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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가 남긴 20세기 뉴욕과 파리의 패션 1편

Culture: Edward Hopper


Culture: Edward Hopper and 20th Century New York

에드워드 호퍼가 남긴 20세기 초반 뉴욕과 파리의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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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hopper.net


사실주의 화풍으로 20세기 미국의 초상을 그려낸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그의 그림은 제 1,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겪은 후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던 미국의 어두운 단면, 특히 인간 소외와 고독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호퍼의 작품은 시대상이 반영된 가장 미국적인 풍경이지만,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많은 이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2023년 봄, 서울에서 그를 기다리는 사람이 무려 13만 명에 달한다.





어디서 본 것만 같은 친숙함이 든다면

히치콕 ‘이창(Rear Window)’ 영화 포스터


ⓒjoongang.co.kr, ⓒ joongang.co.kr

Night Windows(1928)


ⓒm.imdb.com


ⓒSheldon Memorial Art Gallery

Room in New York(1932)



호퍼의 그림은 영화계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다양한 감독을 통해 스크린으로 다시 소개되었다. 이를테면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의 영화에 여러 번 등장하기도 하고, ‘셜리에 관한 모든 것(Shirley)’은 그의 그림 13점으로 영화의 스토리 전체를 구성한 것이다.



ⓒtrendland.com



19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두 여인 간의 미묘한 감정선을 그린 영화 ‘캐롤(Carol)’ 역시 호퍼의 작품을 상당 부분 오마주한 것으로 보인다. 외롭고 두려운 순간을 마주한 인간의 모습이 차가운 색감과 과감한 구도를 통해 중간중간 조명되는데, 이는 호퍼의 그림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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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eothyssen.org

Hotel Room(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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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omat(1927)


ⓒsartle



뿐만 아니라, 패션계와 광고계에서도 호퍼를 계속해서 소환한다. 대표적으로 2010 FENDI 캠페인 컷과 국내에서 호평을 받은 SSG의 재치 넘치는 광고 호퍼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재탄생했다.



ⓒfashiongonerogue.com

FENDI 2010 FW Campaign



기억에 남는 이 광고는 호퍼의 작품과 앞서 소개한 영화 ‘셜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비주얼뿐만 아니라 흐름이 뚝뚝 끊기는 대화까지도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이 마주한 소통의 단절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놓은 것 같다.



ⓒSSG


호퍼의 그림이 국경과 시대를 넘나들며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래도록 찾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니까. 호퍼의 치열했던 삶과 그가 남기고 떠난 작품을 경유해 20세기 뉴요커를 재현한 그림들이 21세기에도 유효한 이유를 살펴보자.





10년 동안 단 한 점도 판매하지 못한 비극을 이겨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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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 실력이 탁월했다. 현재는 파슨스(Parsons School of Design)로 알려진 뉴욕예술학교(New York School of Art)에 입학했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생계유지를 위해 광고 업계의 일러스트레이터로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물론 전업 화가로서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채. 그는 1913년에 첫 번째 작품을 판매한 후 10년간, 정확히 1923년까지 작품 한 점도 판매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조용하지만 꾸준하게 나아가며, 본인의 때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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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에 판매된 작품 The Mansard Roof (1923)



오늘날 그의 작품은 1,300억 원 대에 거래되고 있는 그야말로 명작 중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그림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그가 그토록 싫어했던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아무리 가난해도 일주일에 세 건 이상의 의뢰는 절대 받지 않았다고 한다.





광고계를 사로잡는 감각적인 그림에서

인간의 본질을 발견하다


호퍼는 인물과 풍경을 단순하지만 정확하게 묘사하는데 능하다. 단순하다는 것이 결코 쉽게 그린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힘을 주고 뺄 곳을 치밀하게 계산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가 화가로 이름을 알리기 전, 20여 년간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그림을 쉼 없이 그리는 훈련을 했기에 가능한 일.




비단 테크닉적으로 실력을 닦은 것뿐만 아니라, 삽화가로 다양한 잡지 표지와 출판물에 들어갈 그림을 그려내야 했기에 당시 미국의 트렌드와 더불어 일상 속 뉴요커를 끊임없이 관찰했다. 호퍼는 아마 이때부터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그림 뒤에 숨은 대도시의 쓸쓸함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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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가 현재까지도 주목받는 이유는 과감한 빛 표현과 캔버스를 뚫고 나오는 묘한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그가 빛을 사용하는 방법은 명확하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은 경계에 모호하게 걸쳐져 있다. 화폭에 따스한 빛으로 가득 차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으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인물들은 함께 앉아있지만 마치 동상이몽을 하며 각자의 위치에 철저히 고립된 것 같다. 분명 상점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거리지만 그 어떤 풍경보다 삭막하다.



ⓒArtists Rights Society

Early Sunday Morning(1930)


ⓒedwardhopper.net

Summer Evening(1947)


ⓒwhitney.org

Second Story Sunlight(1960)



뉴욕의 빛과 그림자를 본인만의 대담하고도 담백한 붓질로 쓱쓱 그려낸 에드워드 호퍼. 그가 빛에 대한 감각을 쌓을 수 있었던 곳은 다름 아닌 파리에서부터이다.




