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es: Fashion Has No Age
Stories: Fashion Has No Age
10년 후의 나는 어떤 옷을 입고 있을까?
10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곧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며 먼 미래의 나의 모습을 그려본다.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어떤 집에 살고 있을까.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는 찾았을까. 혹시 아이는 있을까. 그렇다면 이런 질문은 어떠한가? 10년 후의 나는 과연 어떤 패션을 즐기고 있을까.
사실 너무 먼 이야기라 감도 잡히질 않는다. 하지만 이 흥미로운 상상을 이대로 멈출 순 없다. 걱정마라. 이미 우리에겐 모범이 되어줄 만한 수많은 선생님들이 있다. 우선 자신의 취향을 꾸준하고 견고히 다져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전설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펑크를 향한 그녀의 외길 인생은 컬렉션은 물론 자신의 평생의 패션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쇼가 끝난 뒤 피날레에 등장한 그녀의 모습은 볼 때마다 감동스럽다. 어쩜 저렇게나 펑키(Punky) 할까. 만약 펑크가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비비안 그 자체일 것만 같다.
지금은 MAISON MARGIELA에서 활약 중인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역시 마찬가지다. 패션계에 발을 들여놓은 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그의 패션은 한결같이 반짝인다. 어떤 스타일이라고 섣불리 단정할 수 없지만, 단 하나의 착장도 빠짐없이 갈리아노의 느낌이 서려있다. 아무나 시도 못할 난해한 차림과 모자, 그리고 꾸꾸꾸의 화려함이 그의 패션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블랙 하면 생각나는 요지 야마모토(Yamamoto Yohji)와 레이 가와쿠보(Rei Kawakubo)도 빠질 순 없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오직 블랙만을 고집하며 세상 그 누구보다 블랙을 세련되게 다룰 수 있는 법을 깨달았다. 그들의 컬렉션에서 느껴지는 블랙의 다양한 면모가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꼭 남들과 다른 독특한 취향을 고집해야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스타일이던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찾아 묵묵히 이어나가는 것이야말로 청춘과는 또 다른, 중장년 스타일의 묘미. 톰 포드(Tom Ford)와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이 그렇다. 어딜 가나 정갈한 슈트 셋업을 고집하는 톰 포드와 절제된 클래식 룩의 정점을 보여주는 드리스 반 노튼에게서 우린 노련한 우아함을 배운다.
패션도 인생과 똑같다. 다양한 경험 속에서 좌충우돌하며, 때론 실패도 해보며 한층 더 성장하듯 패션도 그렇다. 이런저런 스타일에 도전하며 여러 번에 시도를 거쳐 마침내 자신만의 스타일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부턴 트렌드를 뛰어넘는 연륜이 느껴지는 언니 오빠들을 만나볼 차례.
딸이 우리 사진을 찍어서 자신의 SNS에 올렸어요. 너무나 많은 댓글 덕분에 우리도 계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더군요. (The Guardian, 2018년 5월)
현재 90만에 육박하는 팔로워를 보유한 Bon과 Pon. 그들은 각자의 애칭과 결혼기념일인 5월 11일을 합쳐 bonpon511이란 계정을 운영 중이다. 현재 60대 후반인 이 커플은 아름다운 커플룩을 선보이며 대중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마치 둘이 애초부터 하나였던 듯, 각자 의상의 색상과 스타일을 통일해 소소히 꾸려가는 커플 아이템들이 그들의 스타일 포인트. 단순한 디자인과 잔잔한 패턴에 강렬한 컬러 하나를 더해 매칭하는 게 장기다. 단지 둘의 옷차림만이 전부가 아닌 주변 환경과의 어울림도 고려한다는 그들의 철학에서 깊은 연륜이 느껴진다.
모든 남자들이 아론 르빈(Aaron Levine)처럼 옷을 입고 싶어 한다, 유명 패션 매거진 GQ는 그에게 이러한 찬사를 보낸다. 오랜 기간 패션 업계 종사자로 활동하고 있기에 자연스레 탑재된 센스도 있겠지만 그의 스타일엔 분명 남다른 뭔가가 있다.
비결은 바로 기본에 충실한 아이템과 적재적소에 가미해 주는 액세서리들이다. 데님과 클래식한 재킷, 치노와 아방가르드한 아우터로 색다른 조화를 이끌어냄과 동시에 선글라스와 모자까지 활용해 유니크한 스타일링을 선보인다.
패션계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끼쳤던 스타일 아이콘 아이리스 아펠(Iris Apfel)은 또 어떠한가. 슬프게도 올해 초 10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현재 무려 300만 팔로워를 보유한 그녀의 SNS 속 아웃핏의 기록들은 놀라움을 넘어서 경이롭다. 대담한 컬러매치는 물론 화려한 패턴까지 자유자재로 다루며 무난히 소화해내고 있으니.
또한 시그니처와 다름없는 빅 사이즈의 아이웨어는 그녀를 ‘아이콘화’ 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깔끔하게 빗어 넘긴 짧은 백발 헤어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자신을 대표하는 헤어와 아이템을 부지런히 서칭하고, 그것을 체화시키는 것 역시 패셔너블한 노후를 즐기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
말 그대로다. 이제 나이는 정말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패션에 대한 애정과 시들지 않는 감각, 그리고 자신의 강점을 재빠르게 캐치하여 그것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이들이 바로 중장년 층의 모델이다.
요즘 패션계는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다양한 연령대의 모델들을 런웨이에 세우기 시작했는데, 올해 초 파리 패션 위크에서 BALMAIN은 전체 57명의 모델 중 20명을 35세 이상으로 구성하는 파격적인 연출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미 삶을 살아온 여성에게도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습니다. 저는 이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단지 살아갈 날이 전부인 어린 소녀가 아닌, 과거를 살았고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그런 여성을 말이죠. (BALMAIN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올리비앙 루스테잉)
Chloé와 MIU MIU, VETEMENTS 도 중장년층 모델의 기용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자연스러운 주름과 백발을 지닌 모델들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무대 위를 걷는 장면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한다. 의상과 더불어 시대를 살아오며 겪었던 저마다의 사연과 경험까지 함께 관객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입은 옷이 영 맘에 들지 않아도, 아직 이렇다 할 나만의 스타일을 못 찾았다 할지라도, 아니 패션 자체에 대해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을지라도 상관없다. 이런 소소한 시행착오들이 결국 우리의 패션 감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훌륭한 밑거름이 될 테니까. 또한 잊지 말자. 패션 역시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함께 하는 중요한 가치들 중 하나라는 걸.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