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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가 섹시가 되기까지,
안경의 찬란한 역사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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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가 섹시가 되기까지, 안경의 찬란한 역사




이것은 안경이다.



1.jpg ⓒKuboraum



이것도 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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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toast.com


이것 역시 안경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것은 안경을 착용한 사람의 이미지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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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주 오래 전 안경을 쓰고 공부를 하던 학자를 묘사한 그림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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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화가 렘브란트(Rembrandt)의 그림에서도 안경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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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경이라는 한 단어, 두 개의 음절로 이 방대한 역사를 담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다.


습관처럼 착용하는 안경. 생각해 보면, 단 두 개의 렌즈로 시력을 교정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신비한 기능 때문일까, 한때 안경은 ‘악마의 도구’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유구한 세월 속에서 안경은 사랑을 받기도, 외면당하기도 했다. 지금처럼 균형 잡힌 모습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의 눈을 보호해 주는 소중한 도구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렌즈와 안경테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이야기를, 안경의 탄생 배경변천 과정, 그리고 네 명의 아이콘을 통해 풀이한다.





수 세기를 거듭한 진화: 얇은 렌즈에 담긴 비밀


때는 기원후 1세기, 고대 로마의 극작가이자 철학자인 세네카(Seneca the Younger, 4 BC ~65 AD)는 물을 채운 유리구슬을 작은 글씨 위에 올려두면 확대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읽는 데 사용하는 것보다는, 확대경, 혹은 태양열을 모아 환자를 소독하는 역할을 했다.


ⓒbritannica.com, ⓒbritishmuseum.org



렌즈의 시력 보조 가능성을 최초로 기술한 이는 알하젠(Alhazen 956~1038)이라는 11세기의 아라비아 수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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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하젠이 진행했던 실험, 최초의 옵스큐라로 추측된다.


그의 저서 『시각론 Opticae Thesaurus』에는 눈의 구조와 빛의 굴절과 렌즈에 대한 지식이 촘촘히 채워져 있었고 라틴어로 번역되어 수도원에 전해졌다. 그리하여 수도사들이 더욱 연구에 매진할 수 있게 된 것. 이때까지는 눈앞에 가져다 대는 방식이 아니라, 읽을거리 위에 올려두고 확대해서 보는 거였다면, 1260년에서 1280년 사이에는 눈앞에 렌즈를 두는 안경의 원형이 탄생했다.


ⓒquora.com, ⓒmusée de la lunette



초기의 안경은 손에 들어서 사용을 하거나, 코에 조심스레 얹어서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두 개의 렌즈에 달린 두 개의 봉이 못(Clou)에 의해서 고정되었다. 이러한 가위를 닮은 안경을 ‘크루앙(Clouantes)’이라고 불렀다. 훗날 코에 얹을 수 있도록 렌즈와 렌즈 사이를 이어주는 브리지로 연결된 안경은 15세기에 급속도로 퍼져나갔으며, 중세 시대 때 읽고 쓰기가 가능했던 신학생과 수도승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즉, 안경의 특권적인 사용이 안경을 착용했을 때 풍기는 지식인의 모습을 자연스레 연상시키게 된 것이다.



ⓒwikimedia.org, ⓒtimetoast.com


그러나 우리가 아는 안경의 모양, 렌즈와 테, 코다리와 다리가 있는 모양은 18세기에 들어서야 고안되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의 안경은 언제쯤 발견되었을까? 조선의 임진왜란 전후로 들여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안경은 조선의 사신 김성일 선생의 것.


11.jpg ⓒ실학박물관

김성일의 안경과 안경집





안경을 벗어 예의를 갖추시오:

유교의 법칙을 거스르지 말 것


조선에서 안경 착용하는 일은 서양과는 달랐다. 조선은 유교의 나라이지 않은가! 예절에 대한 뚜렷한 관념이 있던 조선에서는 자신보다 윗사람 앞에서 안경을 착용하는 것을 불경하다고 여겼다. 잠시 안경을 접어두어야 할 때는 안경집을 활용했고, 따라서 안경집이 장신구로 활용되었다. 이는 양반과 지식인 계급을 나타내는 징표, 신문물을 빠르게 수용하는 진보의 상징으로 읽혔다. 이러한 역사는 당시의 책가도와 풍속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화재청, ⓒ에밀레 박물관

