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간북스가 그리는 컬처 아카이브


Interview: HUGAN BOOKS

휴간북스가 그리는 컬처 아카이브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린 시절 한 번쯤은 잡지에 푹 빠진 시절이 있었을 것. 에디터 H 또한 그랬다. 낭랑 18세, 학교 앞 백화점 지하 서점으로 향할 때면 괜스레 잡지 코너를 서성이곤 했다. 그 시절 <CRACKER>와 <Vogue Runway>를 구입하는 것은 앞으로 원하는 미래를 살고야 말겠다는 다짐과도 같았던 것이다. 잡지란 그런 존재였다. 소유하는 것만으로 꿈꾸게 해주는 존재.


여행을 떠날 때면, 커다란 캐리어 두 개를 가지고 떠나 하나둘 모은 매거진이 어느덧 수천 권이 되었다는 휴간북스의 주인장이자 포토그래퍼 심재. 그리고 비가 많이 오는 미국 오리건주로 14세에 이민을 간 스케이트 보더이자 그의 친구 션(Sean). Stüssy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이자 친구 사이인 이들을 만나 휴간북스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Q1. 안녕하세요. 휴간북스 소개 부탁드립니다.


심재: 휴간북스는 잡지와 책을 중심으로 한 서점이자 아카이브 공간입니다.


1.jpg 션과 심재


1990–2000년대의 패션, 음악, 스트리트 컬처 매거진을 주로 다루고 있고, 현재는 절판되었거나 쉽게 접하기 어려운 해외 잡지들을 큐레이션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소량 제작된 출판물, 진(zine), 그리고 책과 연결되는 오브젝트들도 함께 다룹니다.


‘휴간(休刊)’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잠시 멈춘 상태를 의미합니다. 더 이상 발행되지 않는 잡지들이 가진 시간성과, 빠르게 소비되는 요즘의 흐름 속에서 잠시 멈춰서 천천히 들여다보자는 의미를 함께 담고 싶었습니다. 휴간북스는 새로운 것을 쫓기보다는, 이미 지나갔지만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보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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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 어떤 문화든 깊이 파고들수록 얻는 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겉모습에 반해 시작할 수도 있지만, 더 깊이 들어갈수록 그 문화에 대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진정한 애정을 얻게 되니까요. 휴간북스는 스트리트 컬처나 씬을 천천히, 하지만 깊이 있게 알아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디딤돌이 되어주는 공간입니다. 단순히 유행을 좇는 게 아니라, 그 문화의 이면과 배경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죠. 급할 필요 없이 천천히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Q2. 양양에서의 비슬라 플리마켓 참여를 계기로, 오프라인으로 나오게 되었다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휴간북스의 탄생 비화가 궁금합니다.


심재: 처음부터 서점을 열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잡지를 수집해 왔고, 어느 순간부터 이 아카이브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양양에서 열린 비슬라 플리마켓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잡지를 대하는 반응을 직접 보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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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 경험이 계기가 되어, 이 컬렉션을 지속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휴간북스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생겨난 공간입니다.





Q3. 스레드에 포스팅하신 휴간북스의 시작점이 된 공간 게시물을 감명 깊게 봤습니다. 동서 도서 사장님과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심재: 처음 공간을 준비하던 시기에 우연히 동서 도서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오래된 옛 책방이었고, 그 공간에는 시간의 층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단순히 공간을 빌리는 관계라기보다는 책과 공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많이 공감했습니다.


4.jpg ⓒ@huganbooks


휴간북스의 시작은 사실 ‘새로 만든다’기보다는, 이어받는다는 감각에 가까웠습니다. 동서 도서라는 오래된 책방의 결 위에, 휴간북스가 살짝 덧붙여진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인연 덕분에 지금의 휴간북스가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Q4. 휴간북스의 크루원은 어떻게 되나요? 다들 책과 잡지에 관심이 깊으신지요.


