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LAB: OUR LEGACY
Brand LAB: OUR LEGACY
우리만의 언어를 찾아 떠나는 여정
우리도 우리의 성공을 예상하지 못했다.
최근 이 브랜드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오죽하면 창립자들 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수준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으니까. 2005년 설립 이래, 수많은 마니아들을 양산하며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OUR LEGACY. 이쯤 되면 반드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하지 않을까.
스웨덴 스톡홀름을 기반으로 한 OUR LEGACY는 청소년기에 같은 하키팀 소속으로 연을 맺게 된 조쿰 할린(Jockum Hallin)과 크리스토퍼 나잉(Cristopher Nying), 그리고 창립 초기에 합류한 리샤르도스 클라렌(Richardos Klarén). 이 셋의 절묘한 궁합이 돋보이는 브랜드다. 할린과 나잉이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을 수행하며 브랜드 내 창의성을 담당하고 있다면, 클라렌은 실질적인 경영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 현재 본사가 위치한 스톡홀름 이외에도 런던과 베를린, 한국에도 3개의 매장을 오픈하며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장 중이다.
OUR LEGACY엔 분명 특별한 것이 있다. 그들의 컬렉션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면 누구라도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자유. 나는 감히 이런 답을 내리려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컬렉션엔 트렌드를 의식하는 아이템이 전혀 없다. 매해 주제와 목표에 충실함과 동시에 이전 그들의 작업에서 영감을 받아 적절히 변형되거나, 몇몇 시그니처 아이템들이 변치 않고 고스란히 재탄생된다. 바로 이 지점이 놀랍다. 그들은 새로움이란 강박으로부터 너무나 자유롭다. 그리고 이로써 이전 세대의 유산을 우리 시대에 맞게 조정하리라는 신념을 담은 브랜드 네임, OUR LEGACY의 정신을 철저히 지켜낸다.
사실 스웨덴 하면 북유럽 특유의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이를테면 실용과 절제를 덕목으로 한 간결하고 담백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게 정석이다. 스웨덴 발 유명 브랜드 IKEA나 TOTEME처럼 말이다. 하지만 OUR LEGACY는 다르다.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미니멀리즘과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인상주의가 번성했던 20세기 초반 스웨덴을 떠올리게 만드니까. 기존의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거부하고 다소 거친 화폭을 추구하면서도, 그 안에 스며든 색채와 색조, 질감에 몰입했던 인상파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OUR LEGACY의 가장 큰 승부수는 따로 있다. 바로 가격이다. 하이패션 브랜드치고는 타 브랜드보다 저렴한 가격대가 바로 이들의 결정적인 장점이다. 그렇다고 디자인과 품질이 하향 평준화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수하다는 평판을 받고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OUR LEGACY의 가격은 매우 합리적이다. 아마 그들의 제품을 직접 착용해 보면 자연스레 깨닫게 될 것.
사실 OUR LEGACY는 2012년, 일 년의 휴식기를 가졌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에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보시다시피 성공적. 90년대 무드를 바탕으로 대중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스케이트 보드와 서핑, 펑크와 하드코어, 힙합과 스트릿웨어 등 시대를 아우른 문화적 요소들을 적극 반영해 유니크한 분위기를 쟁취한다.
특히 최근 5년 간의 컬렉션은 OUR LEGACY의 인기가 한 때 반짝하는 거품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다. 그런지와 락, 90년대 실루엣처럼 낭만적인 모티브의 의상들로 가득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남성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군용 의류와 스포츠 웨어들을 해체하여 부드러운 느낌을 자아내고 무채색과 포인트 컬러들을 적절히 활용해 결코 지루하지 않은 룩을 선보인다.
2024 FW는 친구들과의 오붓한 저녁 식사 시간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Feast란 제목으로 진행된 이 런웨이는 자신들의 과거 런웨이인 2019 FW Chambre Separée로부터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디렉터 나잉의 말에 따르면, 2019년 비슷한 컨셉의 무대에 섰던 캐릭터들이 몇 년 후 성장하여 다시 모이게 된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고 한다. 한 때 젊고 풋풋한 이들의 화려했던 축제가 보다 성숙한 연회의 현장으로 재해석된 것. 이런 소소한 스토리가 스며있는 런웨이라니!
가장 최신 컬렉션인 2025 SS는 독특한 무대 장치를 이용해 관객의 시선을 끈다. 거대한 유리벽 뒤에 서 있는 모델들의 모습은 디지털 시대에 대한 은유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본 컬렉션을 주도했던 디렉터 나잉은 이 기발한 아이디어의 출발점이 그리스의 한 어촌 마을이라고 언급한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와 젖은 듯한 룩을 구현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고. 이 모든 건 몽환적인 꿈 속을 탐험하는 느낌을 전달하기 위한 치밀한 연출이다.
OUR LEGACY하면 몇 가지의 시그니처 아이템들을 빼놓을 수 없다. 루즈한 핏과 편안한 착용감을 자랑하는 리넨 재킷, 부담스럽지 않은 길이와 부드러운 스퀘어 토 모양으로 오래오래 두고두고 신을 수 있는 Camion 부츠, 꾸준히 수요가 높은 데님 라인 중 가장 히트 아이템인 Third Cut 데님은 와이드 스트레이트 핏이 가진 장점을 모두 갖춘 데님계의 역작이다. 스키니 핏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와이드 핏 연구에 집착했던 과거의 그들이 선사한 선물 같은 아이템.
뿐만 아니다. 보그 비즈니스(Vogue Business)의 2023년 11월 기사에 따르면, OUR LEGACY가 대성할 수 있었던 중요한 조건으로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꼽는다. 언제나 도전적이며 실험적인 태도로 패션을 대했던 그들의 철학이 여실히 느껴지는 부분이다. 디렉터 할린은 이러한 협업이 재정적으로 드라마틱한 영향을 주진 않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알게 된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고 밝힌다.
헌데 그들이 협업을 진행하는 방식이 참으로 신박하다. 브랜드가 성장함과 동시에 주문량과 생산량이 늘어가면서 재고가 쌓여가기 시작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6년 Our Legacy Work Shop이라는 세컨드 브랜드를 런칭하여 과잉 재고들을 업사이클링한 제품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업사이클링하는 과정에서 협업이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OUR LEGACY의 재고를 STUSSY가 시선으로 재해석 한다고 보면 된다. 지속 가능성을 향한 브랜드의 진심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만나 환상의 케미를 이뤄낸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아주 작은 브랜드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고객들이 의지할 수 있는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OUR LEGACY)
그들은 패션을 또 다른 언어라 표현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충분히 말을 대신할 수 있는 귀중한 소통의 도구로 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OUR LEGACY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가만히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찬란히 빛나는 시대의 유산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