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DARK SUMMER, DARKER FALL
Trend: DARK SUMMER, DARKER FALL
블랙의 무한한 플러팅
“BALENCIAGA 쇼 보는 데 진심 저 언니만 보였어요” - 젠테스토어 에디터 S
80개의 스타일을 선보인 BALENCIAGA의 FW25 쇼에서 에디터 S는 나디아 리 코헨에게 매료됐다. 어두운 쇼장에서 전반적으로 다크한 분위기가 연출되었어도, 에디터 S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유는 분명하다. 시스루가 주는 고혹적인 분위기와 살갗 위에 수놓아진 레이스, 부스스한 헤어에 더해진 나른한 표정까지. 올여름, 더 나아가 FW25에 던지는 다크 로맨티시즘의 신호탄을 알린 건 그녀가 아니었을까.
여름이라 멈출 색이 아니다. 블랙은 태양 아래서 오히려 또렷해진다. BALENCIAGA 2025 여름 캠페인, 검은 무대 커튼 앞에서 배우 카일 맥라클란(Kyle MacLachlan)이 롱 블랙 코트를 걸치고 느긋한 악당처럼 몸을 기울였다. 이 뜨거운 여름에 블랙을 주연으로 세운 이 캠페인은 나디아 리 코헨의 퇴폐적인, 그리고 은근히 로맨틱한 시선이 잘 담겼다.
ⓒBALENCIAGA
그녀와 블랙이 만나 다크 로맨티시즘을 그려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DOLCE&GABBANA 와 SKIMS의 콜라보 컬렉션 속 킴 카다시안(Kim Kardashian)을 본 적 있다면 에디터의 말에 동의할 것이다. 나디아가 그려내는 건 단순한 블랙이 아니다. 거부할 수 없는 짙은 검정의 매력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어 주는 것이 그녀의 특기다.
블랙이 흘리는 매력은 무엇일까. 이 뜨거운 한낮에도 블랙을 고집하게 만드는 것. 우리는 어둡고도 고독한 이 플러팅에 모른 척 끌려가면 된다.
다크 로맨티시즘은 말 그대로 어둡고 낭만적인 감정의 복귀다. 낭만주의가 인간을 예쁘게 포장할 때 그 뒷면을 조명하는 정서. 타락과 슬픔. 더 나아가 광기가 잔잔히 스며든 고딕 감성이 레이스와 시스루, 러플과 코르셋과 만나 우리에게 다크 로맨티시즘의 무드를 전한다.
낭만주의 무드가 제안하는 것처럼, 다크 로맨티시즘도 모든 요소가 정확히 과잉이다. 하이넥은 숨 막히게 조여오고, 소매는 필요 이상으로 부풀어 오른다. 걸을 때마다 잔상처럼 남는 러플과 튤. 낭만이 감정이 아니라 구조가 될 때, 다크 로맨티시즘은 옷 하나로 서사를 만든다.
블랙 계열의 시어 또는 시스루 소재는 피부가 은근하게 드러나는 미묘한 긴장감을 만든다. 직선적인 노출이 아니라 얇은 레이어를 활용해, 보는 이로 하여금 내밀한 욕망과 감정을 상상하게 한다. 이러한 텍스타일은 드레스, 블라우스, 스커트 등에 주로 적용되어 전체적인 룩에 몽환성과 비밀스러움을 더한다.
시스루 아이템은 단독으로 활용하기보다 레이스, 러플, 벨벳 등과 혼합하면서 스타일의 깊이를 만든다. 두꺼운 블랙 벨벳이나 매트한 가죽 위에 시스루 레이어를 얹으면, 강인함과 연약함이 동시에 읽힌다. 어둡고 투명한 소재의 대비가 다크 로맨티시즘의 미학을 가장 직접적으로 시각화한다.
블랙 리본과 러플은 낭만주의적 디테일에 어둡고 퇴폐적인 해석을 더한다. 리본은 목, 허리, 손목 등 다양한 곳에 매듭지어 세련된 분위기와 함께 유약한 무드를 만들어내고, 러플은 볼륨감을 통해 드라마틱한 실루엣을 완성한다.
러플이 과장된 형태로 들어가면 유령 같거나 묘하게 불길한 뉘앙스가 연출된다. 리본 역시 단정한 마무리 대신 길게 늘어뜨리거나 일부러 흐트러지게 매치하면 완벽함에서 벗어난 불안정성을 강조한다. 두 디테일 모두 고전적 아름다움과 퇴폐적 상상력이 만나는 경계에 있다.
