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시 샬라메 & 하이더 아커만, 퍼렐 & 니고
Stories: Fashion Muses
각종 가십과 근거 없는 루머들로 가득 찬 연예계와 패션 산업. 그 차갑고도 건조한 세상에서도 서로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끼친 뮤즈이자 우정을 나눈 짙은 관계가 있다.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 차 무심코 지나치기 일쑤인 세상에서 그들이 보인 관계성에 대하여.
어른들은 유년 시절 나에게 흔히 말하곤 했다. 인생을 살아가며 진정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훌륭한 인생을 사는 거라고. 그 시절엔 같은 만화를 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친구를 사귀는 것뿐만 아니라 새 친구를 사귀는 것 또한 쉽지 않은 것임을 절감한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 우정과 성공 두 가지를 모두 손에 쥔 자가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름마저 ‘힙’한 니고(NIGO). 일본 출생 니고의 본명은 나가오 토모아키(Nagao Tomoaki). 그가 쌓은 우정은 어째서 브랜드 성장의 발판이 되었을까.
스트리트웨어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현대 르네상스맨’ 후지와라 히로시(Fujiwara Hiroshi). 그는 독립 스트리트 컬쳐 매거진 타카라지마(Takarajima)에 기고한 월간 칼럼 ‘Last Orgy’로 열렬한 팬층을 얻게 된다. 칼럼의 내용은 패션, 거리 문화 및 디제잉에 대한 논평이 주를 이뤘다. 이 칼럼은 일본 거리 풍경과 문화에 큰 변화를 일으켰고, 도쿄 하라주쿠의 거리 문화를 기록한 일본 심야 방송 시리즈로까지 확장된다. 후지와라 히로시를 우상화하는 팬들의 규모는 급속히 증가했고, 당시 ‘Last Orgy’ 모든 에피소드를 녹화한 열성 팬이 있었으니, 바로 나가오 토모아키, 니고다.
니고는 문화 복장 학원에서 UNDERCOVER의 수장 타카하시 준(Jun Takahashi)을 만나 친분을 쌓았는데, ‘Last Orgy’ 프로젝트의 필수적이었던 타카하시 준을 통해 니고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 후지와라 히로시를 만나 그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는 영광을 얻는다. 아, 역시 될 놈은 된다고 했는가. 그 위치를 공고히 한 니고는 타카하시 준과 함께 ‘Last Orgy 2’를 작업하게 되고 그렇게 얻은 명성과 친분을 통해 1993년 하라주쿠에 ‘NOWHERE’ 매장을 오픈한다. 동시에 니고를 패션신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이끈 결정적 브랜드 ‘A BATHING APE®’ 약자로 ‘BAPE’를 설립한다. NOWHERE는 하라주쿠의 랜드마크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BAPE와 UNDERCOVER는 연일 매진행렬을 기록했다.
후지와라 히로시 그리고 타카하시 준과 니고 세 사람의 연결고리는 스트리트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우라하라의 패션’의 상당한 영향력을 남겼다.
니고가 패션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중학교 1학년이다. 당시 반에서 1등을 하며 우수한 성적을 보였던 그는 최대 관심사가 패션으로 바뀌며 교과서가 아닌 패션 잡지를 읽게 된다. 멋지고 자유분방하게 꾸민 형, 누나들이 페이지 한가득 채워져 있었으니 어찌 빠져들지 않겠는가. 니고가 음악에도 관심을 보인 건 시간문제였다. 패션과 음악은 상호 밀접한 관계로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패션과 음악 밀접성을 보여주는 니고의 20년지기 벗이자 뮤즈인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보석상 제이콥 더 쥬얼러(Jacob the Jeweler)의 소개로 둘의 첫 만남이 성사되었다. 열렬한 힙합 애호가이자 프로듀서, DJ로 활동하고 있는 니고와 음악부터 패션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퍼렐. 둘의 관심사는 공통 분모로 묶인 듯 비슷했다. 스파크를 튀며 급속도로 가까워진 니고와 퍼렐은 적극적인 협력 관계를 맺어 2003년 브랜드 Billionaire Boys Club(BBC) 및 Icecream을 설립한다. 스트리트웨어와 럭셔리의 조합을 이룬 Billionaire Boys Club은 지난달 20주년을 맞이하며 오랜 시간 지속된 둘의 우정을 기념했다.
니고는 멈추지 않는 영감의 힘이다.
- 퍼렐 윌리엄스
SK8THING으로 알려진 나카무라 신이치로(Shinichiro Nakamura)는 니고와 함께 BAPE의 브랜딩을 구축한 그래픽 디자이너다. Billionaire Boys Club 브랜드하면 떠오르는 아이코닉한 우주 비행사 로고 역시 그의 작업물. 니고와 퍼렐의 합작이자 SK8THING의 감각을 더한 Billionaire Boys Club의 다양한 제품은 퍼렐의 뮤직비디오를 비롯해 공식 석상부터 일상 패션까지 단골 손님으로 등장했다. 스트리트 웨어가 대중문화에 스며들기 시작한 당시 Billionaire Boys Club은 당당히 패션 차트에 상위를 기록하며 성공을 이뤄낸다.
창의적인 안목과 세간의 시선을 끄는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명성을 탄탄히 쌓은 니고는 다시 한번 능력을 발휘한다. 그렇게 니고와 SK8THING 손에서 태어난 브랜드 Human Made. 만나기만 했다 하면 폭발적인 시너지를 보이는 퍼렐과 니고는 이번에도 근사한 파트너쉽을 선보였다. adidas x Pharrell Williams, Human Race와 콜라보,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되었던 버질 아블로(Virgil Abloh) Louis Vuitton 2020 Fall 캡슐 컬렉션을 발표하며 연신 화제를 불러모았다.