심재: 휴간북스는 혼자 운영하는 공간이지만, 프로젝트나 콘텐츠의 성격에 따라 함께 움직이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 함께 참여하게 된 Sean 역시 그런 인연 중 한 명입니다. 그는 미국에서 자라왔고, 휴간북스 성수점 오프닝에 손님으로 방문한 것을 계기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현재는 Stüssy 서울 챕터에서 같이 팀으로 활동하며, 동시에 휴간북스의 친구로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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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책이나 잡지를 단순한 정보가 아닌 ‘문화의 기록물’로 바라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꼭 모두가 수집가이거나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 권의 책, 한 권의 잡지가 지닌 맥락을 존중하고, 그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달하려는 태도만큼은 모두가 닮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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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 저에게 이 잡지들은 수집품이자 오브제이기도 합니다. 심재 형에게 선물 받은 책들이 꽤 있는데, 가끔 펼쳐보면 제가 경험해 보지 못한 문화들, 예를 들어 1990년대나 2000년대 일본 스트리트 컬처 같은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당시 잡지들의 레이아웃이나 사진들은 지금 봐도 충격적일 만큼 멋져요.


사실 서울 사람들은 검은색 옷을 너무 많이 입는 경향이 있어요. 실루엣은 멋질지 몰라도 가끔은 좀 지루하게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옛날 잡지나 사진집을 보면 훨씬 다채롭고 생동감이 넘칩니다. 저는 그런 과거의 비주얼 자료들에서 색감에 대한 영감을 많이 얻습니다.





Q5. 휴간북스는 단순히 잡지를 판매하는 공간 같지 않습니다. 무언가 깊게 빠져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 같은데요.


션: 그렇죠. 휴간북스는, 뭐랄까. 일종의 '헤드 샵(Head shop-일종의 서브 컬처 잡화점)' 같은 느낌이랄까요? 단순히 물건을 파는 부티크가 아니라, 어떤 문화에 깊이 빠진 사람들이 모여서 지식을 나누고 교류하는 공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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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케이트를 타는데요. 처음엔 스케이트 씬의 규모가 작아서 놀랐습니다. 아직 길거리에서 보드를 타는 것에 대한 시선이 엄격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규모는 작아도 스케이터들의 실력은 정말 엄청납니다. 미국에는 스케이트보드 문화나 역사에 대해선 박사급인데 실력은 평범한 친구들이 있다면, 한국은 문화적 배경은 깊게 파고들지 않아도 실전 실력만큼은 정말 뛰어난 친구들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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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한국 스케이터들은 단순히 보드만 타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음악, 디제잉, 공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만의 색깔을 보여주고 있어요. 한 가지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한국 씬의 미래이자 멋진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6. 휴간북스에서 애착이 가는 책은 무엇인가요?


심재: 특정 한 권을 고르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오래 함께해온 책들에 애착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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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작은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작업을 하던 시기에 큰 영향을 줬던 책처럼, 책 자체보다 그 책을 만나게 된 상황과 시간이 함께 떠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휴간북스에 놓인 책들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모였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중고 책일 수 있지만, 저에게는 분명한 기억을 가진 물건들입니다.




Q7. 휴간북스에서 가장 레어한 매거진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매거진을 소개해주세요.


심재: 휴간북스에서 레어하다고 말할 수 있는 매거진과 책들은 이미 절판되었고, 유통량이 극히 적은 패션·컬처 출판물들입니다. 해외 컬렉터나 오래된 서점, 혹은 개인 간의 교류를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씩 모아온 경우가 많습니다.


10.jpg *All Gone: 매년 한 해 동안 발매된 가장 훌륭하고 희귀한 스트릿 아이템을 기록하는 Year Book 형태의 아트북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특히 애정이 깊은 책은 “All Gone”과 “Living Proof”입니다. 두 출판물 모두 전 세계의 문화 속 인물들을 기록해 온 작업물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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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들이 레어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히 가격이나 희소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책의 창시자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던 순간, 그리고 커버 속 인물들과 실제로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사인을 책 첫 페이지에 받았던 경험이 함께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값어치를 매길 수는 없지만, 그런 기억과 시간이 켜켜이 쌓인 책들이야말로 휴간북스에서 가장 희귀하면서도 의미가 깊은 책들이라고 생각합니다.




Q8.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매거진이 있을까요?


