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dward Hopper
Sunlight in a Cafeteria(1958)
호퍼와 호퍼의 아내는 요리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부엌에 할애된 공간이 매우 적었다고 한다. 그래서 둘은 저렴한 식당이나 카페를 자주 찾았다. 그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도 카페와 레스토랑이 자주 등장한다.
Automat(1927)
1927년에 제작된 자동판매식당(Automat)과 높은 경매가를 자랑하는 찹 수이(Chop Suey).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작품이라 매우 닮아있다. 간단하게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앉아있는 여성.
Chop Suey(1929)
주변 환경에 시선이 꽂히기 전에 미묘한 표정을 한 여인들에게 눈길이 간다. 찹 수이(Chop Suey) 속 인물은 마치 도플갱어가 서로를 마주한 장면처럼, 두 여성이 비슷한 차림새를 하고 앉아 있다. 레이스와 퍼로 장식된 옷보다는 한결 깔끔하고 간소화된 옷차림과 짧은 머리카락과 머리에 꼭 맞는 모자가 눈에 띈다.
과감하게 자른 머리카락과 이러한 실루엣을 한층 강조하는 종의 모양의 클로슈 모자(Cloche Hat)은 플래퍼 모자(Flapper Hat)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통용되기도 했다.
분명 최신 트렌드를 가장 빠르게 따라잡은 여인들일 것인데, 완벽해 보이는 차림새와는 달리 근심 어린 눈빛으로 커피잔을 내려다보거나 경계 가득한 눈초리로 허공을 응시할 뿐이다.
Nighthawks(1942)
호퍼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밤을 새는 사람들(Nighthawks) 역시 비슷한 장소에서 비슷한 구도로 펼쳐진다. 해당 작품은 1942년 1월 21일에 완성된 작품으로 진주만 공습이 일어난 지 한 달이 겨우 지난 시점이다. 호퍼는 다시금 발발한 전쟁에 의해 침체한 사회적 분위기를 색의 대비와 과감한 구도를 활용해 화폭에 고스란히 옮겼다.
외부의 묵직한 초록과 대비되게 식당 내부에는 환한 조명이 노란색 벽을 밝혀준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안쪽에 자리한 네 명의 인물로 이끌린다. 같은 공간에 머물고 있지만 소통 없이 단절된 넷. 그 누구도 말을 건네지 않고 경청할 준비를 하고 있지도 않다. 중절모를 착용한 남색의 양복을 입고 있는 남성과 빨간 반팔 원피스의 여인은 커플로 보이지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남성은 커플과 다시 한번 대비되면서 더욱 고립된 것처럼 느껴진다. 직원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앞에 앉은 손님보다도 황량한 바깥 거리다.
네 인물에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이들이 앉아있는 카페를 다시 들여다본다. 커다란 창으로 식당 안과 밖을 분리함으로써 이들을 더욱 완벽한 진공의 상태로 밀어 넣는다. 관람객은 멀리서 이들을 관음 혹은 관찰하는 이방인으로 제한시킨다. 오직 주방 기기의 소음이 잔잔하게 들려오거나, 어색한 공기를 깨기 위한 소심한 헛기침, 물과 커피를 홀짝거리는 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메울 뿐이다. 모두 철저히 개인적인 세계에 갇혀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다. 외로움과 두려움을 끌어안은 채 오늘 밤도 겨우 넘기는 사람들.
The Sheridan Theatre(1937)
미국의 호황기 1920년대는 ‘재즈시대’라고도 불렸다. 시민들은 극장과 레스토랑, 스포츠와 문화생활을 적극적으로 즐기러 나섰다. 깔끔한 유니폼을 입고 있는 안내원이 화려하고 이국적인 건축적 요소들이 가득한 극장으로 안내해 주었다. 극장은 영화 감상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총체적 예술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호퍼 부부가 함께 모은 티켓
호퍼와 그의 아내 조세핀도 빠지지 않았다. 호퍼는 원체 검소한 사람이었다고 하지만, 그가 누렸던 유일한 사치는 다름 아닌 극장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씩 방문했던 것이라고 한다. 호퍼는 영감을 위해 극장을 자주 찾았기에 극장은 호퍼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의 초기작부터 사망하기 3년 전까지 그의 작품 세계 전반에 극장을 향한 애정이 돋보인다.
New York Movie(1939)
Intermission(1963)
First Row Orchestra(1951) ⓒsi.edu, Two on the Aisle(1927) ⓒToledo Museum of Art
다만 모든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공연 전후의 사람을 담은 것이다. 공연에 몰입해 환호하고 열광하는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호퍼의 인물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앉아 각자만의 조용하고도 깊은 사색에 잠겨있다.
New York Pavements(1924), Eleven A.M.(1926)
Office in a Small City(1953)
카페와 극장, 이 두 공간 외에도 거리에서, 휴식을 위한 공간인 방에서, 업무를 위한 사무실에서 인물을 예리한 시각으로 포착해 낸 에드워드 호퍼. 그의 그림에는 각자의 위치에서 고독한 싸움을 이어온 인물들이 기다리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그래서 또 지극히 보편적이었던, 현대인의 숙명이기도 한 고독과 외로움. 호퍼는 비단 20세기 미국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적 풍경을 조명한다.
식탁에 둘러앉아 말없이 핸드폰만 내려다보고 있는 친구들과 가족은 너무나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불편한 소통’보다는 ‘편리한 단절’을 꿈꾸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은, 오히려 호퍼의 작품 속 고독한 인물과 닮아있지만, 그 보다 더욱 불완전해 보이기까지 한다.
37살이 되어서야 첫 개인전을 개최하고, 40살이 넘어서야 점차 명성을 얻기 시작한 에드워드 호퍼. 심지어 초창기에는 지금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화가 아닌 수채화로 인기를 끌었다.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다.
Two Comedians(1966)
호퍼가 숨을 거두기 일 년 전, 본인의 마지막을 직감하고 그렸던 작품 두 희극 배우(Two Comedians)를 보고 있으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무대를 마친 후 관중석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있는 두 희극인은 다름 아닌 호퍼 부부이다. 무대 뒤편, 예측할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담담하게 걸어가겠다고 알리는 것 같다.
호퍼는 작품을 통해 인간에게는 삶이라는 단 한번의 무대만 주어지고, 때가 되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죽음을 인정하고 그림으로 담담하게 기록한 호퍼는, 두렵고 외로웠던 사람들을 적극적을 쓰다듬고 안아주며 위로해 주기보다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우리와 매우 비슷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 보여주면서 침묵을 유지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큰 울림을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Chair Car(1965)
고된 하루를 마치고 사람이 빼곡한 지하철에 몸을 실을 때, 여러 명의 친구에게 둘러싸여 정신없이 술잔이 부딪칠 때, 잠을 뒤척이다 고요한 새벽에 홀로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문득 세상에 완전히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은 우리처럼 고독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를 통해서 묘한 유대감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외딴 섬처럼 보이는 이들을 계속해서 그림에 등장시킨 것은 호퍼가 무의식적으로 쓸쓸한 대도시를 그리고 있었음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반쪽짜리 인간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는 타인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는 그림 안에서 빠져나와 호퍼의 캔버스 앞에서 침묵을 지키는 다른 이를 발견해 보자. 서로에게 눈맞춤을 하는 것만으로도 호퍼가 그려내지 않았던 그림의 또 다른 결말을 새롭게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