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es: Fashion and Tadao Ando
최근 도 넘는 언행으로 연일 구설수에 휩싸인 칸예 웨스트(Kanye West)는 미화 5,730만 달러를 지불하고 캘리포니아 말리부 저택을 구입했다. 미니멀한 외관으로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저택은 안도 타다오가 미국에서 설계한 몇 안 되는 주택 중 하나다. 모든 층에서 말리부 바다 전망을 누릴 수 있으며, 현대 미술 컬렉션을 전시하는 아트 갤러리로도 사용되고 있다. 전국에 수많은 집을 보유하고 있는 칸예는 왜 하필 이 집을 선택했을까?
말리부 저택을 구입한 2년 전, 2018년 칸예 웨스트는 예술의 섬으로 불리는 일본 나오시마를 방문한다. 나오시마 섬에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 지추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미술관 내부에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세 명의 예술가 작품이 상설 전시되어 있다. 칸예는 나오시마를 방문한 것에 대해 “life-changing.”으로 묘사하며 제임스 터렐과 안도 타다오의 예술관에 푹 빠지게 된다.
지추 미술관에 위치한 제임스 터렐 작품
칸예는 한화로 약 700억에 달하는 금액을 지불하고 말리부 집을 구매했다. 도대체 ‘왜’라는 의아함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가 설계한 집에 살아보는 상상해 본 적 있는가?” 질문 하나로 지워질지도.
안도 타다오는 노출 콘크리트의 귀재다.
모래, 돌, 시멘트, 콘크리트처럼 세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재료를 사용하여 기하학적 형태의 특정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그의 본질적인 의도다. 그런 의미에서 노출 콘크리트는 해체주의 패션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해체주의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디자인을 사용하여 확대하고, 분해하고, 다시 겹겹이 쌓아 각 구성요소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평면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만든다.
트렌드를 넘어 하나의 패션 장르로 자리 잡은 해체주의 패션은 의도적으로 의복을 불완전해 보이도록 한다. 안도 타다오의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은 평범함을 숨기고 화려한 것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무질서함과 어우러지는 해체주의 패션과 안도 타다오의 브루탈리즘 건축은 꽤나 닮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리스 출신의 은세공가 소티리오 불가리(Sotirio Bulgari)가 설립한 브랜드 BVLGARI. 안도 타다오의 건축 작품에 영감을 받아 그와 함께 협업한 시리즈 옥토 피니씨모(Octo Finissimo)를 살펴보자. 안도 타다오가 디자인한 시계의 다이얼은 나선형 모양으로 시간의 무한한 흐름을 표현했다. 시계 뒷면에는 사파이어와 기계 작동을 볼 수 있는 투명 마감, 안도 타다오의 서명으로 완성했다.
200피스 한정 수량으로 제작된 BVLGARI 옥토 피니씨모는 티타늄으로 제작되었으며, 안도 타다오의 시그니처 노출 콘크리트의 건축적 이미지를 브랜드의 정교함에 녹여냈다. 워치메이커와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만남은 많은 컬렉터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지 않았을까.
안도 타다오의 구조물은 깨끗하고 압도적인 무중력감으로 논리를 거스른다. 건축물만큼 정제되어 있는 건 다름 아닌 그의 패션. 어수선한 듯 침착한 그의 헤어스타일은 미니멀 무드의 스타일링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포털사이트에 그의 이름 다섯 자 검색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아이템은 부모님 옷장에서 훔쳐 입고 싶은 이른바 ‘아빠 양복’. 편안함과 맵시를 살려주는 터틀넥 니트, 혹은 셔츠. 여기에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드러내는 머플러까지.