파리에서 영롱한 빛을

발견하다


인상파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에드워드 호퍼는 특히 1906년부터 1910년 사이에 파리를 여러 번 방문하면서 그림에 대해 심도 있게 연구하며 본인의 화풍을 발전시킨다. 센 강변의 건물과 도시 풍경을 속도감 있는 터치로 완성해 나갔고, 캔버스를 점차 빛으로 물들였다.


ⓒwhitney.org

Le Quai des Grands Augustins(1909)


ⓒfineartamerica.com

Afternoon in June(1907)



호퍼는 야외에서 작업하며 파리의 거리를 활보하거나 카페에 여유롭게 앉아있는 사람들에 시선을 옮겼다. 계급과 성별 그리고 나이에 관계없이 끊임없이 기록했다. ‘Les Modes’ 매거진에 1900년부터 1907년 사이에 실린 사진과 호퍼의 드로잉을 비교해 보라. 일러스트레이터의 섬세한 관찰력과 탁월한 표현력으로 우리를 20세기 파리로 초대한다.



ⓒvintag.es


ⓒwhitney.org



20세기 초 파리지앵 여인의 화려하게 장식된 모자, 몸의 곡선이 드러나도록 하는 잘록한 허리, 발목이 드러날 정도로 짧아진 치마를 커다란 면과 작은 선들로 묘사해 낸 호퍼.



ⓒwhitney.org

Sketches of Men and Women in Hats



남자들의 경우는 어땠나. 밝은 색상의 핏된 수트를 빼입고 하나같이 머리에 모자를 얹었다. 모자는 사회적 지위와 신분을 나타내는 도구이자 아웃핏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집을 나설 때 모자는 필수. 당시 호퍼의 습작에는 모자와 그 모양에 대해 연구한 흔적이 빼곡히 담겨있기도 하다.



ⓒwhitney.org, ⓒnytimes.com

Self-Portrait(1925-30), 에드워드 호퍼 자화상 속 펠트 페도라를 재현한 모자



실제로 호퍼 본인도 중절모를 즐겨썼고 그를 상징하는 물건 중 하나이기도 했다. 휘트니 미술관 기프트샵에서는 그의 모자를 재현해내 판매하기도 했을 정도이다.



ⓒwhitney.org

Soir Bleu(1914)



빛의 표현과 거리의 인물에 대해 부지런히 연구했던 파리에서의 화업은 푸른 저녁(Soir Bleu)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부르주아부터 광대까지 다양한 계급의 인물이 기다란 화면 속에 자리한다. 그의 다른 작품에 비교했을 때 다수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활기가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묘한 적막이 감돈다. 해당 작품은 오늘날 “그의 성숙기 회화의 속성을 드러낸다”고 호평을 받지만, 당시 미국에서는 파리의 화풍을 단순히 답습한 것이라며 비난했다. 이를 계기로 호퍼는 가장 미국적인 풍경을 그리기 위한 탐구를 시작한다.





20세기 미국의 그림자와

고개 숙인 사람들


에드워드 호퍼는 제1차 세계대전과 경제 대공황,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까지 모두 겪으며 급변하는 미국을 직접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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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뉴욕 ⓒaepretiress.com



1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은 강대국으로 급부상했고 뉴욕은 런던을 대신하여 세계 금융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풍요와 번영의 시대가 도래하자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했으며, 심화한 빈부 격차가 도시를 빠르게 변화시켰다. 속도를 막무가내로 즐기다 보면 언젠가는 추락하는 법. 이러한 추락을 미리라도 암시한 듯 호퍼의 작품 속 인물들의 표정은 시종일관으로 공허하다.


가까운 친구와 가족들이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집을 잃을 위기에 놓인 것을 목격하기도 했으며, 호퍼 본인도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뻔한 위기도 마주했다. 말 수가 유독 적었던 호퍼는 거리로 나가서 부당함을 외치기보다는 본인만의 회화 언어로 조용히 투쟁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주변과 자신을 살피고, 암울한 현실을 그림에 새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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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e at Night(1940) ⓒCollection Walker Art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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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1926) ⓒThe Phillips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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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el Lobby(1943) ⓒedwardhopp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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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ning Sun(1952) ⓒColumbus Museum of Art



호퍼의 그림, 특히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은 그 배경에 따라 분류할 수 있겠다. 업무를 보는 오피스, 집 혹은 호텔의 방, 마지막으로는 카페와 식당, 그리고 극장을 비롯해 문화생활을 위한 공간. 각자의 위치에서 개인은 늘 고립된 상태였으나, 이것은 미국에서 지극히 보편적인 것이었으므로 호퍼가 그려낸 초상은 개인적인 고통인 동시에 모두가 공유하는 무게였다. 호퍼의 그림 속 공간을 따라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뉴욕의 초상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나?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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