니고는 내가 패션계에서 만난 최초의 진정한 멘토 중 한 명이다.
- 버질 아블로
니고에게 영감을 일으켰던 뮤즈 한 명만 꼽으라는 질문은 어쩌면 부질없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동경이라는 묘한 감정을 선물한 후지와라 히로시. 함께 한다는 소중한 가치의 타카하시 준. 니고의 드넓은 창의력을 그래픽으로 풀어냈던 나카무라 신이치로. 뮤즈를 뛰어넘어 오랜 친구이자 최고의 파트너십을 주고받은 퍼렐 윌리엄스까지.
뮤즈이자 친구였던 그들이 있었기에 더욱 빛날 수 있었던 니고. 취향을 함께 공유하며 서로에게 영감이 되어준 이들의 관계성이야말로 진정 값진 성공이 아닐까.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버나드 윌헴(Bernhard Willhelm)의 인턴을 거쳐 2001년 자신의 이름을 딴 레이블을 만든 콜롬비아 출생 디자이너 하이더 아커만(Haider Ackermann). 그는 한밤중 목적지 없이 거리를 배회할 때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그렇게 끝없이 걸을 수 있다던 하이더 아커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두 명의 뮤즈가 있었으니.
그들과 대화할 때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 서로를 바라보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으며, 오랜 세월의 우정 끝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항상 서로를 찾고 있다. - 하이더 아커만
설국열차, 케빈에 대하여, 그랜드 부다페스트, 서스페리아 등 수많은 영화에서 관객들을 열광시킨 연기파 배우 틸다 스윈튼(Tilda Swinton). 대담하고 강력한 색채로 서로에게 끌렸던 하이더 아커만과 틸다 스윈튼은 20년 동안 뮤즈와 절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로의 존재가 편하고 당연해지면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때가 종종 있다. 이 둘의 사이가 그렇다. 하이더 아커만이 말하길 우리가 정확히 언제 만났는지는 모르겠으나, 필연적 관계였다는 것은 확신한다고.
하이더 아커만은 드레이프 디테일의 장인이다. 어린 시절 살았던 아프리카 알제리에서 이슬람 여성들이 입었던 검은색 숄 차도르에서 강한 인상을 받은 하이더 아커만은 루즈한 실루엣과 나른한 드레이프를 결합했다. 그리고 그런 드레이프 드레스를 가장 잘 소화한 이가 바로 틸다 스윈튼이다.
압도적인 연기력의 배우 틸다 스윈튼은 179cm 모델처럼 큰 키와 뱀파이어를 연상케 하는 가녀린 흰 피부, 사람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존재감을 확실히 하고 있다. 중성적이면서도 우아함이 흐르는 틸다 스윈튼의 패션에서도 절친 하이더 아커만의 지대한 영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틸다 스윈튼은 하이더 아커만을 만나 친구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패션을 이해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둘은 여행, 비즈니스, 일상을 함께 나누며 서로를 형제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뮤즈-디자이너의 연결을 넘어선 둘의 각별한 우정이 변함없기를 소망해 본다.
그리고 여기 또 한 명의 뮤즈,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뜨거운 배우 티모시 샬라메(Timothee Chalamet)가 있다. 2018년 개봉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며 작은 아씨들, 레이니 데이 인 뉴욕, 듄까지 쉴 틈 없이 달린 그는 어느새 세계적으로 수많은 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대배우로 성장했다.
그런 그의 옆자리를 듬직하게 지키고 있는 이. 햇볕에 그을린 듯한 구리빛 피부를 한 사람이 바로 하이더 아커만이다. 티모시의 팬이라면 아마 인지하고 있을 수도 있을 터. 티모시 SNS 속 네모 한 칸을 떡하니 자리 잡은 아저씨로 말이다. 하이더 아커만과 티모시 샬라메 이 둘은 2017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위한 영화제 행사를 준비하며 처음 만났다고 한다.
티모시 샬라메 베를린 국제 영화제 포토콜을 위해 하이더 아커만은 보라색 스웨이드 재킷을 준비했다. 그는 당시 LVMH 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Berluti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몸담고 있었다. 약 1년 후 파리에서 열린 Berluti 남성복 쇼의 백스테이지에서 하이더 아커만을 다시 재회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티모시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하이더 아커만이 디자인한 화이트 턱시도를 입고 등장했다.
(왼) HAIDER ACKERMANN, (오) Berluti
사실상 티모시는 레드 카펫에서 하이더 아커만의 의상을 독점적으로 착용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베니스 국제 영화제를 비롯해 수많은 공식 석상에서 인상적인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두 사람은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권리를 위한 후드티셔츠를 디자인해 수익금 100%를 비영리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하이더 아커만의 뮤즈 티모시 샬라메가 레드 카펫을 밟으며 어떤 패션을 선보였는지 아래 이미지를 통해 확인해 보시길.
2022 Venice Film Festival, The King 시사회
2021 Venice Film Festival, 2021 MET GALA HAIDER ACKERMANN
2023 PFW Jean-Paul Gaultier X 하이더 아커만 2023 SS 컬렉션
하이더 아커만 개인 SNS에 들어가면 본인의 사진만큼 그의 뮤즈, 틸다 스윈튼과 티모시 샬라메의 사진이 피드를 채우고 있다는 걸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정처 없이 걷는 밤길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하이더 아커만. 틸다와 티모시를 만난 이후 홀로 걷는 밤길은 뜨거운 영감으로 가득 차 외롭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앞으로 세 사람이 보이는 강렬한 케미스트리를 더욱 기대해 본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