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헵번 & 위베르 드 지방시
Stories: Fashion Muses
각종 가십과 근거 없는 루머들로 가득 찬 연예계와 패션 산업. 그 차갑고도 건조한 세상에서도 서로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끼친 뮤즈이자 우정을 나눈 짙은 관계가 있다.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 차 무심코 지나치기 일쑤인 세상에서 그들이 보인 관계성에 대하여.
모델, 가수, 배우 등 많은 유명 인사들은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주며 수년 동안 긴밀한 유대관계를 구축했다. ‘패션 뮤즈’ 용어가 많은 이들에게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며 오늘날까지 수년 동안 가장 많이 언급된 위대한 뮤즈는 누구였을까?
GIVENCHY 하우스의 설립자인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와 변치 않는 아름다움의 아이콘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두 사람의 드라마 같은 순간들.
그의 옷은 내가 나 자신일 수 있는 유일한 옷이다. 나에게 위베르 드 지방시는 디자이너 그 이상이며 개성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 오드리 헵번
위베르 드 지방시와 오드리 헵번은 1953년 처음 만나 세상 마지막 날까지 그의 뮤즈로 옆자리를 지켰다.
두 사람의 인연은 영화사브리나로부터 시작된다. 1952 자신의 하우스를 오픈하고 프랑스 쿠튀르의 떠오르는 신흥강자로 주목받았던 위베르 드 지방시.
어느 날 지방시는 영화 <사브리나> 의상 제작으로 ‘미스 헵번’이 자신의 스튜디오를 방문하게 될 거란 소식을 접한다. 허나 지방시가 생각한 ‘미스 헵번’은 다름 아닌 캐서린 헵번(Katharine Hepburn). 지금이야 ‘헵번’이라고 하면 당연지사 오드리 헵번을 떠올리지만, 당시 훨씬 높은 인지도를 누리고 있던 인물은 캐서린 헵번이다. 지방시의 예상을 깨고 스튜디오에 도착한 사람은 짙고 두꺼운 눈썹, 아담한 체구와 마른 몸의 오드리 헵번이었다. 실망한 지방시는 오드리 헵번에게 전한다.
“마드모아젤, 당신을 돕고 싶지만, 현재 진행 중인 컬렉션 준비로 인해 당신에게 제공할 옷을 만들 수 없어요.”
그 말을 전해 들은 오드리 헵번은 낙담했지만, 단념하지 않고 저녁 식사에 지방시를 초대한다. 그렇게 함께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지방시는 헵번의 아름다움과 매력에 완전히 사로잡혔고 결국 헵번의 요청을 수락하게 된다.
영화 의상을 제작하기엔 컬렉션 준비에 모든 시간을 쏟아야 했던 그는 결국 이미 완성된 컬렉션의 드레스를 헵번에게 건넨다. 결과는 대성공. 이듬해 오스카 시상식에서 의상상을 수상한다.
의상 부문 오스카상을 수상했지만, 그 공로는 의상 디자이너 에디스 헤드(Edith Head)에게로 돌아갔다. 이에 분노한 오드리 헵번은 자신이 출연하는 모든 작품의 의상 디자인을 지방시가 할 수 있도록 계약을 맺었으며 이후로도 무조건적인 지원을 보여주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고 헵번의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지방시도 함께 이름을 알렸다. 지방시와 오드리 헵번. 두 사람이 주고받는 영감은 그들에게 더 멀리, 더 높게 날 수 있는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후, 1957년 GIVENCHY의 최초 향수 L'Interdit가 출시되는데 프랑스어로 ‘금지’라는 뜻의 랑테르니는 자신의 영원한 뮤즈 오드리 헵번 한 사람만을 위해 제작된 향수였다. 이야기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사실 랑테르니가 출시되기 전, 약 1년 동안 헵번이 사용했다고 한다.
헵번에게 기억에 남고 소중한 선물을 하고 싶던 지방시는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조향사를 찾아갔고 그렇게 제작된 향이 바로 L'Interdit. 헵번은 어디를 가든지 이 향수를 사용했고, 주변 사람들이 그녀에게 어떤 향수를 쓰는지 물어보아도 결코 말해주지 않았다는 스토리가 전해진다. 그렇게 1년 후 대중들에게 L'Interdit라는 이름으로 향수가 공개되었다. 이 향수는 2018년 오드리 헵번을 닮은 루니 마라(Rooney Mara)가 캠페인에 출연하며 재출시되었다.
21세기 가장 유명한 의상 GIVENCHY의 블랙 드레스는 2006년 경매에서 923,187달러라는 엄청난 가격에 팔렸다.
오드리 헵번은 눈에 띄는 외모로 자신이 어떻게 묘사되고 싶은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 위베르 드 지방시
헵번은 지방시의 컬렉션에 매혹되었고 수년 동안 그의 옷과 함께했다. 할리우드와 오트 쿠튀르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상호작용을 주고받은 그들. 사랑과 우정 두 단어로 두 사람의 관계를 단순히 정의하기엔 드라마보다 드라마 같은 스토리를 품고 있다.
시간을 초월한 둘의 우정을 들여다보면 나도 모르게 많은 가설을 세워보게 된다. 영화사브리나의 주연이 오드리 헵번이 아니었다면? 오드리 헵번이 그날 밤 지방시에게 저녁 식사 초대를 하지 않았더라면? 오드리 헵번이 지방시가 아닌 다른 이를 찾아갔다면? 티파니에서 아침을 아이코닉 패션이 블랙 드레스가 아닌 다른 의상이었다면?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했던 두 사람이 남긴 건 훌륭한 영화와 클래식한 의상뿐만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 더욱 소중한, 이상하리만치 아름다운 그들의 진심도 함께 남아있다.
패션계에서 디자이너는 매 시즌 새롭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자신만의 예술을 구축해야 하는 아티스트다. 그들은 늘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영감을 끊임없이 찾는다. 그런 그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는 존재가 ‘뮤즈’다. 어떤 뮤즈는 패션 시즌의 변화에 따라 덧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 이들처럼 장기적인 우정과 상호 보완 관계를 나누며 패션 산업에 짙은 영향력을 남기는 경우도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에게 영감이 되며 발전하는 관계. 사랑만큼 아름답고 낭만적인 관계가 아닐까.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