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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시크의 대모

Brand LAB: Isabel Marant

Brand LAB: Isabel Marant
프렌치 시크의 대모




자신도 입지 않을 것 같은 옷을 다른 사람에게 입히려 하지 마세요. 올해 30주년을 맞은 브랜드 Isabel Marant은 패션에 대해 그 누구보다 진심이다.


1.jpg Isabel Marant의 디렉터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 ⓒtelegraph.co.uk





유명인들의 끊임없는 구애


그리고 진심은 언제나 통한다. 30년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Isabel Marant을 향한 추종자들의 열렬한 사랑은 여전히 그칠 기미가 없으니. 게다가 아무나도 아니다. 케이트 모스(Kate Moss), 시에나 밀러(Sienna Miller), 케이트 보스워스(Kate Bosworth), 알렉사 청(Alexa Chung) 등 하나같이 패션 역사에 길이 남을 레전드들이다.


2.jpg 08FW 캠페인에 참여한 케이트 모스 ⓒvogue.fr
3.jpg Isabel Marant의 셰어링 코트를 걸친 시에나 밀러 ⓒshopltk.com, Isabel Marant 스웨터를 착용한 케이트 보스워스 ⓒstealthelook.com.br


2012년, 내가 열렬히 사모하던 밴드인 블론드 레드헤드(Blonde Redhead)의 콘서트를 보러 갔던 때였다. 노래도 노래지만 보컬 카주 마키노(Kazu Makino)의 패션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마치 황폐한 미국 서부 사막에 불시착한 천사 같았거든. 이후 도무지 그 차림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미친 듯이 인터넷 서핑을 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게 전부 Isabel Marant 풀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난 충격에 휩싸였다. 세상에 저런 느낌을 옷으로 실현하는 브랜드가 있다니.


4.jpg 블론드 레드헤드의 보컬 카주 마키노 ⓒelle.com
5.jpg 이자벨 마랑(왼)과 그녀의 뮤즈, 카주 마키노(오) ⓒpinterest


그때부터였다. 내가 본격적으로 Isabel Marant의 행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과장 하나 없는 자연스러움자유롭고 방랑적인 무드, 능동적으로 진화된 페미닌함,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이 모든 매력들을 설립 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지켜가고 있다는 것. 바로 이 지점이 Isabel Marant을 추종할 수밖에 없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가 아닐까.


6.jpg Isabel Marant의 스터드 재킷을 선택한 딕시 다멜리오(왼)와 레슬리 쇼츠를 입은 두아 리파(오)
7.jpg 셔츠 재킷을 걸친 메러디스 덕스버리(왼)와 덴비 하이 부츠를 신은 벨라 하디드(오) ⓒstarstyle.com





태생부터 패셔니즘


이건 조금 의외인데, 이 위대한 디자이너의 장래희망은 사실 수의사였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은 숨길 수 없는 법. 유년시절 그녀의 일상은 패션을 향한 비범함으로 가득했다. 부모가 챙겨주는 여성스러운 옷은 전부 거부하고, 교복조차 싫어 사복을 따로 챙겨 다닐 정도. 때문에 학교에선 괴짜로 통했다. 당시의 그녀의 롤모델은 펑크 뮤지션 패티 스미스(Patti Smith). 당시 유행했던 뉴 웨이브 뮤지션들의 실험적인 음악과 패션에 도 깊이 빠져 있었다고 하니 평범한 차림일리가 없지 않았겠는가.


8.jpg 패티 스미스 ⓒculturacolectiva.com


이런 뚜렷한 취향 덕분인지 상점에서도 맘에 드는 옷을 통 찾기가 힘들었던 이자벨 마랑. 그렇다면? 직접 만들어 입으면 될 일이 아닌가. 그녀는 아버지를 졸라 재봉틀을 장만했고 안 입는 옷과 자투리 천으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한 인터뷰(British VOGUE, 2012년 7월)에서 ‘나는 그때까지도 패션이 뭔지 잘 몰랐었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역시는 역시. 그녀의 남다른 능력은 어느새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번지기 시작했고 친구들이 따로 제작을 부탁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16세 때는 당시 남자친구였던 크리스토프 르메르(Christophe Lemaire)... 맞다. 우리가 다 아는 프랑스 브랜드 LEMAIRE의 수장, 그 크리스토프다. 둘은 음악과 패션이라는 교집합으로 맺어져 영감의 상당 부분을 공유했고, 함께 옷도 제작해 매장에 위탁 판매를 하기도 했었다. 물론 당시엔 둘의 취미 생활에 불과했겠지만, 현재는 둘 다 엄청난 거물이 되어 있으니 참으로 신기한 인연. 게다가 이 두 브랜드의 열렬한 팬으로서 둘이 같이 만든 작품이 어떤 모습일지 너무나도 궁금하다.