심재: 패션을 좋아한다면, 옷 그 자체를 넘어 패션을 둘러싼 문화와 태도를 함께 보여주는 매거진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아이템이나 트렌드를 설명하는 이야기들도 물론 의미가 있지만, 그 옷을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 음악과 거리, 그리고 그 시대의 분위기까지 함께 담아낸 잡지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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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와 작년을 통틀어 인상 깊게 보고 있는 매거진으로는 Comet Magazine을 꼽을 수 있습니다. 도쿄를 중심으로 현재 일본에서 활동 중인 인물들을 기록하고, 이를 시리즈 형태의 패션 매거진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과하지 않지만 분명한 시선과 에너지가 느껴지는 작업입니다.


Comet Magazine을 운영하는 Yamepi는 일본 친구이자 Carservice의 디렉터인 Kei의 소개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매거진은 현재 한국에서는 휴간북스에서만 만나볼 수 있으며, 패션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해 드리고 싶은 잡지입니다.




Q9. 매장을 찾는 손님들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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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 리셀을 목적으로 오는 분들도 있고 우연히 들르는 분들도 있지만, 대체로 옷을 멋지게 잘 입는 감각 있는 분들이 많이 찾습니다. 외국인 손님들도 꽤 많고요. 심재 형의 훌륭한 서적 큐레이션과 매장 곳곳의 시각적인 요소들, 작은 소품들이 어우러져 이곳을 아주 생동감 넘치는 공간으로 만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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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0. 휴간북스를 오픈하면서 떠올렸던 이상적인 모습이, 현재의 휴간북스와 어느 정도 닮아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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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 처음에 떠올렸던 모습과 지금의 휴간북스는 꽤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크게 확장하기보다는, 오래 유지되는 공간이기를 바랐고, 지금도 그 방향 안에 있다고 느낍니다. 아직 완성된 모습은 아니지만, 서서히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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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1. 산산 기어, 반스, 웍스아웃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하신 것으로 아는데요,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궁금합니다. 또한, 앞으로 휴간북스가 꼭 시도해 보고 싶은 형식의 협업이나 프로젝트가 있을까요?


심재: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결과물뿐만 아니라, 브랜드와 시선을 맞추며 함께 만들어간 과정이었습니다. 휴간북스의 공간과 태도를 존중해주고, 단순한 노출을 넘어 맥락을 함께 고민해 준 협업들이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17.jpg 휴간북스 x 산산기어 팝업스토어 ⓒ@huganbooks


앞으로도 출판과 아카이빙, 기록을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를 꾸준히 이어가고 싶습니다. 책이나 잡지를 매개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협업을 긍정적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Q12. 먼 훗날, 사람들이 휴간북스를 어떤 공간으로 기억하길 바라시나요?


심재: 오랫동안 분명한 취향을 지닌 공간으로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한 번쯤 자연스럽게 다시 떠올리게 되고, 천천히 머물렀던 시간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공간이기를 바랍니다.


18.jpg 매거진뿐 아니라, 의류와 아기자기한 아이템까지 볼거리가 다양하다





Q13. 성수에서 다시 충무로로 이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충무로로 가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image.png?type=w773 성수 휴간북스의 모습 ⓒ@eztag_, @huganbooks


심재: 성수는 에너지가 빠르고 변화가 잦은 동네였습니다. 반면 충무로는 속도가 느리고,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공간들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휴간북스가 지향하는 리듬과 태도에는 충무로의 분위기가 더 잘 맞는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시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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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 위치상 젊은 친구들이 우연히 지나치다 들르기 쉬운 곳은 아닙니다. 오히려 동네 어르신들이 호기심에 들어오시기도 하고요. 하지만 대부분은 '계획된 방문'을 합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이곳을 찾아오는 거죠. 저는 그 점이 이 가게의 멋진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서울의 조금 낡고 오래된 지역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젊은 세대가 이 지역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선구적인 발걸음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근처 세운상가나 DDP와도 연결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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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4. 2026년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인터뷰입니다. 2026년도, 휴간북스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심재: 크게 달라지기보다는 지금의 방향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휴간북스라는 공간을 잘 지키면서, 좋은 책과 잡지를 꾸준히 소개하는 동시에 직접 잡지를 만드는 작업도 이어가고 싶습니다. 기록과 아카이빙이라는 휴간북스의 시선을 담은 매거진을 통해, 2026년에는 책과 잡지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들을 더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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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5. 휴간북스가 세상에 외치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심재: 어서 오세요! 휴간북스입니다. 서울 중구 마른내로 62-1에 위치해 있으니, 편하게 방문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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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jentest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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