패션은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치트키 같은 수단이다. 안도 타다오의 미니멀 패션을 통해 그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엿보는 듯한 소소한 재미를 찾아보길 바란다.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안도 타다오는 할머니와 함께 자랐다. 어린 시절 그는 집 건너편에 위치한 목공소를 놀이터 삼아 시간을 보냈다. 학교 수업보다는 밖에서 스스로 배우는 것을 선호했던 안도 타다오는 2년간 프로 복서로 활동하게 된다. 이후 고등학교에서 도쿄로 여행을 가던 중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임페리얼 호텔을 보게 되고 건축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아 그는 프로 복싱 선수의 경력을 마침표 찍고 건축 일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권투는 순수한 금욕주의와 고독의 스포츠로 몸과 마음을 절대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힘이 생긴다. 건축도 똑같다. - 안도 타다오
업계의 경험을 쌓기 위해 건축 사무소에 취직하지만, 이론에 무지했던 그는 건축 서적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전전긍긍 이직 시도를 거듭했지만 어떤 곳에서도 3개월 이상 버티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안도 타다오는 쓰린 좌절을 맛본다. 그러나 그가 여기서 모든 걸 포기했다면 지금, 이 콘텐츠를 쓰는 나도, 읽고 있는 당신도 존재하지 않았을 터. 안도 타다오는 고민 끝에 위대한 건축 작품을 보기 위해 세계여행을 하기로 결심한다. 책상 앞에 앉아 탁상공론에 머물지 않고 발로 뛰며 관찰과 영감을 통해 배우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세계 각국으로 떠난 안도 타다오는 8개월 동안 러시아 전역과 유럽, 아프리카, 남아시아를 거쳐 다양한 건축물을 경험했다. 전통적인 일본 건축에 익숙했던 그가 처음으로 마주했던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로마 판테온은 그야말로 경이로움의 연속이었다. 오사카로 돌아온 그는 29세에 자신의 건축 회사를 설립한다.
독립적인 작업을 시작한 독학 건축가 안도 타다오는 오사카 스미요시 지역의 좁은 부지에 작은 집을 설계하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그렇게 완성된 집이 바로 데뷔 작품 스미요시의 연립 주택, 아즈마 하우스 The Row House at Sumiyoshi(1976). 당시 일본 건축가들의 주거용 건물과 극명하게 대조되었던 아즈마 하우스는 일본 전통 가옥의 관습과 건축의 일상적 관행, 건축 방식을 뒤흔들어 놓았다. 안도 타다오는 데뷔작으로 1979년 일본 건축 학회상을 받는다.
The Row House at Sumiyoshi
Church of Water, Hokkaido
그는 여가 시간 또한 허투로 소비하지 않았다. 일본 간사이 지역을 돌아다니며 빈 땅에 대한 건설 계획을 세우곤 했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롯코 집합주택(Rokko Housing). 가파른 경사면을 보며 아무도 그 위에 집을 지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남들이 말하는 문제점은 오히려 안도 타다오에게 영감의 기준이 됐다.
경사면을 깎아 평평하게 할 생각조차 없었다는 그. 이런 작은 시도들이 건축계의 거장으로 일어설 수 있었던 핵심 자질 아녔을까.
Rokko Housing
안정되고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건축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경험도 없었으며 그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 멘토도 없었다. 대부분 건축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안도 타다오. 암 진단으로 십이지장과 췌장 등 장기를 제거하는 대수술을 여러 차례 받으며 장애물을 만나기도 했지만, 수술 이후 겸손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며 하루에 10,000보 이상 걷고 퇴근 후 헬스장에 간다는 그. 오히려 병으로 인해 얻은 게 더 많다고 말하며 건축과 삶에 대한 여전한 열정과 집념을 보여준다.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며 인생 마지막까지 힘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내면의 힘을 길러라.
형태의 단순화, 전례 없는 기하학적 모양과 비율, 빛과 바람의 고요함은 안도 타다오 언어의 일부다. 그 언어는 건축 산업에 머물러있지 않고 패션과 예술 경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새로운 도전을 계속 찾고 어떤 상황이든 항상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던 안도 타다오. 나는 그를 가히 ‘개척자’이자 ‘최고의 건축가’라고 말하고 싶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