9.jpg Isabel Marant의 초창기 로고(왼), 1997년 베스트 디자이너 어워드를 수상한 이자벨 마랑(오) ⓒisabelmarant.com


이후 파리의 유명 패션 스쿨인 Studio Berçot에서 패션으로 학위를 받은 그녀는 1994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Isabel Marant을 런칭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5년 SS 시즌, 친구들을 모델로 내세워 호기롭게 데뷔를 마친다. 이후 1998년에는 파리에 첫 매장까지 오픈하는데, 설립 초반엔 매해 30%씩 매출이 증가했었다고 하니 패션계에 제대로 눈도장을 찍은 건 확실한 셈.


10.jpg 1998년, 파리에 첫 번째 매장을 세우다 ⓒisabelmarant.com





프렌치 시크의 대명사


이젠 프렌치 시크하면 곧장 Isabel Marant이 떠오를 만큼, 날고 기는 브랜드들이 가득한 패션계에서 이 브랜드는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그녀가 이러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단 두 조건으로 추려볼 수 있겠다. 일관된 무드와 품질.

아마 패션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Isabel Marant의 옷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스타일은 타 브랜드와는 조금 다르다. 보헤미안 베이스에 락 시크 스타일을 가미한, 나아가 화려한 장식과 프린트로 러블리함까지 더한 것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그들만의 컬러가 분명 존재한다.


11.jpg 24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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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jpg 23FW ⓒvogue.com


최근 25SS의 Isabel Marant은 보다 야성미를 강조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트라이벌리즘에 입각하여 평소 장기인 펑키한 무드를 실현해 낸 것. 프린지 장식의 스웨이드 드레스와 스터드가 달린 검정 레더 팬츠, 거친 느낌을 살린 블루종과 시그니처인 미니드레스까지. 마치 오지에 사는 강인한 여성 부족의 느낌이 물씬 풍김과 동시에 소재와 기술력으로 다져진 세련됨이 묻어나는 점이 돋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sabel Marant의 DNA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점이 킬링 포인트.


14.jpg 25SS ⓒvogue.com


그녀는 패션은 결국 인간의 손 끝에서 나온다는, 장인 정신의 신봉자로도 알려져 있다. 장식에는 수공예적 느낌을 철저히 살리고 대신 실루엣과 소재는 최대한 편안함을 강조하는 데에 집중한다.
패션을 산업이라고 부르지만 그 뒤에는 항상 사람이 있고, 인재들이 있고, 오랜 시간 동안 쌓인 그들의 내공이 있어요. (이자벨 마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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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jpg 25RESORT, 23FW ⓒvog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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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jpg 21FW, 2023년에 런칭한 OSKAN 문백 ⓒisabelmarant.com


이러한 맥락에서 Isabel Marant의 또 다른 특징이 발견된다. 바로 지나치게 미래적인 것엔 관심이 없다는 것. 오히려 그들은 과거의 산물들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데에 깊이 매료되어 있다. 특히 맨즈 라인에서 자주 목격되는 민속적 모티브가 바로 그 증거다. 이에 약간의 그런지함을 더하면 과거와 현대가 색다른 시너지를 내는 엄청난 광경이 펼쳐진다.


19.jpg 25SS
20.jpg 23PRE-FALL ⓒvogue.com


또한 그들의 무드는 충돌의 미학을 여실히 드러낸다. 말 그대로 얼핏 보았을 때 서로 상반되는 것들, 이를테면 부드러운 벨벳과 거친 가죽, 군용 스웨터와 플라워 프린트 등 서로 어울리지 않을 법한 것들을 한데 모아 기막힌 조합을 이끌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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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jpg 24FW
23.jpg 22FW ⓒvogue.com


프렌치 시크의 정수라고 불리우는 이자벨 마랑의 스타일링은 꾸안꾸의 원칙을 철저히 답습하고 있다. 헝클어뜨리고 망가진 것처럼 보이게 하는 데에, 나아가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에 오히려 너무 많은 시간을 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완성된 런웨이를 보면 바로 납득이 간다. 이것이 바로 Isabel Marant이 말하는 프렌치 무드다. 너무 완벽하지 않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갖고 싶은.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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