랜드의 아이템들을 훑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다. 캐리의 착장에서 보이는 Fendi의 바케트 백이나 아티스틱한 슈즈들은 또 하나의 즐길 거리.



섹스 앤 더 시티©racked.com, ©footwearnews.com




그렇다면 영화계는 어떨까. Box Office Mojo에서 공개한 90년대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영화들을 살펴보면,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익숙한 작품들이 많다. 타이타닉과 스타워즈: 에피소드 1(1999), 쥬라기 공원(1993)과 인디펜던스 데이(1996), 라이온 킹(1994)이 1위부터 5위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으니. 가장 놀라운 건 1위인 타이타닉의 수익이 2위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의 수익의 약 두 배인 18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2조에 가까운 수입을 벌어들였다는 점이다. 또한 라이온 킹이 5위에 당당히 랭크된 걸 보면 90년대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가 얼마나 강력한 파급력을 보여주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영화 타이타닉©edition.cnn.com




하지만 영화가 단지 흥행이 전부인가. 아니다. 작품성과의 균형을 추구한 영화들도 친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90년대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에서 눈에 띄는 영화는 양들의 침묵(1991)과 포레스트 검프(1994), 쉰들러 리스트(1993)와 아메리칸 뷰티(1999)다. 특히 타이타닉은 1997년에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 무려 11개가 넘는 부문을 수상해 대중과 평단을 모두 사로잡은 명작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아카데미는 뭔가 상업적 냄새가 물씬 풍겨 아무래도 불편한 시네필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90년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들 중 세 편을 추려보기로 한다. 펄프 픽션(1994)과 영원과 하루(1998), 그리고 로제타(1999).



영화 양들의 침묵(위)과 로제타(아래)©janusfilms.com







슈퍼 모델과 슈퍼 브랜드


드디어 우리의 종착지. 90년대의 패션계는 어땠을까? 80년대의 트렌드가 밝은 컬러감, 펑크와 디스코 풍 등 다소 과격한(?) 시도의 연속이었다면 90년대는 보다 안정적인 무드가 지배적이었다. 그동안의 혼돈에서 탈출해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느낌이다. 특히 특별한 장식 없이 신체의 실루엣을 부드럽게 감싸는 슬립 드레스는 거의 90년대 전반을 통틀어 가장 자주 활용된 아이템. 남성들은 흐트러진 헤어와 최소한의 테일러링으로 쿨하고 와일드한 분위기를 강조한 게 특징이다.



90년대를 대표하는 셀럽들의 스타일©instyle.com, gq- ©magazine.co.uk




스타일도 스타일이지만, 그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패션 아이콘들의 대활약이다. 당시 패션계의 가장 큰 화두는 브랜드 네임도 아닌, 디자인도 아닌, 디렉터도 아닌... 바로 슈퍼 모델들이었다. 린다 에반젤리스타(Linda Evangelista)와 신디 크로포드(Cindy Crawford), 나오미 캠벨(Naomi Campbell), 크리스티 털링턴(Christy Turlington), 그리고 이들과 동시대에 활동한 건 아니지만 헤로인 시크의 대명사, 케이트 모스(kate Moss)까지. 그 들은 마치 과거의 자신의 파워풀한 행보를 증명이라도 하듯 최근 패션쇼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해 시들지 않는 저력을 과시하는 중이다.



VERSACE 1991 FW에 등장한 린다, 신디, 나오미, 크리스티©edition.cnn.com


Dolce & Gabbana 2024 FW에 등장한 나오미 캠벨©vogue.com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90년대 케이트 모스의 아웃핏©vogue.co.uk



그 어느 때보다 창작자의 철학에 관심을 보이는 요즘, 2024년의 런웨이에도 90년대의 안티패션과 미니멀리즘, 해체주의적 뉘앙스를 담은 의상들이 나타난다. 멀끔하게 정제된 무드보단 인간의 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쪽을 택하여 지루함을 환기하고 획일성을 소거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COMME des GARCONS과 YOHJI YAMAMOTO, MAISON MARGIELA, HELMUT LANG이 있다. 열정과 패기로 가득한 그들의 런웨이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지금이야 이런 신박한 개념들이 여러 과정을 거쳐 대중들의 신임을 얻어내는데 성공했지만, 당시만 해도 이건 전례 없는 혁명이었다. 지금의 패션계가 필사적으로 90년대를 쫓는 이유는 이런 순도 100프로의 자유를 다시 한번 만끽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COMME des GARCONS 1993 FW, YOHJI YAMAMOTO 1999 SS
MAISON MARGIELA 1997 FW, HELMUT LANG 1997 SS©vogue.com



과거는 참 이상하다. 흐릿해지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고, 설령 경험하지 못했더라도 묘하게 반갑다. 그래서인지 매번 아쉬움만 남는다. 그러나 지나간 것은 더 이상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저 그리워해야 할 뿐이다. 그럼으로서 깨닫는다. 나는 이미 멀리 흘러왔지만, 마음의 일부는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음을. 그렇게 우린 지나간 과거를 믿으며 미래를 향한 서툰 걸음마를 내딛는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젠테스토어 바로가기

작가의 이전글 쿨하고 와일드한 하루키의 패션 취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