블랙 레이스는 섬세한 패턴과 빈틈, 그리고 고전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담고 있다. 손으로 짠 듯한 거친 질감의 레이스는 고딕적 상징성과 퇴폐적 뉘앙스를 동시에 내포한다. 얇고 정교한 레이스 장식은 드레스, 톱, 장갑, 심지어 스타킹 등 다양한 아이템에 포인트로 쓰인다.
레이스는 단순히 여성성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다크 로맨티시즘에서는 파괴된 듯, 일부러 해어진 가장자리나 불규칙한 패턴을 통해 불완전함을 드러낸다. 클래식함과 불안정성이 공존하는 연출이 바로 다크로맨티시즘이 지향하는 미학이다.
다크 로맨티시즘이 수많은 디테일로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면, 더티 코어는 그 반대다. 과한 건 없어도 낡은 건 있다. 다크 로맨티시즘과 더티 코어는 지금 패션과 비주얼 아트 전반을 감싸고 있는 묘하게 매력적인 어둠의 양쪽 끝이다.
더티 코어는 옷을 멀쩡하게 만들 생각이 없다. 찢긴 밑단, 해진 솔기, 낡은 데님, 번진 프린트, 탈색된 원단은 모두 불량품이 아니라 계획된 손상이다. 패치워크는 대충 덧댄 듯 붙어 있고, 실밥은 일부러 안 자른 채로 흘러내린다.
구겨진 상태 그대로 고정된 셔츠 하나에 ‘이건 옷이 아니라 기록이다’라는 말이 붙는다. 얼룩과 때처럼 보이는 마모, 퇴색된 컬러는 ‘깨끗해야 한다’라는 강박을 조용히 비웃는다. 이건 잘 입은 게 아니라, 끝까지 입은 것이다.
더티 코어. 이름 그대로 깨끗함을 벗어난 더럽고 거친 미감이 중심에 있다. 단순히 지저분한 게 멋있다는 유행이 아니다. 기존 미학이 놓치고 있는 요소들: 흙, 마모, 파손, 진실된 사용감 등을 미의 조건으로 끌어올리는 이 트렌드는 인터넷 기반 미학에서 태어났지만, 패션 장르라기보단 태도에 가깝다. 아름답다고 여겨지지 않던 것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완벽함을 거부하는 태도.
낡음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포인트다. 빛바랜 컬러와 프린트 얼룩진 원단은 방치와 무관심의 미학을 표현한다. 이는 세련됨이나 완성도를 의도적으로 배제한다.
PROTOTYPES처럼 빈티지 아이템을 활용하거나, 직접 손질해 낡은 효과를 내기도 한다. 이는 인위적으로 개인의 개입과 해체적 창의성을 보여주는 수단이다. 결국 낡은 옷은 한 사람의 시간과 삶을 응축한 표식이 된다.
해진 데님 워싱이나 올이 풀린 니트도 새로움을 튕겨낸다. 인공적인 세월의 흔적은 디테일이 균일하지 않고 우연성이 강조된다. 오랜 시간 착용해 자연스럽게 마모된 것 같은 연출이 특징이다. 완결된 패션이 아니라 진행 중인 과정으로서의 옷을 지향한다.
최근에는 K-POP 씬에서 다수의 더티 메이크업도 주목받았다. 정돈보다는 흐트러짐에 중점을 둔다. 아이 메이크업을 과하게 번지게 하거나 피부에 얼룩을 남기는 등 의도적으로 실패한 이미지를 만든다. 이런 표현은 미의 기준을 해체하고 인공성과 현실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더티코어는 완벽함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를 나타낸다.
올여름 블랙은 때론 어두움을 지닌 로맨티시스트가 되거나, 조금은 미 완전한 모습을 지닌 채로 우리 곁을 찾아왔다. 하지만 당신은 고딕 문학을 읽거나 내면에 어둠이 없어도 괜찮다. 블랙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작동하니까. 여름이라는 계절이 명랑함과 가벼움을 강요할 때, 그 강요에 저항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시원함 대신 밀도, 경쾌함 대신 절제.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블랙이 전하는 그 은밀한 미학은 가을까지도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