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es: The Substance
Stories: The Substance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더 나은 당신을 꿈꿔본 적 있는가? 최근 화제가 된 영화 서브스턴스(2024)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낱낱이 파헤친다.
올해 최고의 미친 영화라는 자극적인 타이틀로 관객을 유혹하는 영화 서브스턴스. 평론가인 듀나와 이동진의 말을 빌려 한줄평을 적어보자면,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할 길만 골라서 가는 두 주인공’들의 ‘막 나가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에 감각적인 영상미와 연출, 배우들의 열연을 곁들인. 어쨌든 결론은 올해 최고의 미친 영화 맞다.
한 때 헐리우드 대스타였지만 현재는 TV 에어로빅 쇼나 진행하는 퇴물 취급을 받고 있는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어두워진 미래에 조급해진 그녀는 이를 극복하고자 낯선 이에게 우연히 권유받은 정체 모를 약물, 서브스턴스에 손을 대고 만다. 단 한 번의 주사면 더 나은 나로 거듭날 수 있다는 오묘한 푸른빛의 서브스턴스. 하지만 그 결과는?
허나 진짜 재밌는 건 영화가 끝나고 난 뒤부터다. 아마 극장을 나서는 관객 모두가 같은 질문에 사로잡혀 있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에게도 이 약이 주어진다면, 과연 사용할 것인가? 우습다. 그 참혹하고 끔찍한 스토리의 결말을 직접 봤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한 번쯤은...이라는 생각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사회라는 견고한 틀 안에 갇힌 우리의 가여운 삶을 조망한다. 이 작품 속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대중의 사랑과 관심의 결핍은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왜곡된 집착을 부르고, 결국 진짜 나조차 놓아버린 채 분열된 자아에 휘둘려 파국을 맞게 되니 말이다. 뒤틀린 외모지상주의로 물든 서브스턴스 속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세상에선 내가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 것조차 너무나 버거운 일이니.
그럼에도 데미 무어(Demi Moore)는 화면 속에서 여전히 반짝인다. 영화 속에선 50세의 나이로 출현하지만, 실제론 62세라 하니 이 정도면 선방한 셈. 나아가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서사가 실제 데미 무어의 삶과 비슷한 곡선을 그리고 있음을 인지한 순간, 놀라움은 배가 된다. 어쩐지 연기가 평소와는 좀 다르더라.
그렇다면 그녀의 리즈 시절은 어땠을까. 두 말하면 입 아픈 영화, 드디어 사랑과 영혼(1990)이 등장할 차례다. 짧은 숏컷과 베이직한 아이템으로 은은하게 멋을 낸 수수함 속에서 청초하게 빛나는 눈망울. 만약 청순 발랄이란 표현이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바로 그녀가 아닐까.
하지만 서브스턴스 속의 데미 무어는 늙고 추하고 기괴하기까지 한 모습으로 관객 앞에 선다. 정말 거침없이 다 놔 버린다. 여배우로서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텐데 말이다. 대체 그녀는 왜 이러한 선택을 한 걸까? 올해 11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os Angeles Times)와의 인터뷰 속에서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영화는 자기 자신에 대한 가혹한 비판과 타인과의 비교로 우리가 스스로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녀는 자신과 타인에게 점점 잔인해지고 있는 이 세상 속 우리들에게 보다 다정하고 관대한 태도를, 나아가 진심어린 존중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젊음을 향한 인간의 갈망은 쉽게 잦아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듯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대신 이 숙명과도 같은 변화를 담대하게 받아들인 멋진 어른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배우 제니퍼 코넬리(Jennifer Connelly)와 커스틴 던스트(Kirsten Dunst)는 나의 무한한 존경을 한 몸에 맡고 있는 이들이다. 리즈 시절의 아름다움은 말할 것도 없고, 중년의 나이로 접어든 지금까지 활발한 연기 활동을 펼치며 식지 않는 열정을 과시한다. 풋풋함은 풋풋함대로, 우아함은 우아함대로. 나이대에 걸맞은 역할을 차례로 섭렵해 가며 자신의 스타일과 장점과 명확히 구축 중이다.
세기의 팜므파탈 모니카 벨루치(Monica Bellucci)와 세기의 섹스 심벌 파멜라 앤더슨(Pamela Anderson)도 마찬가지다. 둘 다 팜므파탈과 섹스 심벌이라는 어마어마한 칭호를 누렸던 레전드들이기에 나이 듦에 대한 부담감이 남들의 몇십 배는 더 했을 것. 하지만 모니카 벨루치는 지금도 주연 단역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연기라는 본업에 충실하고 있으며, 파멜라 앤더슨은 과거의 거추장한 꾸꾸꾸 스타일을 버리고 현재는 노 메이크업의 자연스러움을 어필하며 당당히 대중 앞에 나서는 모습이다.
얼마 전 한국에 진출한 피비 파일로(Phoebe Philo)의 원숙미 역시 닮아가고 싶은 덕목 1순위. 과거엔 Adidas의 스탠 스미스만 착용했을 정도로 엄격한 취향을 과시하던 그녀는 현재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런칭하며 독보적인 취향의 여정을 성실히 진행 중이다.
또한 작년과 올해엔 과거에 이름 좀 날렸던 익숙한 슈퍼모델들의 모습도 자주 목격되었다. 세월이 지나도 그녀들의 아우라엔 흠집하나 남질 않았다. Victoria's Secret 2024 런웨이에서의 케이트 모스(Kate Moss)와 타이라 뱅크스(Tyra Banks)처럼.
노화가 두려운 건 여성뿐만이 아니다. 꽃미남에서 꽃중년을 지향하는 남자 배우들 역시 대중의 집요한 주목을 피해 갈 순 없다. 하지만 그중 투 탑은 아무래도 톰 크루즈(Tom Cruise)와 조니 뎁(Johnny Depp). 탑 건(1986)과 그의 후속작인 탑 건: 매버릭(2022)에서의 톰 크루즈는 그야말로 경이롭다. 무려 36년이란 긴 시간을 사이에 두고도 변치 않는 섹시함을 유지할 수 있다니.
다음은 한결같은 스타일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조니 뎁(Johnny Depp). 비록 그의 사생활은 바람 잘 날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년부터 줄곧 Dior의 향수 Sauvage의 모델로 활동하며 패션계에서의 건재한 영향력을 몸소 증명 중이다. 특유의 방랑자 같은 분위기가 자유와 모험, 그리고 야성미를 추구하는 Dior의 니즈와 딱 맞아떨어진다.
더 나은 나라는 건 누가 정하는 걸까. 나의 호들갑 섞인 추천에 곧장 극장으로 달려간 친구 K가 보내온, 서브스턴스의 짤막한 관람평이었다.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결심했다. 지금 당장 답을 내려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이 간결한 한 문장 따위가, 앞으로 살아갈 우리의 삶을 제멋대로 좌지우지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