채용신, 황현의 초상 1911, 18세기 초 책가도

ⓒ간송미술관

김득신, 밀희투전, 1754


시공간을 종횡하며 비로소 나의 얼굴에 안착한 안경. 그간의 길었던 여정을 되짚어보았다. 안경의 무궁한 변천을 살펴보면서, 인간에게는 시력을 보조해 줄 도구가 뼈저리게 필요했다는 것을 느꼈다. 아니 그럼, 라식과 라섹이 있는 지금, 혹은 먼 미래에 알약 하나만 꿀꺽 삼키면 시력이 1.5 이 되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안경은 과연 없어질까? 그건 아닐 것이다. 왜냐고? 안경은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데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네 명의 아이콘과 여덟 개의 눈


맬컴 엑스의 하금테: 투쟁의 끝이 죽음일지라도


39살의 젊은 나이에 정확히 16발의 흉탄을 맞고 쓰러진 맬컴 엑스(Malcom X). 그는 1953년부터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1965년까지 급진적 흑인해방을 주장했던 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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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컴이 태어나기 전부터 세상은 폭력으로 물들어있었다. 아버지의 형제들이 백인 우월주의자의 소행으로 살해당한 것. 그의 학창 시절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는 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자퇴 후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고자 보스턴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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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를 위해 온갖 일을 닥치는 대로 했고, 심지어는 범죄에 휘말리기까지 했다. 맬컴 엑스가 절도로 체포되어 수감 중이던 때, 형으로부터 받은 편지 한 통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gettyimages, ⓒAP photos



바로 이슬람 국가운동(Nation of Islam- 흑인 분리주의 종교운동)을 소개하는 서신. 맬컴은 이에 크게 매료되어 국가 운동에 열렬히 참여하며 조직의 몸집을 불리는 데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뜨겁고 치열했던 맬컴 엑스는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명해지면 유명해질수록 개인의 안전은 보장되기 힘들다는 것. 늘 살해 위협을 당했지만, 그는 몸을 사리지 않았다, 더욱 강경하게 투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맬컴과 이슬람 국가 운동 소속 간부 간의 의견 충돌이 잦아졌고, 이 둘은 결국 결별을 선언했다.

그리고 1965년 2월의 어느 날, 뉴욕 맨해튼에서 연설을 시작할 무렵, 그의 삶은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aljazeera.com, ⓒAssociated Press



맬컴의 투지, 강인함과 카리스마를 더욱 돋보이게 했던 것은 그의 시그니처 룩 덕분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진에서 동일한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192cm나 되는 큰 키를 강조하는 검정 혹은 회색의 깔끔한 수트와 넥타이 혹은 보우 타이, 짧게 자른 머리, 그리고 그의 하금테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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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classics



1950~60년대 미국 안경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하금테 안경. 상단부는 주로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눈썹 뼈를 타고 흐르기 때문에 브로우라인 안경(Browline Glasses)로 불리기도 한다. 눈썹이 뚜렷해 보여 강인한 인상을 남길 수도 있다. 이점이 이뿐일까, 상부와 하부가 분리되었기 때문에 착용하는 사람의 니즈에 맞춰 안경의 전면부와 다리의 종류, 길이 등이 자유자재로 커스텀이 가능했다. 이제는 내 골격에 맞지 않아도 꾹 참으며 착용하던 메탈 안경을 억지로 쓰지 않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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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yorker.com, ⓒab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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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ite.tistory.com



실제로 맬컴 엑스는 아메리칸 옵티컬(American Optical)에서 출시된 서몬트(Sirmont)를 여러 개 소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 맬컴 엑스 안경은 하금테 안경과 동의어로 쓰일 정도다. 해당 안경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다름 아닌 프론트의 끝부분을 장식하는 ‘윙 리벳 Wing Rivet’. 이는 독수리 날개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독수리는 미국 정부의 공식 인장의 중앙에 배치될 만큼 중요하며, 힘과 용기 그리고 자유와 평화를 상징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본인이 지키고 싶었던 삶과 희망을 응시했던 맬컴 엑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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